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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남아서

지킴

by 고영준SimonJ

무성했던 5월의 장미 넝쿨은 비와 또 바람과 그렇게 무심한 시간을 지나 모두 시들었다. 떨군 꽃잎은 꽃잎대로, 남아있던 꽃송이는 꽃송이대로 그렇게 시들어 갔다. 만개한 날의 기쁨만큼 안타까운 소멸이었다. 며칠 바라보던 장미 넝쿨 속에 유난히 색이 진하고 작은 장미 한 송이가 피었다. 처음엔 다졌는데 혼자 남았나 생각했다. 그런데 마치 철 지난가을 장미처럼 그렇게 다 시들어 가는 친구들 사이에 홀로 피었다. 그저 신기한 이 모습은 또 많은 생각을 낳았다.


무엇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누군가는 친구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야 한다는 각오처럼 보였다. 찌는 듯한 더위와 갈증은 쉽게 버티기 힘든 날인데도, 5월의 장미보다 더 붉게 서서 장미넝쿨을 지키고 있었다. 오늘도 홀로 선 장미는 전혀 시들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고 멋진 자태로 시든 꽃잎을 계속 떨궈가는 친구들 곁을 지켰다. 누군가 와서 보면, 우린 이랬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마치 장미의 영정사진처럼, 다 시들어버린 그곳을 지키며 서있다.

장미 한송이.jpg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시들어버리니 볼품없네. 지저분하네. 등등이 수식어들을 홀로 남아 핀 장미 한 송이가 없앴다. 모든 기억을 마지막까지 훌륭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화려한 날도, 흐린 날도, 모두 지나가지만 어쩌면 조금 늦게 피어 다른 이들의 마지막을 돌보는 그런 그림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생활 중 하나의 계획이 더 생겼다. 가능하면, 함께한 이들의 마지막을 돌보는 일까지 하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오늘도 장미 넝쿨엔 한 송이만 붉게 피어 있다. 외롭지도 않고, 그렇게 멋진 자태로 위용을 떨치고 자연으로 가는 친구들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다. 난 이 장미를 사랑하게 되었다. 얼마나 오래 피어 있을지 궁금했는데, 지금은 궁금증이 사라졌다. 그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이 들 때, 친구들처럼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가겠지, 그래서 더 멋진 마지막을 보게 될 것 같다.


조금 더 피어 있으라는 등의 나의 기대는 무의미하다. 그저 나의 일부는 저 장미를 닮기를 바랄 뿐이다. 그때는 홀로 남아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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