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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Jul 20. 2016

마음사리기

내 마음 다치지 않게

   한바탕 감기를 앓고 난 후였다. 이번 감기는 너무 독해서 꼬박 일주일을 끙끙 앓았다. 어렸을 땐 학원에 가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기도 했는데, 어른이 되고보니 직장생활에 지장이라도 생길까 싶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회복하는데에 노력을 기울인다. 이렇게 심하게 앓고 난 후엔, 다른 욕심들은 모두 사라지고, ‘건강이 최고’라는 단순한 명제만을 깊이 새기게 된다. 그리고 감기기운을 떨쳐내고 개운해진 어느날에, 조심조심 지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다시는 아프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몸을 사리게 된다. 어느정도 체력이 바닥났다 싶으면 더 약속을 잡지 않고, 의무적으로 잠을 푹 자준다거나. 심지어 건강보조제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부지런함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귀찮음 때문에 끼니도 간혹 거르는 게으른 사람인데 말이다. 내 활동량에 미리 한계를 긋고 그 금을 밟지 않기 위해 까치발로 조심조심 걷는 기분이다. 

다시는 아프기 싫으니까...


  아프고나면 자연스럽게 몸을 사리는 현상은 단지 육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마음에 있어서도 그렇다. 뭣도 모르고 덤비다가 한바탕 크게 상처받고 나면, 애초에 마음이 아플 일은 만들지 않으려 한다. 실패할 것 같은 도전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앞뒤없이 주던 마음도 아끼게 된다. 그뿐인가. 이뤄지지 않을 사랑에는 첨부터 마음을 열지 않고, 충분히 사랑받지 않는다고 느낄 땐 더 상처받기 싫어서  먼저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몰랐기 때문에 무턱대고 두드려보고 찔러볼 수 있었던 것들이 많았는데, 어른이 되면서 쌓인 경험들은 나를 주저하게 하고 멈칫하게 한다.  이런 경향이 강한 어른을  볼 때마다 지나치게 쿨한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도 경험치가 쌓이고 나니, 그들이 왜그랬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들은 그저 ‘상처받기 싫은’ 사람일 뿐이었던 것이다.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것처럼,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사리는 것이다.

 

 어떤 일에도 도전하지 않고, 시도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으면 삶은 꽤 단조로워질 것이다. 단조롭다 못해 권태롭다. 그야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어른의 일상은 과거의 상처들이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소극적인 태도를 누군가는 '자존심'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소심함'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차분함과 쿨함의 경계를  넘나드는 어른들의 모습 뒤에 그런 상처들이 가득할 것을 생각하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어른이란 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다치려고 하지 않는 존재인걸까. 




  그들의 차분함은 실망과 상처의 경험으로 얻어진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괜시리 슬프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되는 게 낫겠다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그 이상의 어른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아플 것을 알면서도’ 한발짝 더 내딛는 사람들 말이다. 난 그런이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참 멋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달려보는 사람이다. 거절당할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내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어쩜 겉보기에는 아이같고 철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어떤 시도와 도전이, 혹은 고백이  내마음을 다치게 할 것을 알면서도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다른 이들보다 덜 아프다거나, 상처받지 않으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덜 상처받을 수 있는 무딘 감성을 가진 것 같지도 않다. 그보다는, 아프지 않고서는 이 다음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다칠 것을 각오하고서 산을 넘어보려 한발짝 더 내딛어 보는 것 뿐이다.


 그러니까 진짜 멋진 어른은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찬바람과 세균을 피해다니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체력단련을 하고 식습관도 관리하면서 체력을 끌어올릴 것이다. 계속 부딪혀보면서 면역력을 점차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시도해보는 것이다. 그럼 다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더 많은 즐거운 경험을 할 기회도 많아지고, 더 많은 것들을 볼 수있게 되는 것 같다. 이런 과정은 마음이 회복력을 높이도록 마음근육을 점차 단련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마음이 다치지 않게 마음을 사리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나아감으로써 마음을 성장시켜보는 것. 

그 너머로 가보는 사람.


그게 바로 '진짜 어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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