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명인
잠이 들기를 기다리기보다 뭔가 하기로 결정했다. 자료를 찾고 약간의 기획이 필요하고 뭔가에 선정되기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기에는 그렇게 머리가 맑아진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도 1시간 정도의 몰입도는 상당히 좋았던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달이 동그랗고 이글거리는 자태로 나를 내려 보고 있었다. 아마도 보름이었나 보다. 서재 창은 서쪽으로 나 있어서 가끔 멋진 노을도 보고, 어제 새벽처럼 서쪽으로 넘어가기 전 둥실 떠 있는 달을 보는 행운도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휘영청 밝다는 말이 실감 나는 그런 달이 이글거리는 온몸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휴대폰을 찾아 이 멋진 광경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난 순간 신윤복의 “월하정인”은 아니더라도 “월하명인”이 된 듯 고고히 토가닥 토가닥 자판을 두드리며 달빛 아래에서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 갔다. 좀 있으면 해가 뜰 것만 같은 불안도 있었지만, 구태여 잠을 청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달과 아름다운 동행을 했다. 더 써야 할 섹터가 있었지만, 그냥 누워서 달을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최대한 창문 너머의 달이 잘 보이도록 누우려고 누워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자리를 잡았다. 이 또한 멋진 한여름 밤의 꿈같은 나만의 멋진 동화다. 언제 잠들었는지 난 서재 딱딱한 서재 바닥에서 아침을 맞았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날은 밝고 나와 동행한 멋진 명월은 자기 집으로 갔다. 아침에 이슬은 얼마나 맺혔으려나 마당에 발을 내딛는 순간 아주 맑은 바람이 코를 간지럽히고 지나갔다. 그렇게 시작한 오늘 달빛이 감싸준 명인으로 살고 있다. 나도 고독한 누군가를 비추는 빛으로 사는 날이 있기를 바라며 뜨거운 한 낮을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