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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Sep 29. 2020

울음이 언어를 가로막는 다는 건

어른도 신생아처럼 엉엉 울기만 할 때가 있지

인간의 가장 첫 의사소통은 울음이다. 아기는 그저 운다. 마냥 운다.

달리 다른 방법을 모르며,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선이며 가장 명확한 표현이다.

차츰 성장하여 언어를 구사할 줄 알게 되면

부모는 우는 아이에게 말한다.

'울지 말고 알아듣게 말해봐.'

'왜 우는지 말로 해봐' 라고.

그러니까 그 즈음, 부모는 아이와 함께 [내가 왜 우는지 맞춰봐 게임]을 끝내고

언어로 소통하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우는 아가를 보며 문득 드는 생각..

어른이 되어서도 눈물부터 날 때가 있다.

유난히 잘 우는 어른도 있다.

또..

무언가 말을 해야 하는데 눈물부터 왈칵 터질 때가 있다.

상담에서도 '어떤 일로 찾게 되었어요?' 라고 물었을 뿐인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엉엉 (그야말로 엉엉~) 우는 내담자들이 있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대학시절 상담을 받을 때 첫 상담에서 그랬다.

말을 하고 싶은데...폭풍같은 눈물이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기처럼 한참을 꺼이꺼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눈물이 언어를 앞서는 이유는 왜일까. 

어른인데! 말을 할 줄 아는 어른인데!

그건 아마도..

마음 속에 있는 게 너무나도 커서..

그 것을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들거나,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닐까. 

마음 속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덩어리, 그건 오랜 시간동안 쌓인 복잡하고 복합적인 감정과 생각의 뭉치이기에 언어로 1:1 통역이 어려운 것이다.

그렇게 엉엉 울고 있는 어른에게 

아이를 대하듯 '울지말고 말을 해봐' '도대체 무슨일인지 말로 해봐' 라고 물어봐야 소용이 없다.

울음을 다 쏟아내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금씩 풀어나갈 수 있을테다.

어쩌면 혼자서는 힘들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겨우 꺼내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어마어마한 덩어리를 쏟아내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덩어리가 얼마나 무거울지를 생각한다.

그들이 충분히 다 울고, 마음껏 울고, 믿을만한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기를.

그리고 위로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가볍게 살아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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