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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Aug 21. 2021

3. 미래가 두려운 건 불확실성 때문이 아니다

[연재] 불안은 어떻게 위안이 될 수 있을까 3화


안녕하세요, 김혜령 작가 입니다.

1,2화에 이어 오늘은 불안을 다루는 지혜를 나눠보려고 해요





우선 불안은 우리를 지켜주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실히 했으면 합니다. 두려움은 우리에게 위험을 알려주는 시그널이며, 이로 인해 인간은 오랜시간 생존해올 수 있었어요. 빨간불이 켜지면 위험을 감지하고 대비할 수 있는 것과 같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래 글에 쉽게 쓰여있으니 참고해보세요. 



https://brunch.co.kr/@kundera/125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불안감' 자체를 부정적인 감정으로 분류하는 오류를 막기 위해서 입니다. 나쁜 감정이라고 여기면, 그 감정을 싫어할 수 밖에 없어요. 무언가를 싫어하면 저항이 생기고, 이 저항감은 또다른 문제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불안감은 나의 생명을 지켜주는 시그널, 즉 경보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에요.


현대에 와서 이 경보기가 시도때도 올리고, 무엇보다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일들 (시험, 취업, 관계, 발표 )에서도 너무 민감하게 느끼는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발표나 오디션 등 사람들 앞에 서는 상황에서 불안한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낄정도로 극심한 불안감을 느낀다면 얼마나 감정적 소모가 크겠어요.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무수한 일들 앞에서 생사를 다녀간다면 그 때마다 수명이 줄어들어 정말로 빨리 죽어버릴지도 모릅니다. 



#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한거라면

불안은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납니다. 퇴사를 고민하는 A씨의 예를 들어 볼게요. 퇴사를 하고 나면 더 좋은 일자리가 있을지, 새 일자리를 구하면 또 어떤 일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수가 없습니다(예측가능성 낮음). 게다가 거기서 일어나는 일과 사람을 내가 적절히 잘 대처할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어요(통제가능성 낮음).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앞두고 있으니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겠죠.


-예측불가능성

 모든 일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은 '중립적'인 사실이에요. 최근 막을 내린 올림픽을 생각해보세요. 한국팀이 양궁에서 강하다고 해서 당연히 금메달을 딸거라고 예상할 수 있나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굳이 시간을 내어 찾아보고 열렬히 응원할까요. 단지 '기대'할뿐이지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즐기게 됩니다. 드라마는 또 어떤가요.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막장이라고 욕하지만 시청률이 그렇게도 높은 이유는 그 어떤 막장을 상상했을 때보다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알 수 없다는 것' 그 자체는 부정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즐거움일 수도 두려움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 미래가 두려운 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자동적으로 안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이 불안을 일으키고 있는 거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앞두고 설레었던 건,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하기 때문이었죠. 게임에 중독이 되기도 하는건 항상 이기기 때문이 아니잖아요. 언제 이길지도 모를 그 순간을 위해 몇번 지는 것 정도는 즐거움의 일부가 되죠. 게임에서 계속 살아남을 때보다 죽기도(?) 할 때에 오기가 생겨 더 게임을 붙들고 있지않나요. 


그렇다면 우리 삶도 알 수 없다고해서 그저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해 보는거에요. 때때로 신나는 일이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게임처럼요. 비록 고단하고 지치는 날들이 이어지더라도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기쁜 일들은 재미요소가 되어줄 거에요. 무작정 원치않는 일을 상상을 하기보다는 재밌는 영화의 속편을 기다리듯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대해보는 거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 앞서서 앞날을 디테일하게 그려놓는 것은 금물입니다. 그저 오늘 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면 그뿐이에요. '내 인생은 이러이러하게 흘러가야 한다'는 정답지를 미리 가지고 있으면, 거기서 벗어날까봐 불안이 높아질 수 밖에 없어요. 자신이 정해둔 정답에 집착하면 할수록 원하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괴로워집니다. 조금만 어긋나도 '재난이야!' ' 최악이야!'  '망했어' 라고 판단하기 쉽죠.  그러니 하루하루 충실하되 삶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놓으세요.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삶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는 거에요. 대부분의 일들은 어차피 우리가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통제불가능성

퇴사를 앞둔 A씨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와 봅시다. 퇴사 이후의 상황들은 어차피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알 수 없는 일들이 있어났을 때 자신이 잘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A씨에게 필요한 건 '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잘 대처할 수 있을 거야.' 라는 믿음. 또 '잘하지 못하면 좀 어때, 실수하고 깨지면서 배우는거지 뭐' 라는 긍정적인 생각인 겁니다. 마주하게 되는 상황들을 어떻게든 다룰 수 있다고 믿는 것. 혹여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더라도 그 것이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라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고,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그쵸? 자동적으로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긍정적인 해석은 단단한 마음, 건강한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능력이에요. 그런데 요즘엔 마음이 연약한 분들이 참 많지요. (그렇다고 내 마음이 약해빠졌다고 타박하지는 마세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니까요. 이제부터 단단하게 만들어나가면 되잖아요?)


2화의 '팁'에서 마음의 근력을 단련시켜보자고 제안했었지요. '회복탄력성'을 길러보자고요. 저는 그 것이 바로 통제불가능성을 마주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건 곧 건강하고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그 것이 결국 불안을 낮추는 힘이라는 거에요.



# 불안한 상황들을 기꺼이 마주할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저마다 유독 불안을 강하게 느끼는 영역이 있을 겁니다. 돈, 진로, 미래, 연애, 가족 등등. 하지만 마음의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그 문제 자체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끝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애인과의 관계에서 상대가 마음이 식을까봐 불안을 느낀다고 칩시다. 불안해하지 않도록 애인의 마음을 계속 확인하고 사랑을 증명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는 있겠죠(문제 자체를 해결하고자 하는 방식). 하지만 내 마음이 단단해지면 상대로부터 그런 요구를 하지 않더라도 이 관계를 충분히 믿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설령 상대의 마음이 식는다고 하더라도 하늘이 무너지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한다면 그저 지금 사랑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는 거에요. 어차피 우리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다만, 모든 일들이 원치 않게 흘러가더라도 내 마음이 괜찮아야 하는 거에요. 삶에 끌려 다니는 게 아니라, 삶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괜찮아질 수 있습니다. 


마음 자체를 단단하게 만든다면  내가 상대해야 하는 사건들을 일일이 완벽하게 해결하지 않더라도 모든 일들을 무던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면역력이 약하면 모든 자극이 '위험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작은 자극에도 병에 걸릴까봐 노심초사하겠지요. 하지만 면역력이 강하면 주변 환경이 '위험한 것' 이 아닌 그저 내가 경험하고 함께할 대상이 되는 겁니다. 겁이 많은 사람은 벌레 하나에도 놀라고, 어둠도 무섭고 사람도 무섭고 귀신도 무섭습니다. 그러나 씩씩한 사람은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는 대신에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겠죠. 삶에 집중할 수 있는 거에요.


 마음의 근력을 키우면 이처럼 삶에 집중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어떻게든 흘러간다는 믿음. 삶 자체를 기꺼이 마주할 용기를 '회복탄력성'을 통해 키울 수 있다는 것이고요. 회복탄력성을 회복해서 마음의 기초체력을 기른다고 볼 수 있는 거죠. 



# 회복탄력성 - '기억자아'의 문제

회복탄력성이란 앞서 말씀드렸듯 어려운 일들을 마주했을 때, 그 경험을 발판삼아 오히려 더 높이 성장하는 힘입니다. 때문에 시련, 역경 따위의 것들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성장의 도구가 되는 셈이죠. 그런데 이 회복탄력성은 엄청나게 특별한 능력이 아닙니다. 삶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문제에요. 내가 경험하는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태도에 대한 것이에요. 별거 아니죠? 그런데 이 별거 아닌 것의 힘이 어마무시 합니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져요. (이 내용에 대해서는 2화에서 추천드린 책을 통해 더 깊이 알아가시길 권해드려요)


우리에게는 '경험자아' 와 '기억자아'가 있습니다. 경험자아는 현재 내가 경험하는 것을 느끼는 자아입니다. 이 자아는 쾌락을 즐기고 괴로움을 피하고 싶어 해요. 단순하고 또 당연해 보이죠. 그런데 '기억자아'는 지나간 경험을 회상하고 평가합니다. 단순히 느끼는 게 아니라 그 것을 제 나름대로 해석을 하는 거에요. 그런데 이 경험자아와 기억자아는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예측과 그에 다른 선택('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은) 은 전적으로 기억자아에 의존해서 이루어진다는 거에요.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더 중요한 것은 '기억자아'라고 할 수 있죠. (참고도서. 김주환 교수 <회복탄력성>)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자신을 주인공으로한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마다 자기 인생을 스토리텔링하고 있어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자신에 대해서 혹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미 그 스토리텔링이 타인에게 전달이 되는 거에요. 내 삶을 팩트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서 한번더 해석을 거쳐서 전달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 이야기는 희극일수도 비극일수도 있는 겁니다. 이야기 속에서 어떤 사람은 자신이 '피해자'역할을 하고(ex. 누군가로 인해 항상 상처받고 손해를 본다는 이야기), 어떤 사람은 자신이 '영웅'이 되기도 합니다(ex.자주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다는 이야기) . 우리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일들이 마음을 거쳐서 경험되고 이해되는 거에요. 


이 '기억자아'가 내 삶을 긍정적이고 즐거운 방향으로 해석하고 있다면, 바로 회복탄력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B와 C가 똑같이 퇴사통보를 받았어요. B는 '그럼 그렇지. 내 이럴줄 알았어. 언제 나한테 좋은 일이 있었던 적이 있었나? 늘 이렇게 거지같은 일만 일어나지. 아, 또 어떻게 새로 직장을 구하냐. 일자리도 부족하다는데. 망했네.. ' 라고 생각해요. C는 '안그래도 회사일이 나랑 잘 안맞는 것 같았는데, 더 잘맞는 일을 찾아보라는 기회일 수 있겠다. 당분간 경제적으로는 좀 빠듯하겠지만 잘 준비해서 더 잘 맞는 직장을 구해봐야겠어. 이참에 내가 어떤 일을 진짜 하고 싶은지도 좀 생각해봐야겠어. ' 라고 생각합니다. C에게도 퇴사사실 자체가 속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생각하다보니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설레이기까지 합니다. 뭔가 더 잘풀리고 있다는 느낌마저 드는거죠. 


B와 C는 똑같은 사건을 앞두고 해석이 전혀 달랐어요. 이렇게 보면 '퇴사'라는 사건 자체는 '중립적'인 겁니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비극적인 사건일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거죠. 이건 자신의 삶에 대한 해석이기도 했죠. 단순한 해석이지만, 이로인해서 B와 C의 미래는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것이 '기억자아'의 힘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이렇게 긍정적인 기억자아를 갖는 것이 사실 쉬운 건 아닙니다. 특히나 어렸을 때 비극적인 경험을 너무 많이 한 사람들은 '내 인생은 잘풀릴거야'라는 믿음을 갖기가 어려워요. 어린시절에 사랑과 관심이 결핍이 되어 있었다면 세상을 믿고, 자신을 믿는 힘이 부족할 수밖에 없지요. 


그럼 여기서 '아, 맞아. 나는 어렸을 때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 지금 이모양이 된거야. 난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혹여 그런 생각을 하셨더라도 괜찮습니다. 괜찮은 이유를 다음 4화에서 알려드리려고 해요. 회복탄력성은 후천적으로도 충분히 키울 수 있는 것이거든요. 분량상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 하도록 할게요. 


우리, 포기하지 않고 마음의 근력을 키워서 불안에 잡아먹히지 않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요. 그게 바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나다운 삶을 만들어가는 거니까요. 


다음 연재에서 뵙겠습니다 :) 








tip.

불안, 이렇게 다뤄보세요


<감각에 집중하기>

불안감이 올라올 때, 그 불안이 자신의 신체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관찰해 보세요. 감정은 외부 자극에 대한 즉각적인 신체의 반응입니다. 단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을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불편한 감정이 느껴질 때 자신의 호흡은 어떤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진 않았는지, 손에 땀이 나진 않는지, 몸이 전체적으로 경직되어 있지는 않은지 세심하게 살펴보세요.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흘러가도록 하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불안으로 시작된 생각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신체의 감각에 집중하면 됩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자신을 살펴보세요. 그러면 어느새 감정의 강도가 낮아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에요. 






<불안과 함께하는 나다운 삶>  with 김혜령 모더레이터

- 2030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대면 세션그룹

 신청링크 => https://www.sadam.me/membership/?idx=21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쉬운 방법은 지지적인 관계속에서 공감을 통해 회복탄력적인 뇌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회복'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우리는 누구나 회복탄력성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단지 이 기능을 되찾아야 할 뿐인 거죠. 우리 사회는 경쟁, 고립을 부추기면서 회복탄력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힘이 작용합니다. 공감적인 관계, 지지적인 관계 속에 있어야만 마음은 단단해지고 그렇게 불안을 낮출 수 있어요. 멘탈헬스 서비스 <사담>의 세션은 이러한 지지적인 관계 속에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게 합니다. 개인 심리상담이 부담된다면 <사담>을 통해 안전한 환경에서 마음의 짐을 덜어보세요.





* <사담>은 8인 이하 그룹으로 개인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멘탈 공유 프로그램입니다. 영미권에서는 이미 pace.group, real 등 다수의 그룹 세션 중심 온라인 멘탈케어 서비스들이 확산되고 있으며(참고링크 https://pace.group/), 다소 느리지만 국내 또한 조금씩 그 수요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심리적 어려움으로인해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 들 때, 안전한 환경에서 고민과 걱정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한결 수월해질 겁니다.  저와 함께 <사담>에서 마음의 짐을 덜어보세요. (https://www.sada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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