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도 실패도 실연도
청년들의 구직이 어렵다는 얘기는 늘 마음이 쓰인다. 나또한 그 지독하게 깜깜한 시기를 거쳤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사정상 급하게 취업으로 전향했던 나는 한동안 말 그대로 ‘광탈’을 맛봤다. 마음은 급한데 면접기회조차 얻어지지 않는 현실이 좌절스러웠다. 내가 형편없는 사람은 아닐까 의심했다. 부족한 내 탓이라 생각하니 더 우울해졌다. 지나고 보니 취업은 누구에게나 힘든 거였고 내 실력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사실, 취업이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다. 실력만으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마이클 모부신 컬럼비아대 교수는 세상의 모든 일이 운과 실력이 결합한 결과라고 말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운의 요소를 간과한다. 100%실력의 영역이 체스게임이라면 100%운이 좌우하는 영역은 복권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그 사이의 스펙트럼 어딘가에 위치한다. 실력의 영향이 더하고 덜할 수 있지만 운의 요소가 들어가지 않는 곳은 없다. 취업이나 소득도 졸업한 시기의 경기에 상당히 좌우된다.
이 사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모든 일에 무작정 노력을 쏟아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시도하는 분야가 운과 실력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먼저 파악하고 힘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좋다. 또 하나는 결과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해볼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면,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에 대해 너무 자책하거나 반대의 결과에 너무 우쭐해지지 않게 된다.
인과관계를 확실히 하기 좋아하는 인간은 성공도 실패도 노력하거나 선택한 결과라고 해석한다. 세상만사의 원리를 명확히 해야 불안을 낮출 수 있는데, ‘우연’처럼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들어가면 명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전능하지 않다. 모든 성과를 자신이 이루어낸 것이라 여기는 것은 오만한 태도다.
세계적인 부호 워런버핏 조차도 자신의 성공을 ‘난소복권(Ovarian Lottery)’에 당첨된 덕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미국에서, 또 남자가 대우받는 시대에 백인 남성으로 태어난 행운이 성공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어떤 국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는지는 개인의 사회경제적수준과 정서적 안정. 심지어 생존에도 큰 영향을 준다. 빈민국에 태어나지 않은 것, 크게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도 엄청난 운을 갖고 태어난 셈이다.
그런데 운을 과소평가하면 스스로를 괴롭히게 된다. 내가 취업의 낙방을 모두 내 부족이라 여겼던 것처럼 말이다. 어려운 경제상황과 상대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인문대생 여자라는 사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여건이다.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인해 손님이 끊긴 카페가 카페사장의 실력 탓이 아니듯이, 구직자가 탈락하고 시험에 낙방하는 것이 오직 실력 탓만은 아니듯이. 가난도 실패도 실연도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지상에서 우리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인간의 힘이 그리 대단치 않다는 것. 우연과 운의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힘을 빼고 살아가게 도와준다. 아무리 힘을 써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그런 삶에서 우리가 할 일은 과정에 집중하되 결과에 의연해지는 것. 또 삶의 모든 순간에 겸허해지는 것이 아닐지.
+
위 글은 한국일보 <삶과 문화>란에 12월 2일 자로 실린 칼럼입니다. (칼럼 바로가기 )
만족스럽지 않은 성과나 결과에 대해 자책부터 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운이나 우연의 힘도 생각보다 작지 않지요.
올해 코로나라는 재난상황이 벌어질 것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것처럼,
개인의 일도 그 자신의 힘으로 예측하고 결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너무 자신을 탓하며 살아가지 않기를, 조금은 힘을 빼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작가, 상담심리사 김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