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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Nov 01. 2020

"매일매일 축하해"

효율적인 기쁨의 기술

대학원 동기들이 오랜만에 모인 자리였다. 가장 늦게 도착한 멤버가 도착하자마자 한 명 한 명에게 축하인사를 건넨다. 공교롭게도 대부분이 최근 크고 작은 이벤트가 있었다. 선물과 함께 차례차례 ‘임신 축하해’ ‘생일 축하해’ 등의 인사를 전하던 그녀는 최근에 축하할만한 아무 이벤트가 없었던 마지막 동기 M에게 이르렀다. 모두의 관심이 그녀와 M에게 쏠렸다. 무슨 말을 하려나. 잠깐 멈칫하던 동기가 씩 웃으며 건넨 말은 ‘매일매일 축하해’.  뜬금없는 하지만 센스있는 축하말에 모두가 까르르 웃었다. 분위기가 한껏 화기애애해졌다. 한명도 빠짐없이 축하받은 그 자리는 그야말로 축제였다. 



‘매일매일 축하해’라는 말을 곱씹어본다. 주위사람에게도 건네어 본다. 기분이 참 좋아지는 말이다. 오늘도 내일도 축하받을 수 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생각해보면 우리는 축하를 받기 위해 특별해져야만 했다. 받아쓰기 100점을 받아야만, 반에서 1등을 해야만, 좋은 대학에 합격을 해야만, 큰 회사에 입사를 해야만 ‘축하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던가. 365일 중에 단 하루밖에 없는 날, 생일이 되어 그제야 축하를 하는 우리는 어쩌면 축하에 너무 인색한건지도 모르겠다. 말 한마디에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축하인사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나만의 행위가 있다. 남편과 나는 작은 핑계거리가 있을 때마다 케익을 사서 축하 의식을 하곤 한다. 얼마나 작은 핑계거리냐면 사진을 보다가 ‘이 날 왜 우리가 케익을 먹었더라’ 하며 기억도 못할 정도다. 그렇게 자주 소박한 의식을 치루는 건 달콤한 것을 먹고 싶은 욕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기쁨을 만드는 놀이에 가깝다. 말하자면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별 대단할 것 없는 일상에 행복을 뿌리는 작업이다. 초를 꽂고 노래를 부르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 시간을 통해 기분이 훅 좋아진다. 고단했던 하루가 꽤 즐거워진다. 초코파이에 초 하나만 꽂아도 파티같은 기분을 낼 수 있지 않은가.


때로는 기분이 전부인 것만 같다. 기분을 좌지우지 하는 건 생각보다 ‘사소한 것’이다. 좋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는데 테이블이 지저분하면 음식도 맛이 없다. 누군가의 무례한 말 한마디에 하루를 망치고, 일터에서의 작은 실수에 그 날의 바이오리듬이 난기류를 탄다. 이렇듯 사소한 것으로 좌지우지 되는 게 인간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사소한 것을 통해 행복을 끌어올릴 수도 있는 것이다. 


심리치료법 중 하나인 SE(Somatic Experiencing)에서는 즐거움을 주고 몸을 편안하게 하는 요소를 ‘자원(resource)’으로 본다. 자원은 극심한 긴장이나 스트레스 상황을 경험할 때 그 시간을 비교적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몸에 해롭지 않은 자원을 통해 기분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 숙취로 고생하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폐를 망가뜨리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도 즐겁고 편안한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말 한마디, 또는 작은 의식으로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효율적인 행복의 기술인가. 


 장기화된 재난상황으로 지쳐있는 요즘, 누구에게라도 대뜸 ‘매일매일 축하해’라고 인사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루하고 고단한 일상이 작은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위 글은 한국일보 칼럼 <삶과 문화>에 게재된 글 입니다.

여러분 매일매일 축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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