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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Nov 11. 2021

정규직 인생에서도 공허감은 피할 수 없고

나를 이해할 때 나를 지킬 수 있습니다 1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10여 년간 한 회사에 몸 담아왔다는 30대 여성 J씨는 공허감과 우울감으로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학창 시절엔 늘 성적이 우수했고, 서울의 상위권 대학을 졸업해 모두가 알만한 회사에 취직해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죠. 소위 정규직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따금씩 밀려오는 공허감을 이겨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올해 진급자에서 밀린 게 계기가 되어 마음을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심리상담을 받기로 한 겁니다.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녀가 상담 초기에 자주 했던 표현은 "사실 내가 뭘 하고 싶어하는 건지 모르겠어요."였습니다.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죠.

 

이는 사실 J씨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의외로 이미 자리를 잡은 직장인들로부터 많이 듣는 고민입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퇴사는 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딱히 가고 싶은 회사가 있는 것도,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는 것도 아닌 겁니다. 왜 안정된 삶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많은 분이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걸까요?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해졌다고는 하나 요즘 풍경을 보면 타인을 따라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대화 등에서 영향을 받아 상품을 구매하죠. 여가 생활마저도 '유행'이 존재합니다. 그런 것들을 하지 않으면 괜히 뒤쳐지는 기분도 든다고 하고요. 문제는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모르는 채로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값비싼 옷이나 가방을 구매하거나 유행하는 취미 활동을 타인을 쫓아서 해봐도 큰 만족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는 넓게 보면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을 가야만 하고, 이름 난 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직해야만 안심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대다수가 인정해주는 모양새를 갖추지 않으면 낙오되는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거죠. 나의 욕구나 적성이 거기에 있지 않을지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요. 그러니까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 '정답'으로 보이는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실제로 30,40년 전만 해도 안정을 위한 정석과 같은 길이 존재하긴 했죠. 어려운 환경이라 해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직장에 취업을 하면 기본적인 삶의 안정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부지런히 노동을 하며 아끼고 모아서 집을 마련하는 것도 현실적인 목표였고요. 그렇게 건실하게 살아내면 노후가 보장되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노력이 만족할만한 결실을 보장해준다고 보기는 어려워졌어요. 평생직장의 개념도 사라진 데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정'이라는 것을 얻어내기 어려워 보이는 현실인 거죠.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해서 받는 월급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기에도 빠듯한데 어떻게 집을 마련하고 언제 노후를 준비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현실적인 문제로 삼포세대가 늘어가고 있다는 것도 당연한 현상일 겁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 세대가 쟁취한 안정을 얻어낼 수 없을 것 같은 사회에서 공허감과 우울감을 느끼지 않기 어려운 게 사실이에요. 때문에 어떻게든 정답처럼 보이는 남들의 모습을 따라 사는 게 최선이 돼버리는 거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 달라질까요? 결혼을 해서 자녀를 키우면 오히려 이 모습은 확장됩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불안을 느끼는 원인은 '남들이 시키는 사교육을 자녀에게 시키지 못할까 봐'이더군요. 이 때문에 아이에게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 살피기보다는 주위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사교육을 시키는지 알아내는 데에 에너지를 쏟습니다.


언뜻 보면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J씨처럼 공허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런 다양한 현상이 결국 같은 줄기에서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 실패한 거죠. 삶은 결국 '나'를 데리고 사는 것인데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사니까 자꾸 혼란스러워지는 겁니다. 




(이 공허감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위 글은 저의 저서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에 담겨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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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상담심리사 김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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