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을 하다 보면 필요한 게 계속 생긴다. 수납장도 더 필요할 것 같고, (비록 요리는 못하지만..)주방도구도 더 있어야할 것 같고, 로봇청소기도 있어야 할 것 같고. 하다못해 옷이나 신발도 뭔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무언가를 계속 소비하고 있는데, 필요한 것 혹은 사야만 할 것 같은 건 눈에 계속 보이는 이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
(이 주제에 대해서는 저서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에서 '덜 쓰고 더 행복해지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다룬 바가 있다)
얼마 전 수납함이 좀 부족한 것 같길래 남편과 얘기를 하다가, 수납함 하나 사야 하려나? 말했더니
잠깐 생각하던 남편은 '뭐.. 부족한 대로 살아보자'라고 얘기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지.
우리는 어쩌면 올해 이사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데다, (그렇다. 우리는 벌써 몇 번의 이사를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했던 것이다) 둘 다 물건을 계속 사들이는 데에 약간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는 그냥 응 그렇지. 그러면 되겠다. 하고 지나갔지만.
계속 그 말이 맴돌며 몹시 마음에 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 부족한 대로 사는 거지' '부족한 대로 살아보자' 이 말이 어찌나 씩씩하고 든든한지.
이 말이 마음에 쏙 드는 건, 물건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일 거다.
살아보면, 누구나 자기만의 결핍이 생기기 마련이다. 남들보다 뭔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환경여건일 수도 있고. 타인과 꼭 비교하지 않아도 스스로 부족하게 여겨지는 일들. 작아지게 만드는 일들.
왜냐면 사는 게 다 내뜻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서 어떤 일들은 원치 않게 벽에 부딪히고, 어떤 일은 나에게 너무나도 가혹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겪거나 그런 상황이 존재하면, 가여운 인간은 그것을 보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커진다.
결핍된 마음을 소비로 채우려 하거나, 나의 작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매우 큰 가면을 쓰게 되거나, 자신의 여린 마음을 감각하는 게 감당이 되지 않아 워커홀릭으로 살아가거나, 큰 성취나 외부의 인정 같은 것에 매달리기도 한다.
결핍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면 무척 바빠지고, 비용이 많이 들고,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족하면 어떤가. 사는 데 문제가 없다면. 보통에도 못 미치면 어떤가? 내가 괜찮다면.
없으면 없는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작아지면 작아지는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냥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작아질 때, 남들 다 가진 것을 못 가진 것 같을 때, 남들 다 해 본 경험을 못 해봤고,
그래서 남들 다 가진 좋은 기억을 나는 못 가진 것 같을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꽤 괜찮은 방법이 한 가지 더 있다.
'부족한 대로 살아보자'라고 말하고 그냥 살아보는 것.
내가 부족함이라 생각하는 그것을 무턱대고 덮어두기 위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씩씩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족한 대로 살아보자.' 뭐... 혹은 '엉망인 채로 살아보자' 일수도.
요즘의 현대사회가 결핍감을 일으키기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멀쩡해 보이지만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참 많고,
더러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부족하다는 느낌'이 부추겨지기도 한다.
상담을 요청하는 분들 중 이런 이슈를 호소하는 분들은.. 놀랍게도.. 신기하게도 하나같이 어떤 면에서는 멋지고 대단한 분들이다. 반짝거리는 것이라고 해서 어둠이 없을 리가 없다.
아니, 모두가 반짝이면서 동시에 흉터를 가지고 있지 않던가..
우리 모두는 다 어떤 면에서는 부족한 법.
부족을 다 채우려고 하지 말고,
애써 넘치려고도 하지 말고,
부족한 대로 살아보자.
그게 바로 이 소비의 시대, 불안의 시대,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씩씩한 마음이다.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