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령 Aug 02. 2021

기꺼이 상처받을 수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 어른이 될 것이 아니라, 

기꺼이 상처받을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상처를 받아도 그 것을 치유할 수 있는 

즉,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가슴을 열고 모든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내면의 부모' 에게서 나온다. 


내면의 부모란, (어쩌면) 당신이 경험했을지도 모를 엄격하고, 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부모가 아니다. 

쉽게 비난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그런 부모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당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했을 존재. 따뜻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크고 넓은 사람'.

뒤에서 늘 지켜보며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완전한 부모다.  

나에게 필요한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어른. 그 사람이 내 마음에 자리잡아야 한다.


그런 부모가 내면에 자리잡을 때 우리는 ‘열린 가슴’으로 살아갈 수 있다. 

모든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열린 가슴. 어떤 상처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마음. 

그 것이 진정한 단단함이다.  



상처를 받았는가. 

오랜시간 혼자서 끙끙 앓아왔는가. 


내면의 부모는 이렇게 말해준다. 


‘얼마나 힘들었어. 혼자서 그걸 어떻게 견뎠어.' 


‘너무 아팠겠다.' 


‘얼마나 불안했니, 얼마나 두려웠니..' 


‘그 일은 너무너무 슬펐지. 그래.. 정말 슬픈 일이야.' 


‘괜찮은 척 하느라 얼마나 애썼어’  


‘견디는 건 때론 힘든일이야 그치?’  라고...


그 위로는 당신이 충분히 아파하도록, 충분히 눈물흘리도록 허용해준 후

천천히 일어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요즘 '위로'에 대해서 고민할 일이 생겨 오랜시간 생각해보고 있는데요.

진짜 위로는 뭘까. 사람들이 원하는 위로.. 아니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위로는 뭘까. 하고요.


어떤 사람에게는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고,

어떤 사람은 위로를 했다고 하는데 상대는 더 상처가 되는 일도 생기고요. 

너무너무 따뜻한 단어지만,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위로이지요. 

마치 '사랑' 과도 같은 거죠.

사랑.. 얼마나 흔하게 쓰이는 말인가요. 하지만 그 사랑이 폭력이 되는 일은 더 흔한 일이 아니던가요. 

때때로 그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무 지겹기도 합니다.

사랑을 앞세워서 자기멋대로 행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말이죠..


그래서 고민 합니다. 어떻게 위로를 하는걸까.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위로는 뭘까 하고요..


모두가 자신에게 꼭 맞는 위로를 들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줄 수 있는 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편안한 밤 되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위로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