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 결혼한지 1년 3개월만에 이혼을 해야했던 한 여성은 고향으로 돌아와 홀로 딸아이를 키우게 됩니다. 정부보조금만으로 근근히 삶을 연명해야했고 우울증을 겪으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지요. 하지만 아이를 두고 차마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생활고와 우울감을 견뎌가며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열악한 상황은 오히려 치열하게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지요. 아이가 잠든 시간마다 부지런히 써내려갔고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바로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입니다. 그녀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Joan K. Rowling) 이고요. 이혼과 가난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발판 삼아 더 큰 성과를 이루어낸 주인공이지요. 무일푼에서 영국여왕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고,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위기를 경험하며 그 좌절을 발판 삼아 더 크게 성장했다는 이야기는 조앤 롤링 작가처럼 특별한 사람만의 것은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 어쩌면 모두가 가진 이야기일 수 있어요. 왜냐면 누구나 시련과 좌절을 피해갈 수 없고 살아남은 우리는 모두 그 장애물을 건너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난, 실패, 이혼,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처럼 크든 작든 원치 않는 상황으로 인해 좌절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큰 상처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기도 하지요. 그 상황을 지나오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니체는 말했던가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라고.
힘든 상황에 좌절하게 되는 건, 당신이 부족하고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한계입니다. 혹여 지금 실패로 인해 좌절해 있거나, 깊은 상처 때문에 움츠러든 상태라 해도 괜찮습니다. 누구나 흔들리는 시기가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더 강해질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 더 단단하고 강해지는 힘, 회복탄력성
회복탄력성이란 스트레스와 비극에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더 단단해지고 성장하게 되는 힘이지요. 자신이 가진 내적, 외적 자원을 활용하여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에 그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삼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건 마치 근력을 강화시키는 운동을 할 때 몸은 고통스럽지만 결국에 근육이 탄탄해져 신체가 더 건강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회복탄력성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해 있습니다.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높은 회복탄력성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잘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과도한 불안에 압도되지 않습니다. 위기로 인해 휘어질 수는 있지만 무너지지는 않지요. 오히려 고무공처럼 바닥을 치고 더 높게 튀어 오릅니다. 하지만 회복탄력성이 낮으면 어려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버립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어서 불안과 우울에 압도되죠. 그렇게 멈추어 방어와 회피로 일관하다보면 문제에 직면하는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황이 개선될 수가 없습니다. 성장하지 못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어쩌면 우리는 위기가 아니면 크게 성장할 수 없는 건지도 모릅니다. 넘어져본 사람만이 일어나는 법을 몸으로 익히듯이, 위기에 강한 사람이 되려면 위기를 겪어야 하고,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경험해야 하는 거죠. 다시 말해서 내게 일어나는 비극은 ‘더 나은 나’로 나아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인 것입니다.
# 뇌의 특성을 활용하기
이쯤에서 뇌의 작동방식을 이해하고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상의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에 대처할 때 우리는 보통 익숙한 방식을 사용합니다. 익숙한 방식이라는 것은 뇌 속에서 그 행동의 토대가 되는 신경회로망이 튼튼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뇌는 효율성을 추구합니다. 매 사건마다 신중하게 계산하여 실행하기보다는, 익숙한 행동을 자동반사적으로 하는 것이죠. 이 때문에 똑같거나 비슷한 경험에 대해 이전에 반응했던 방식대로 할 확률이 높은 것입니다. 반응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습관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특정 반응 양식이 안정화되는 것을 신경과학자들은 ‘조건화’라고 합니다. 만약 '불평하기' 혹은 '남탓하기'처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반응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면 조건화가 그 이유가 될 수 있겠지요. 뇌에는 불평하기와 남탓하기 반응이 탄탄하게 자리잡았기 때문에 빠르고 쉽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좌절하지 마세요. 인간의 뇌는 대단히 유연합니다. 새로운 경험을 반복하면 뇌는 신경망을 새로 구축하고 다시 새로운 반응 양식을 습관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뇌가 유연하게 변화하는 것을 ‘신경가소성’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길이 없는 숲속에 누군가 처음 걸어갑니다. 거친 길이 생겨나겠지요. 이후 그 곳을 많은 사람들이 반복해서 지나다니면 선명하고 매끄러운 길로 변모합니다. 이 원리와 같습니다. 새로운 행동을 할 때는 익숙하지 않아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반복해서 하다보면 그와 관련된 신경회로가 탄탄해지기 때문에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그 행동을 쉽게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 지점이 바로 회복탄력성을 키울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고요.
우리는 결국 스트레스 상황에서 회복탄력적인 새로운 대처방식을 택하고 그 것을 반복하여 습관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배우자의 말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습관이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이 반응은 항상 싸움을 만들고 문제를 키우기 때문에 상황을 자신에게 분리한쪽으로 이끌어갑니다. 이 때 새로운 반응, 예컨대 잠깐 쉼호흡을 하면서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대화를 시도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문제가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지겠죠. 이것을 반복하면 습관이 되는 것이고요. 이렇듯 뇌는 새로운 경험 혹은 반응을 통해 변화하고, 반복을 통해 자리를 잡습니다.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방법
이러한 뇌의 특성을 이용해 회복탄력성을 높여봅시다. 회복탄력성을 오랜 시간 연구한 미국의 심리치료사 린다 그레이엄(Linda Graham)은 자신의 저서 <내가 나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에서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 중에서 마음챙김(mindfulness)과 공감적 관계는 신경과학에서 많은 연구를 통해 검증된 방법입니다. 이 둘 모두 뇌의 집행기관인 전전두엽을 강화시킵니다. 전전두엽이 강화되면 보다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지요.
마음챙김은 불교수행법에서 시작된 것으로써 지금 이순간 일어나는 현상 즉, 나의 생각이나 감정 또는 신체변화를 판단없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마음챙김을 연구한 학자들은 이 것이 뇌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얘기합니다. ‘관찰하는 나’가 나에게 일어나는 경험을 한걸음 물러서서 살펴보기 때문에 불안이나 분노같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챙김을 통해 자신의 경험에 주의를 집중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뇌를 자극해서 발달을 촉진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경험에 대해 평가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위기상황에서도 차분하게 해결방안을 찾게 하지요.
# 공감적 관계 속에서 힘을 얻는다
한편, 공감적 인간관계가 회복탄력성을 증가시키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자극은 다른 뇌와의 상호작용입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빨리 성숙하고 또 손상에서 회복되기도 한다는 거지요. 어린아이가 부모와의 애착 관계 속에서 발달이 촉진되는 것, 또 혼자서 크는 아이보다 형제가 있는 둘째, 셋째 아이가 발달이 빠른 것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물론 모든 타인과의 관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지는 않습니다. 유해한 관계도 있지요. 중요한 것은 회복탄력적인 타인과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을 해야한다는 겁니다. 그 때에 가장 효과적으로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신에게 파괴적인 행동을 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관찰하면서 새로운 반응방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매사에 평온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관찰을 통해 학습하는 것과 동시에, 함께하는 그 자체로 뇌는 긍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타인과의 관계는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원이라는 것이죠. 우리 뇌는 타인과 관계맺고 그 안에서 긍정적인 교류를 할 때 나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변화합니다. 굳이 뇌과학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주는 에너지를 통해 생기를 얻게되는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 하게됩니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위로를 얻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누군가를 보며 긍정적인 자극을 얻기도 하는 것처럼요. 더 지혜롭고 단단해지는 힘, 그러니까 사람을 살리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개인주의가 점점 더 강해지는데다 코로나시대로 인해 고립이 늘어나 회복탄력성을 키울 기회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 것은 많은 사람들이 삶의 크고 작은 위기에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녹록치 않은 삶의 여정을 담대하게 걸어나가기 위해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틈틈히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공명하며 살아가야 해요. 그 관계 속에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 좌절과 상처를 견디는 힘이 될테니까요.
어려운 시기에는 하루하루가 도전이고 위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마다 조앤 롤링 작가의 경험처럼 위기를 통해 더 강해졌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절실해져요. 희망이 될 뿐만 아니라 회복탄력적인 삶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살아가면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는 결국 시련을 마주할 수밖에 없고 그 때마다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은 계속되니까요. 그렇기에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모든 분들이 어려움을 마주할 때마다 결국엔 더 크게 성장하기를, 또 더 큰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요.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위 글은 매달 <법무사지>에 연재하고 있는 글 중 4월호에 실었던 글입니다.
브런치 독자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약간의 수정을 거쳐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회복탄력성 개념은 오래 전에 김주환 교수님의 <회복탄력성>을 읽고 정말 큰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이번에 린다 그레이엄의 <내가 나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를 통해서 다시 공부하고 저의 경험에 비추어보면서 더 단단히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힘들 때 부정적인 생각에 갇히거나, 저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었고 이는 훨씬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게 한 큰 요인이었어요. 원치않는 사건은 앞으로도 늘 예고없이 일어날테고, 저는 이제 그런 사실이 두렵지만은 않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회복탄력성을 믿기 때문이겠지요.
브런치 독자분들에게도 꼭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같은 아름다운 봄날에도 여전히 어려움 속에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잘 겪어내셔서 여러분만의 봄날을 꼭 맞이하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꼭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