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아니 우리 안에 수많은 자아가 존재하는게 맞다면, 그렇다면 생각해본다.
어쩌면 집을 나서는 순간 수많은 자아중 가장 쓸모있고 세련되고 재주가 좋은 자아를 꺼내들고 무대에 오르는 건 아닌지. 어쩌면 가장 공격적인 혹은 가장 방어적인 녀석을 앞세워 전쟁터로 나가는건 아닌지 하고.
아아...가여운 쓸모없는 자아. 엉망진창을 좋아하고 추하고 형편없는 아이.
가만히 그 못난 자아를 밝은 곳으로 불러내어본다.
어디 한번 안아보자. 작고 가여운 아이야.
그냥 이렇게 같이 있고 싶었어.
오늘 나는 준비가 되었으니 마음껏 쓸모없어져도 돼.
내 일상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돼.
한껏 들떠서 깽판을 쳐도 돼.
실컷 우울해서 온 세상을 캄캄하게 만들어도 돼.
잃어버려도 돼. 멍청해도 돼. 다 줘도 돼. 다 놓아버려도 돼.
촌스러워도 돼. 홀딱 벗어도 돼.
사랑해도 돼. 사랑하지 않아도 돼.
분노로 가득차 몬스터가 되어도 괜찮아.
그렇게 뭐든지 하고, 동시에 아무도 아닌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