이마 속에 이게 뭐야?

child abuse 1부 「구멍 난 사각지대, 구멍 난 연대」

by 다나

아동 학대 (Child Abuse)
아동 학대는 아동에게 가하는 신체적·정서적 폭력을 포함하며, 적절히 보호·양육하지 않고 방치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합니다. 이 글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으며, 특정 아동이 식별되지 않도록 내용을 조정해 서술했습니다. 아동학대와 방임, 불우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한 아이의 삶을 담았습니다. 아동학대·가정폭력의 간접 묘사가 있습니다. 노골적,세부 묘사는 포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불편함은 누군가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쉽게 외면하거나 단정하기보다, 그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우리는 어떤 어른이어야 할까를 함께 물었으면 합니다. 아동 학대는 명백한 범죄입니다. 도움 자원이 필요하신 분은 지역 상담·신고 채널을 이용하세요.








"숨이 막히는 느낌은 아파요?"

"숨을 안쉬면 혀가 나와요?"

“사람이 다치면 피가 많이 나요?"

"출혈은 얼마나 빨리 번져요?”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는 뭐가 달라요?"

"썜, 웹툰 중에 XXXX이라는 만화 본 적 있어요?"


종구는 나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졌다. 질문들은 겉으로 보기엔 도무지 어른이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답을 얻으려는 호기심이라기보다 다른 무엇을 건드리려는 듯했다. 설명을 해도 듣는 듯 안 듣는 듯했고 자극적인 말들만 지치지도 않고 쏟아냈다. 아이는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B급 공포영화의 주인공처럼 자신만의 어두운 세계를 마음껏 펼쳐 보였다.


어느 날 아이는 소설 한 편을 내밀었다. 호러와 스릴러의 요소가 뒤섞인 이야기였다. 지난번의 질문들이 이 글을 위한 자료 수집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은 어두웠다.


그 세계는 잔혹함으로 가득했지만 다른 말로 하자면 고통으로 물든 환상이었다. 삶의 끝, 금지된 커뮤니티, 폭력적 놀이들. 종구는 그 속에 파고들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자극에 몰두하는 것이 원인이라기보다 증상임을 점차 알아차렸다.


무너져 내리지 않으려 무엇이든 붙잡으려 했다. 아이의 글은 경악을 사고 싶은 허세가 아니었다. 내면 깊은 곳의 절망이 형상을 빌려 나온 것이었다. 글을 읽는 동안 나는 그곳에서 조용히 울리는 비명을 들었다.


담임이 종구가 그린 그림 몇 장을 들고 왔다. 사람을 위협하는 장면들이 대부분이었다. 특이한 점은 피를 빨간색이 아닌 파란색으로 칠해놓았다. 채색의 선택마저 그의 정서적 분열을 말해주는 듯했다.


“요즘 잔인한 콘텐츠를 많이 본답니다.” “게임 영향 아닐까요?” 어른들은 원인을 외부에서 찾기 쉬웠다. 그러나 대화는 다른 결론으로 향했다. 문제의 뿌리는 인터넷이 아니라 아이의 내부였다. 단지 차단하고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그가 지닌 고통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억압된 에너지가 다른 방식으로 분출될 위험이 높다.


정서적 고통은 때로 표현하기 어렵고, 어린 이는 방어기제로 자신을 지킨다. 무감각함은 그 방어기제의 한 형태다. 종구처럼 반복된 학대나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은 감정을 차단하고 반응을 최소화하려 한다. 감정을 차단한 채로도, 아이는 상상으로 고통을 드러내고 타인의 인식을 갈구한다. 그의 과장된 상상과 폭력적 이미지들은 누군가 들여다봐 주길 바라는 신호였다.


나는 그와 자주 만났다. 부정적 요소를 무조건 금지하기보다는 아이가 조금씩 감정을 알아차리고 안전하게 표현하도록 돕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느 날, 종구가 말했다. “우리 엄마가 아프대요.”
그 말에 주변 어른들은 질환의 이름을 묻고, 진단 정보를 찾으려 했다. 나역시도 그랬다. 그러나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병명이 아니었다. 엄마가 부엌에서 불을 켜고, 냉장고 문을 열고, 이름을 불러주는 일상의 소소한 동작들이 그에겐 기적처럼 간절했다. 전화상에서의 사과와 약속은 현실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그래서 전 의사가 될래요.” 종구는 갑자기 말했다. “근데 일부러 서툴게해서 다 엉망으로 망칠거예요. 아니, 내 존재를 모른척 할 수 없게 만들거예요.” 아이는 목을 뒤로 젖히고 까르르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복수심보다도 자기 존재를 드러내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무질서한 상상은 파괴의 의도라기보다, 길 잃은 마음의 유일한 언어였다.


그래서 오히려, 어른들의 당혹스러움 속에서 스스로를 비추고자 하는 듯했다.

혐오든 경악이든, 그것이 유일한 소통의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나에게 상처 주지 않았어요.

종구를 처음 봤던 건 초등학교 2학년이던 때였다.
운동장에서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뒤섞여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어린아이들의 운동이란, 마음은 원인데 육체가 따라주지 않아서 그야말로 최선을 다하는 난장판이 되고는 한다.


공을 차다 말고 서로 몸싸움을 벌이고, 옷을 잡아당기고, 넘어지고, 나중엔 손으로 공을 쥐고 럭비처럼 달리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2층에서 내려다보다가 순간적으로, 한 아이의 이마에 붙은 휴지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날리면서 드러난 이마 한가운데, 지저분한 무언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확인하고 싶어 내려가 그 아이를 불렀다.


"종구야, 이리 와볼래?"


교실로 데려가, 조심스럽게 휴지를 떼어냈다. 깊어 보이는 상처 속에 이물질이 엉켜 있었다. 심장이 차갑게 식는다는 느낌이 통속적인 말이 아니였다. 진짜 서늘하게 몸이 얼어붙는 것을 경험했다.





도대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뭐지? 내가 놀란 것을 들키면, 오히려 아이가 더 불안해 울 것만 같았다.
입술을 꼭 깨물고, 최대한 침착한 척 물었다.


“누가 그랬어?” 물었더니 그는 “제가 잘못해 아빠가 때렸어요.”라고 말했다. 상처를 보아도 아이는 말하기를 주저했다. 무서움의 무게였다.


"종구야 선생님한테 주말에라도 전화하지 그랬어"

"..... 무서워서요."


주말 동안 종구에게는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있었다.
얼마 전 엄마는 아빠에게 폭력을 당한 뒤 술에 취한 남편을 피해 아이를 두고 결국 집을 떠났다.
종구는 몇 주째 아빠와 단둘이 지내고 있었지만 금요일부터 아빠는 술을 마시고 들어오지 않았다.
토요일 밤까지도 집에 오지 않자 1층 슈퍼 아주머니가 보다 못해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엄마는 몰래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술에 취해 해장국을 들고 들어오던 아빠가 보고야 말았다.


“검은 봉지가 터지며 국물이 사방으로 튀었어요.”


그 순간 아빠의 감정도 함께 터져버린 듯했다.
엄마는 그대로 다시 도망쳤고 종구는 홀로 그곳에 남겨졌다.

아빠는 엄마를 붙잡기 위해 뛰쳐나갔다가, 못이 박힌 나무조각 같은 잔해를 움켜쥐고 돌아왔다.

분노의 순간 그 잔해가 공기를 가르며 아이를 스쳤다.

그날의 흔적은 아이의 이마에 오래 남을 상처로 새겨졌다.


“그때는 아프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빠가 술에 취해 쓰러진 뒤, 그 조각이 미끄러지듯 내려가면서 상처가 벌어졌다고 했다. 종구는 게걸음으로 좁은 부엌을 지나 화장실로 갔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눈물 때문에 흐릿했지만, 이마가 뜨겁고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조각이 살 속 깊이 들어갔을 수도 있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휴지를 마구 뜯어 상처에 겹겹이 눌러 막았다.
그 상태로 냄새가 진하게 배인 방으로 돌아가 아빠 옆에 누워 잠들었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아빠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고 종구는 그냥 학교에 왔다.
그리고 내가 그 이마를 발견한 것이었다.


보건실에서 이물질을 제거하고 의사는 상처가 깊을 수 있다며 봉합을 권했다. 비용과 상황을 고려해 피부과로 향했다. 진료실에서 아이는 “집 앞에서 넘어졌어요”라고 말했다. 어른들은 그 말을 단순히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이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남을 보호하기 위해 말을 아끼는 법을 배웠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신고했다. 오후에 사례조사 담당관이 학교로 왔다. 2인 1조, 익숙한 회색 봉고차.

그들은 차분히 질문지를 읽으며 조사했다. 그러나 그들의 절차는 빠르고 차갑게 종결되었다.


“종구는요, 겁이 많고 눈치가 빨라요 어른이 원하는 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대로 대답하는 애예요. 근데 지금 겁나서 말 못 하는걸 수 도 있으니 다시 봐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절박하게 매달렸다.


두 사람은 당황한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아이의 진술만을 근거로 삼습니다.”라는 말이 반복됐다. 내가 보여준 아이의 그림과 글은 그들의 마음을 흔들었지만, 실무 규정은 엄격했다


"주변 사람들이 뭐라 해도, 아이가 직접 말을 해줘야 하고요 주변인 진술로 저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아이가 입을 닫아버리면 방법이 없죠. 저희도 이런 경우 안타깝고 많이 답답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저희가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해요. "




사람이 덩어리처럼 보여요.

몇 년이 지나, 중학생이 된 종구를 다시 만났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일본 만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늘어놓았다. 의사가 되어 사람을 엉망으로 만들겠다고 말하던 그때처럼, 여전히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다.


“종구야, 너 그림 잘 그렸었지. 아직도 그려?”
아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그림 몇 장을 보여줬다. 그림은 아름다웠다. 세밀했고, 정교했다.


“이건… 어떤 생각하면서 그린 거야?”


내 질문에 종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근데 전 성인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요."
"일반 만화 말고요 성인 등급 의 유료 웹툰 그리면 돈이 더 잘 벌린대요."
"사람들이 결제를 하게끔 유도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내게 물었다.

"선생님도 그런 거 봐요?"


나는 피식 웃으며 다른 대답을 했다.

"종구야 다른 사람을 해치겠다고 농담으로 말하던 너로 안 커줘서 고마워."


아이는 여전히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작은 성공과 지원이 닿았다. 미술치료와 동아리,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그는 그림을 그릴 도구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변했다. 예전처럼 사람을 객체화해 말하던 문장들은 줄어들었다. 어느 날 그는 말했다. “사람들이 가끔 덩어리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나는 그 고백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밝은 목소리로 덧붙이는 말에 안도했다. ”요즘은 그래도 그림 그리는 게 좋아요. 가끔 그런 감각이 올라와도 금세 가라앉아요."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시점

아동학대는 신고와 초기 조치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제도 시간은 짧고, 아이들의 상처는 오래간다. 사례 종결이라는 말로 우리는 문서를 닫지만, 그 순간부터 아이는 다시 홀로 자신의 이야기를 꿰매야 한다. 그 이야기는 누군가 읽어주는 이가 있어야 온전해진다. 어둡고 불편한 이야기는 대중의 선호를 얻기 어렵지만 그것을 외면할수록 상처는 더 깊어진다.


지금 그는 그림으로 소소한 생계를 이어간다. 완전히 안전하진 않지만 자신의 도구와 취향을 찾았고, 몇몇의 내편도 얻었다. 그림 속 괴물은 점차 부드러워졌고 배경에는 작은 색채가 번졌다. 그 변화는 누군가가 억지로 바꾼 것이 아니었다. 종구 스스로 빚어낸 회복의 흔적이었다.


어느 날 그가 다른 지인에게 말했다고 했다.

“나를 봐준 샘이 있었어요. 나를 믿어준 샘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샘이랑 진짜 친해요.”

그 짧은 친해요라는 말이 어떤 이의 생존이 되고, 삶을 다시 그려내는 힘이 될 수 있다.


아이의 울음을 소음이 아닌 신호로 듣는 일, 낯선 아이에게도 이름을 불러주는 일, 지역의 상담 창구를 알아두는 일. 작고 구체적인 행동이 다음 이야기를 바꾼다. 이것이 어른인 우리가 아이들을 향한 친해지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겠지.







어른인 우리에게 남는 질문

괴물로 태어난 아이는 없습니다. 그 아이를 괴물로 만든 어른들의 시선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만약 비행을 저지르는 청소년이 당신 옆집에 산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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