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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Feb 10. 2022

고유한 빛을 지켜줄 수 있기를

엄마 1년차의 다짐


첫돌을 이제 막 지난 딸아이는 걸음마를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걷는 서툰 발걸음에 열심과 즐거움이 동시에 묻어있다. 춤추는 것 같기도 하다. 몸짓 하나, 표정 하나가 어쩔 수 없이 기쁨이 되어버리고 만다.


 아이와 내가 한 몸이었던 시절, 아이의 이름은 ‘여름’이었다. 남편에게 ‘여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어?’하고 물었을 때, 그는 밝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내면의 어둠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각자가 가지고 있던 상처와 삶의 무게를 이해하는 대화가 있었다. 아이가 밝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은 아마도 우리가 가진 어둠이 때로 너무 버거웠다는 뜻이기도 할테다. 또, 살아가는 동안 밝기만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한지 1년, 아이는 제 모습대로 크고 있다. 유일무이한 생명체, ‘있는 그대로’ 너무나 충분하고 완전한 존재다. 가식도 과장도 없이 오롯이 드러나는 그 빛깔이 너무 소중해서 자연스레 바라게 된다. 아이가 자신이 지닌 결대로 살기를. 본래 가지고 태어난 빛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그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부모는 알게 모르게 아이가 사는 세상의 틀을 만든다. 아이의 우주를 한정 짓기도 확장시키기도 한다. 그 우주에 적응하기 위해 아이는 자라며 ‘거짓자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타인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모습이 바로 거짓자기다. 부모가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과 방식을 강요할수록 아이의 참 자기는 작아지고 거짓자기는 커진다. 그럴수록 진정한 자기자신과 멀어진다. 모든 아이들에게 사춘기의 반항이 필요한 이유는 부모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를 명확히 구분 지어야하기 때문이리라. 그럴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으니까. 


 별다른 사춘기 없이 순응적인 편이었던 나는 성인이 되고나서 더 치열하게 자신을 찾아다녔다. ‘참 자기’를 지켜내는 일은 때론 아팠다. 그러나 절실했다. 나답게 살기 위해. 나의 빛깔과 결을 되찾기 위해.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같은 아이를 지켜주기 위해 우리가 무얼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여든다섯의 노학자 이근후 교수가 자신의 저서에서 부모노릇에 관해 말했던 문장이 인상깊게 남아있다. ‘내가 준다고 해서 아이가 받는 게 아니고, 내가 주지 않은 걸 아이가 받기도 하기 때문에’ 부모노릇이 어려운 거라고. 그렇다. 아이들은 부모가 최선을 다해 사랑을 줘도 때로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은 결핍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부모도 단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완벽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진출처 unsplash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내 욕심같다. 뭔가 보태려 하기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육아도, 사랑도, 교육도 과잉인 시대에 무얼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아는 게 더 우선일 것 같다. 모든 부모가 자기방식대로의 사랑을 주고 있지만, 그 것이 아이에게 꼭 맞는 방식이라는 보장이 없다. 아니, 대부분이 어긋나게 된다. 그래서 부모는 늘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최고의 돌봄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악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지금의 딸아이는 알맹이 그 자체이다. 어떤 껍데기도 걸치지 않았다. 이 아이도 점차 거짓자기를 발달시켜나갈 것이다. 살기 위해서,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때가 올 것이다.

거칠고 혼란스러운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부디 나의 최선이 아이 본연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는 길이기를 바랄뿐이다. 그건, 아이에게 거짓자아를 강요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런 다짐을 하고 있자니, 서툰 발걸음을 내딛는 아이의 몸짓이 유난히 자유로워 보인다. 




위 글은 아이 첫돌즈음 일기로 써둔 글이었는데요. 다듬어서 에세이 잡지에 박제해버렸습니다. ( 월간에세이 1월호에 실려있어요.) 과연 저는 아이의 고유한 모습을 지켜줄 수 있을까요? ㅎㅎ 이제 19개월인데 벌써 어려운 걸요.


https://www.essayon.co.kr/kr/essay/month_essay.php?No=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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