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세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무뎌질만 하면 어김없이 집단감염이 발생해 도통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포털사이트 메인페이지에는 로고 아래에 ‘최대한 집에 머물러 주세요’라는 문구가 떠있다. 아마도 올해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가장 길어진 해가 아닐까. 그렇다. 지금은 집에 있는 것이, 그러니까 타인과 접촉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시기다.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를 하고, 아이들은 온라인으로 학교생활을 대신한다. 모임이나 미팅은 화상회의로 대체되었고, 배달원은 배달음식을 문 앞에 두고 사라진다. 이러한 언택트, 즉 비대면 방식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삶에 정착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무척 중요해지겠다.
그런데 과연 집은 사람들을 보호해주고 있을까. 요즘 같은 시기에 집만큼 안전한 곳이 없다지만 외부와 차단되어 있기에 위험한 상황이 생겨도 드러나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지극히 사적인 장소라는 점에서 가장 안전한 동시에 가장 위험하기도 한 것이다. 아이가 끼니를 챙겨먹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고, 몸이 불편하신 노인이 홀로 고통을 견디고 있을 수도 있다. 그뿐인가, 가정폭력이 일어나도, 아동학대나 방치가 일어난다 해도 이웃조차 모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심리적으로 취약할 때는 집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코로나 확산 이후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늘어났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절반 가량이 불안감 혹은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우울’이라는 명칭도 생겨났다. 물론 재난상황에 대한 불안감과 경제적 어려움이 큰 몫을 하겠지만, 타인 또는 외부환경과 단절된 상태 또한 몹시 위험하다. 적절한 일조량과 운동은 우울증을 예방하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그런데 거리두기로 인해 집 안에만 있다 보니 햇빛은커녕 활동도 급격히 줄어들어 약해진 마음이 더욱 부실해지는 것이다.
무기력한 탓에 식사를 거르고 외부와 더 교류하지 않기 때문에 우울감은 짙어져 극단적인 생각으로 이어진다. 결국, 바이러스만큼이나 위험한 일이 집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그런 일들은 늘 있었지만 ‘접촉’을 피하게 되면서 더욱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인간에게 타인과의 접촉은 필수다. 심리치료의 접근방식 중 하나인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한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핵심으로 보았다. 타인과의 관계가 빠진 인간은 그저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역동적인 존재다. 관계맺고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욱더 뚜렷한 자신이 되어간다. 다른 이들과 어우러지면서 활기를 유지한다.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나답게’사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만나지 않고, 어떤 자극도 받지 않으면 나다움을 발현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타인과 교류해야한다. 집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더라도 어떻게든 심리적으로 외부와 이어져야 한다. 모든 교류가 끊긴 고립된 집은 어쩌면 밀집된 장소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바이러스로부터 육체의 건강을 지켜내는만큼 마음방역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집이 바이러스보다 위험해지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작은 농담을 건넬 수 있기를.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90809220005190
9월8일자로 한국일보에 게재한 칼럼입니다.
위 글은 '심리적 건강'에 무게를 둔 것입니다만..
라면을 끓이다가 화재 사고를 입은 인천의 형제 소식을 듣고 이 글을 들고 오게 되었어요.
형제의 엄마는 전날부터 집을 비웠다고 하지요. 큰 아들을 폭행하기도 했다고 하고요.
'과연 집은 안전한가요?' 라고 묻고 싶습니다.
돌봄을 못받고 방치 되는 아이들, 부모의 학대를 받는 아이들에게 집은 코로나보다 안전하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집'은 대개 따뜻하고 안정적인 공간으로 표현되지만,
사실은 어느 곳보다 위험한 곳일 수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불가피한 요즘이 안타까운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이웃간에도 교류가 더 줄어들어 위험한 상황을 알아챌 수도 없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