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찌꺼기들을 태우며
귓볼을 때리는 바람은 기억을 지우기 딱 좋았다. 일찍 결혼했던 6년 전 아들의 결혼 소식을 알리던 청첩장과 버리지 못해 처박아둔 미련 덩어리들을 태웠다. 바람은 태워져 날아가는 기억의 찌꺼기들을 싣고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나갔다. 이제 곧 겨울이 오고 또 계절이 지날 게다. 불꽃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고 무뎌지지 말라고 으르렁대는 듯했다.
첫눈이 오면 부산하게 눈을 치우려 이리저리 움직이겠지만, 그래도 겨울을 지켜낼 눈사람 하나정도는 만들자. 잊고 싶고 시린 인연들이 오더라도 언제나처럼 그 처음은 기대와 설렘으로 맞이하자. 다시 또 울고 미워지더라도 기대를 버리진 말자.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을 사물과도 사람과도 계절이 돌듯 늘 반복되자만, 그것 때문에 시작을 미루는 일은 하지 말자.
언제나 새로 출발하고, 또 힘을 모아 정성을 다하고, 그리고 결과에 승복하고, 그렇게.......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비가 내렸다. 기억의 찌꺼기들을 태운 열기를 식히기라도 하듯 비는 차갑고 비장했다. 좀 더 찬바람이 불면 옷깃은 여미겠지만,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심장으로 다가올 새로운 것들을 맞이하자.
찬 바람 속으로 해가 나는 날에는 환한 웃음도 잊지 말자. 그렇게 또 세워을 지켜내자 다가올 아별도 새로운 인연도 모두 다 뜨겁게 맞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