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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융프라우

시간의 조각들

by 고영준SimonJ

큰 눈이 내린 날에도 원적산은 동네랑 같이 하얀 그림을 그려 낼 뿐 그렇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많은 눈이 내릴 거란 예보에 그저 밤잠 설친 날 아침 동네는 살짝 덮인 눈이 싸리비 지나가는 흔적으로도 다 쓸려 나갔다. 오후가 되자 어느새 길은 언제 눈이 왔었는지 모르게 다 제모습을 드러냈다. 터덜터덜 둑길을 걷다 보니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었다. 매일 보던 산이 허연 자태를 드러내며 마치 유럽의 한 동네에 와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듯했다. 한참을 바라보니 구름의 흐름에 따라 해가 비치어 산머리가 밝아지기도 하고 그늘이 넓어지기도 하고,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그렇게 서있었다.


기말고사 기간이다. 졸업반 친구들이 수고하셨다며 인사를 건넨다. 꼭 인사드리러 올게요! 아쉬움의 약속들이 오가고 있었다. 큰 바위처럼, 저 산처럼 그곳을 지키며 누군가 그리움에 찾아오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남아 기다려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초록으로 물들던 날도 저 산은 저기에 있었는데, 어느 날 산이 없어지면 어떤 느낌일까? 그렇지만 산이 옷을 갈아입듯, 새로운 학생과 새로운 선생님들이 또 인연을 만들고 그렇게 거기에 있을 것이란 걸 나는 잘 안다. 밖은 찬 공기가 에워싸고 있는 한밤중이다. 눈을 비비고 앉아 이 시간의 냄새를 맡는다. 소중한 것들에 대한 기도가 필요한 시간이다.


어떤 꿈을 꾸든 그것이 설령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힘껏 도전하게 하소서. 힘들 땐 다시 일어날 용기를 주시고 그럴 땐 이 사람을 찾아와도 좋다고 얘기해주시고, 아프지 않게 해 주시고, 항상 미소가 얼굴에 흔적처럼 남게 하시고 저 들을 지켜 주소서.


Simon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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