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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Aug 18. 2021

2. 내가 나를 믿는 한 누구도 나를 비난할 수 없어요

[연재] 불안은 어떻게 위안이 될 수 있을까 2화


내가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나를 비난할 수 없어요. 설령 누군가 나를 험담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평소에 내가 나를 믿어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안아주고 있다면 그런 것들이 내게 큰 상처를 입히지 않아요 .(중략) 주변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은 내가 나를 그만큼 엄격하게 대하고 있다는 증거에요. 





안녕하세요 독자분들,

다시 찾아온 김혜령 작가입니다. 

<불안은 어떻게 위안이 될 수 있을까>는 연재로 꾸려지고 있으니,

 1화부터 보실분들은 아래 링크 참고해주세요.


https://brunch.co.kr/@kundera/222


5화라는 제한된 연재에서 어떤 불안에 대해 나누면 좋을까 고민했습니다.

사실 불안은 아주 큰 개념이기 때문이지요. 심리학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사회학에서도 다루는 주제이고요. 

저의 책 <불안이라는 위안>에서는 크게 다섯 챕터로 나누어서 살펴보았습니다. 

자아, 사회, 일터, 사랑, 가족 에 대해 다루었어요.


<불안이라는 위안> 목차


우선, 이번 연재에서는 '타인과 관련된 불안'으로 좁혀 보았습니다. 관계에서의 불안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좁혀졌다고 보기에 애매합니다.  사랑도, 가족도, 직장에서도, 더 넓게 사회에서도 결국 모두 사람과 연결되니까요. 사람 때문에 생기는 모든 불안을 고려한다면 아주 큰 부분이며, 다양한 영역(사랑, 가족, 직장, 사회에서의)에서의 불안이 결국 하나의 줄기로 통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를 바퀴벌레 때문에 무서워서 살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도 '때로 사람만나는게 너무 두려워.' '다른 사람과 갈등을 겪는게 힘들어' '욕먹을까봐 불안해' 라며 사람 때문에 일상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만큼 사람에게 사람의 영향력은 엄청나요. 



# 관계에서의 불안

- 타인의 시선은 때로 나를 사라지게 해

저는 '관계'를 무척 어려워했습니다. 고백하자면, 인간관계에서 가장 큰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것은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에요. 이미 두터워진 관계 속에서도 불쑥불쑥 불안감을 느끼고, 이 관계가 깨지거나 상대방에게 비난이나 미움을 받는 생각에 휩싸여서 옴짝달싹 못하기도 했습니다. 이 생각은 나중에 알아차렸을 뿐, 그 전에는 그저 '불안감'이라는 막연한 감정으로만 경험했습니다. 불안할수록 저는 저를 포장했어요. 혹시라도 모를 미움과 비난을 피하기 위해, '착한아이'를 연기했죠. 그 때문인지 20대까지는 인간관계가 무척 넓었음에도 부자연스러운 관계가 참 많았습니다. 거리두기에 늘 실패했고, 상처를 입으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 시간들이었어요. 때때로 제 모습은 광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공기를 견디지 못해 항상 타인을 즐겁게 하려고 웃고있는 광대말이죠. 그렇게 애쓸수록 저는 저 자신과 멀어졌어요. 솔직하지 못했으니까요.


1화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불안의 진짜 문제는 나를 나답게 살지 못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을 피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어요. 두려워하는 상황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런 노력은 의식적이기도 무의식적이기도 하죠. 그러다보면 결국, 나의 결대로 살아가기 보다는 '방어하는 삶' '수습하는 삶'이 되어버립니다. 갈등이나 불편한 상황은 피했을지 모르지만 나를 나답게 지켜내지는 못하지요. 저는 관계에 있어서 그랬던 겁니다. 


후에 저는 공부와 상담을 통해 이런 제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시절의 불안정한 애착관계가 내면의 불안을 키워냈고, 어른이 된 저는 그 불안을 피하려고 광대같은 행동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지요. 어머니는 저에게 최선의 사랑을 주셨지만, 그 자신도 본인의 큰 상처를 안고 살아내느라 안정적이고 단단한 돌봄을 주시기는 어려웠습니다. 이해해보건데, 본인의 내적 결핍과 불안을 감당하는 것만도 벅찬 시간이었을 겁니다. 어린 저는 어머니를 만족시키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지만, 때때로 날카로운 비난과 차가운 공기를 피할 수 없었어요. 그런 시간마다 어린아이는 겁먹은 강아지가 되어 얼어있었던 거죠. 아마도 그런 환경과 저의 기질이 만나 불안은 더 커졌을 겁니다. 저를 잡아삼킬정도로요. 어른이 되어 비슷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저는 저를 왜곡하거나 포장하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마음의 두려움을 없앨 수도 낮출수도 없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관계속에서 무리하게 애쓰고 있다면, 두려운 상황을 피하는 방식으로 행동해온 것은 아닌지 생각 해보세요.


예를 들면 이런겁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  무시당하는 상황이 두려워서 )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 비난받는 것이 두려워서 )

남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미움받거나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남들보다 우월해지기 위해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이 두려워서) 



이러한 이유들로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나요? 


누군가에게 욕먹지 않기 위해, 관심과 인정을 받기위해 두꺼운 가면을 쓰는 삶. 이제는 그 가면이 너무나 익숙해져버려 가면이 나인지 내가 가면인지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거죠. 그럴 수록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자신만의 색깔도 결도 잃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이렇듯, 타인 때문에 내가 나답게 살지 못하고 있다면 .. 사르트르의 말처럼 그 사람에게 타인은 지옥임에 틀림없습니다. 



# '거울자아'  : 타인은 나의 일부

물론, 한 개인에게 타인은 빠질 수 없는 부분입니다. 타인을 빼놓고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이해가 잘 안 된다고요. 제가 질문을 하겠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지금 바로 머릿속으로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는 이미지를 그려보세요. 성격, 외모, 장&단점을 포함한 여러가지 특성들이 있을 겁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대강 정의내려 보세요.


자신의 이미지 혹은 정의에는 어떤식으로든 '남들이 보는 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아정체성에는 '타인의 시선'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죠. 이는 저의 주장이 아니라, 미국의 사회학자인 찰스 쿨리의  거울자아(looking glass self) 이론의 내용입니다.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을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자신이라고 믿게 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되고 그 관계 안에서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어떤 기대를 하는지도 알 수 있죠. 우리는 알게 모르게 타인의 시선을 자신의 정체성에 흡수시키고, 또한 타인의 기대에 부합하도록 행동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타인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살아가고 있어요. 그게 바로 뼛속까지 사회적인간인 우리의 현실이죠. 


여러분도 '남들이 나에 대해서 이러이러하게 생각할거야'라는 생각을 자동적으로 하며 살아왔을 겁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을테고요. 사소한 예로, '내가 이런 옷을 입으면 남들이 흉볼지도 몰라' 라는 생각은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기보다는, 남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옷을 입게 했겠죠. 




# 나를 향한 비난은 누구의 목소리인가

그런데 만약 머리속 생각이 , '남들이 나를 비난할거야' '남들이 나를 우습게 생각할거야'라는 생각으로 나아간다면 어떨까요. 그 생각에 너무 사로잡히다보면 두려움이 어마무시하게 커져버립니다. 머리속에 남들이 나를 평가하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가득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지요. 흔히 얘기하는 '발표불안'이나 '평가불안'은 이같은 날카로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사람들이 나를 관대하게 받아주고, 실수를 한다고 해도 따뜻하게 바라봐준다고 믿는다면 과연 남들앞에 서는 것이 그렇게 두려울까요? 아마도 타인의 시선 때문에 불안해하는 많은 분들의 머리속에는 아마 나를 비난하는, 나를 엄격하게 평가하는 목소리가 가득할 겁니다. 


누군가 나를 매순간 깐깐하게 심판하고 검열하고 있다면 당연히 긴장되고 불안할 겁니다. 그건 당연해요. 그런데, 그 목소리는 과연 누구의 목소리일까요. 정말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주시하며 애써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날카롭게 비난할까요? 


다행히도,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그렇게 큰 수고를 들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당신 안에 무서운 목소리가 있다면 그건 결코 타인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타인의 시선이라고 믿는 나의 생각인거죠. 제가 이렇게 확신에 차서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작정 그 목소리에 겁먹지 말고, 나를 비난하는 그 목소리는 누구의 목소리인지 우선 한 번 관찰해보세요.


저 또한 그 목소리를 관찰하면서, 그 목소리가 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이었어요. 다만, 처음부터 내가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고 오래 전에 언젠가 들었던 엄마의 목소리를 내면으로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어쩌면 훨씬더 심화된 버전의 무서운 엄마를 마음속에 새기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 목소리는 제가 무얼하든 따라다녔습니다. 이제는 상당히 자유로워졌지만, 거기에 완전히 갇혀있을 때는 엄청난 자기검열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지금도 제 머리속에 그 날카로운 목소리가 자리잡고 있다면, 지금처럼 글을 쓸 때 조차 

'니가 뭐라고 이런 글을 써'

'부처났네 부처납셨어. 뭘 다 아는 것처럼 떠들고 있어'

'쓸데없는 글 쓰지말고 좀 건설적인 일을 해' 

라는 목소리들이 떠드는 것을 듣고 있어야 했을 겁니다. 그 목소리들을 하나하나 받아주기 시작하면 저는 옴짝달싹 못한채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겠죠. 예전의 저처럼요. 


다행히 저는 이제 그 목소리를 구분해낼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저의 생각을 씩씩하게 써내려가고 있네요. 이처럼 자기안의 따가운 시선은 그 언젠가 경험했던 부모님의, 선생님의, 친구의 목소리일 수 있습니다. 내가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타인이 다른 타인을 향해 비난하는 것을 보며 그 가해자의 목소리를 자신 안으로 가져왔을 수도 있고요. 미국의 만화가 줄스 파이퍼는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자랄 때 아버지의 모습, 언어 습관, 자세, 걸음걸이, 생각,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경멸을 물려받았다." 라고요. 이를 두고 임상심리학자 타라 브랙은 우리는 보통 부모가 그만두고 떠난 자리를 이어받아 자신의 결함을 스스로 예리하게 상기시킨다고 설명해요. (참고 도서 <받아들임/타라브랙>) 


어쨌거나 저는 그 따가운 목소리의 실체를 알게되면서 그 것이 바로  '내가 나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최대 장애물인 것을 알았습니다.  '타인의 시선이라고 믿는 내 생각'이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땐 정신이 번쩍 들었지요. 


내가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나를 비난할 수 없어요. 설령 누군가 나를 험담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평소에 내가 나를 믿어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안아주고 있다면 그런 것들이 내게 큰 상처를 입히지 않아요. 제가 확신에 차서 '따가운 비난이 타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나의 목소리'라고 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주변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은 내가 나를 그만큼 엄격하게 대하고 있다는 증거에요. 


그러니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무서운 감독관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죠. 내면에 심판관 혹은 감독관을 데리고 사는 한, 일상은 두려움의 연속일 겁니다. 


자라면서 우리는 내면의 심판관의 자리를 따뜻한 부모자아의 자리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부모자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전 글에서 다루었으니 아래 링크를 참고해보세요.

https://brunch.co.kr/@kundera/217



2화는 여기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3화부터는 불안이라는 녀석을 잘 데리고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다룰 예정이에요. 곧 다시 만나요!




tip.

불안, 이렇게 다뤄보세요


<회복탄력성>

오늘의 팁은 하나의 제안입니다. 마음의 근력을 키우는 데에 집중해 보자는 거에요.


회복탄력성은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그 경험을 발판삼아 오히려 더 성장하는 마음의 근력입니다. 우리가 보통 힘든 일을 겪을 때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좌절감을 느끼잖아요. 그럴 때 바닥을 딛고 더 높게 튀어오르는 힘이 바로 회복탄력성 입니다. 고무공처럼 마음이 탄성을 갖는다는 거지요. 그렇기에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실패, 역경, 시련이 삶의 장애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도구가 됩니다. 마음에 탄성이 높으면 어떤 사건도 사람도 두렵지 않은 것이 됩니다. 좋은 일은 좋고, 안좋은 일들은 결국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테니까 더 좋습니다. 그러면 설령 불안감이 느껴지더라도 그게 나를 움츠러들게 하는 종류의 것은 아닌거지요. 기꺼이 경험해볼만한 것들이 되는 겁니다. 이제, 자신이 가진 문제에 몰두하기보다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데에 포커스를 맞춰보는 건 어떨까요.


관련된 책을 추천드려요. 다음 3화에서 바로 이 회복탄력성에 대해서도 다루어볼 예정이랍니다. 혹시 그 전에 호기심이 생긴다면 책을 참고해보시면 좋겠지요. 


* 추천책

1. <회복탄력성 > 김주환

2. <내가 나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린다 그레이엄

3. <하버드 회복탄력성 수업> 게일 가젤







<불안과 함께하는 나다운 삶>  with 김혜령 모더레이터

- 2030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대면 세션그룹


 신청링크 => https://www.sadam.me/membership/?idx=21



* <사담>은 8인 이하 그룹으로 개인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멘탈 공유 프로그램입니다. 영미권에서는 이미 pace.group, real 등 다수의 그룹 세션 중심 온라인 멘탈케어 서비스들이 확산되고 있으며(참고링크 https://pace.group/), 다소 느리지만 국내 또한 조금씩 그 수요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심리적 어려움으로인해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 들 때, 안전한 환경에서 고민과 걱정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한결 수월해질 겁니다.  저와 함께 <사담>에서 마음의 짐을 덜어보세요. (https://www.sada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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