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의 반복
"공부를 뭣하려 해요?"
성란이의 말은 짜증을 품고 있었다. 마치 날 선 말처럼 내게 날아들었다.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조심스레 답했다.
“성란아, 공부는 단지 대학을 가기 위한 도구가 아니야. 뇌가 발달하는 시기잖니. 사회로 나가기 전에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야. 그러니까 스스로를 위해 감당해야돼.”
성란이는 말없이 나를 보다가 투명하게 웃었다.
“우리 아빠도 명문대 나왔어요. 근데 지금 뭐 하냐고요. 아무 소용없어요."
성란이는 감정이 격해졌다 이내 사그라들었고, 아이는 꼬무룩해져 버렸다.
맞다. 성란이 아빠는 소위 명문대를 나왔다.
하지만 세상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성란이 할머니는 어려웠던 부모님을 떠나 열한 살 때부터 서울의 한 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아이를 낳았고 이듬해 또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쫓겨나듯 나와야 했다고 한다. 시장에서 조그마한 가판을 차려 장사를 하며 두 아이를 키웠다. 딸은 지체장애가 있었지만 언감생심 치료 받을 여력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딸은 몸만 커졌다. 그런데 아들은 달랐다. 똑똑했고 착했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만 봐도 우리 아들이었으면 이런 거 주워서 연구한다고 몇 날 며칠을 관찰했을 텐데 싶어 돌멩이만 봐도 피식 웃음이 날 정도였다.
성란이의 아버지는 소위 잘나가는 길을 걸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어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뛰었고 어느 날은 동네 형의 말을 듣고 방학기간에 공장에 나갔다.
“두 달만 버티면 한 학기 등록금은 넉넉해.”
낡은 기계, 낡은 장갑, 낡은 안전망. 무심히 지나던 한 조각 부품이 장갑을 물었다.
할머니는 살면서 차가운 길에 앉아 한기가 뼛속까지 뚫고 와도 한 번도 힘들다 생각한 적 없었다고 했다. 차에 치어 발목을 다쳐서 합의금을 받고도 병원에 가지 않고 가판을 폈다. 치료시기를 놓쳐 허리가 꼬부라지는 것 처럼 둥글게 꼬부라진 발목을 질질 끌며 걷게 될 때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까짓꺼, 내 몸뚱이쯤이야, 별거 아니지.
그렇게 시골길 정승같이 삶의 풍파에도 꿋꿋하던 할머니는 생전 처음 돌진하는 엄청난 무서움에 주저앉아 오열해 버렸다. 그렇게 할머니의 삶의 빛이던 아들은 손가락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캠퍼스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여행을 떠났고 몇 년 뒤 갓난아이를 안고 돌아왔다.
"공부를 잘하면 뭐해요. 지 인생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산다고요. 자긴 혼자 떠돌아다니면서 편하겠지 뭐. 그러니까 공부를 하고 싶겠냐고요. 어차피 해 봤자 우리 아빠 꼴 밖에 더 나겠어요?"
성란이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성과 새 살림을 차리고 집을 나가 술에 빠져사는 아빠를 욕하면서라도 기억에서 지워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야, 그래도 아빠한테 말이 좀 심하지 않냐?"
아, 샘 완전 꼰대. 근데 인정.... 불효자죠.뭐.
"그럼 우리 성란이가 할머니한테 효녀가 되려면 뭘 해야 하겠어. 할머니가 저렇게 고생하시는데, 공부를 해. 스펙이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을 것 같으면, 성실하게라도 하루하루 살아보자."
헐, 샘 완전 판타지. 그걸 믿어요? 진짜 대박... 우리 샘 완죠니 순수 그 자체.
"아니, 아니! 왜! 성실이 뭐!"
샘, 우리 할머니 몇 시에 퇴근하는지 알아요?
"밤 10시쯤?"
땡! 할머니 1시에 들어온다니까요. 1시!
성란이는 아버지를 향해 서슴없이 항상 불효자라 불렀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 말 속에는 분노보다는 슬픔이 더 짙게 깔려 있었다. 고생하는 할머니를 향한 슬픔도 있을터였다. 할머니는 밤 10시쯤 좌판을 접고 가게 문을 닫자마자 전날 불려놓은 콩을 씻고, 깍지를 벗기고, 멧돌에 돌린다.
그럼 멧돌 밖으로 막 우유처럼 바글바글 이상한게 후드둑 떨어진다고 표현했다.
그럼 나를 또 불러서 면포 잡으라고 한다고요. 거품을 넣고 또 물 넣고 할머니 손가락도 안 좋은데 조 몰 조 몰 문대. 그리고 뭘로 누루고 완전 난리를 친다고요. 내가 그거 꼴배기 싫어서 들어가서 그담은 몰라요. 그걸 그냥 하루 종일! 밤새도록 하다가 3시에 자더라고! 그리고 몇 시에 시장 나가는지 알아요? 아니 왜 짜증 나게 내 등교시간보다 빨리나 가냐고 사람도 없는데!
성란이의 말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청국장을 만들기 위해 밤새 콩을 갈고, 면포를 짜고, 손가락을 비비고, 다시 새벽 장에 나갔다. 이 모든 과정이 매일 반복되었다. 그리고 성란이도 그 속에 있었다.
콩 냄새가 밴 손, 청국장의 잔향이 스며든 옷. 어린아이들의 잔혹함은 생각 없는 놀림과 은연중의 멸시로 새어 나왔다. 그 냄새는 가난의 냄새가 아니었다. 버텨온 세월의 냄새였다. 삶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냄새였고 난 그 냄새가 언제나 정겨웠다. 하지만 그것을 어린아이들이 알 수 없었을 테지.
내가 그 아이들을 데리고 사과를 시켰을 때 할머니는 그 손에 검정비닐에 넣은 두부를 들려 보냈다. 성란이는 그것마저도 화가 났다. 왜 내 편을 안 들어주는지 모르겠다고. 할머니가 혼쭐을 내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자기편을 안 들어주고 오히려 자기를 괴롭히던 아이들 손에 할머니 잠과 바꾼 두부를 들려 보내니 열이 받아 그 어린아이가 중년의 여성처럼 말 그대로 화병이 나 들어 눕곤 했다.
나는 목이 메었다. 열세 살. 세상에 대한 기대보다는, 체념이 먼저 배여버려 벌써부터 "서글픈 내 인생"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마도 할머니에게서 흘러나오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겠지.
언젠가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집은 부지런하지 않아서 그래. 열심히 살지 않으니까 그런 거라고. 결국 우리처럼 세금 내는 사람들 만 피해보는거지."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가난한 가정의 아침은 다른 집보다 더 일찍 온다고.
그들은 남들이 다니지 않는 시간에 움직인다.
새벽 내내 건물을 청소하고 직장인들이 출근할 때쯤이면 건물 화장실 구석에서 냉동밥에 뜨거운 물을 부어 아침을 먹는다. 지독하게 부지런하고, 치열하게 산다.
그런데도 늘 돈이 없다.
아이가 말했다.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난 대충 살아야겠어요."
성란이는 꿈이 없다고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꿈이 있었다.
편의점 알바가 되고 싶다고 했다.
"옆집 고등학생 언니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데, 그게 좋아 보여요.
할머니가 일 좀 덜 하고, 잠 푹 자게 해주고 싶어요."
조부모와 부모가 그리고 이제 아이들이. 세 세대가 지독하게 살아왔지만 가난은 줄어들지 않았다. 쌓인 건 돈이 아니라 열등감과 피로, 자기 비하뿐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말한다.
“너희가 게을러서 가난한 거야. 더 노력해.”
어떤 아이들은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
어떤 아이들은 과학자를 꿈꾼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정말 알고 있는 걸까?
사회가 이들에게 부지런함을 넘어설 다른 기회를 주고 있을까?
이토록 지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여전히 가난한 걸까.
그럼에도 나는 바란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 아이가 성실함의 무게를 낙담이 아닌 희망으로 받아들이기를.
그리고 언젠가 이렇게 답할 수 있기를.
“성실이, 가난을 이길 수 있어.”
그 말이 허황된 약속이 아닌 당연한 사실로 들리는 세상.
가난한 아이들의 생존이 아니라 꿈을 응원하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성실은 사람이 내는 힘이고 구조는 사회가 내는 답입니다.
성란이처럼 지독하게 살아도 달라지지 않는 세상 앞에서 아이들이 묻습니다.
‘성실하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그때,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