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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Dec 28. 2016

물품보관함에 갇힌 개

크리스마스 이브,  지인을 따라 대형마트에 갔다. 날이 날인지라 사람들이 무척 붐볐다. 그 와중에 마트 입구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느낌이 이상해서 찾아보는데, 아무리봐도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개가 짖는 소리만 들린다.


개는 다름아닌 물품보관함 중 한 칸에 보관되어 있었다. 갇혀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갇힌 개처럼 슬프게 짖고 있었으니까. 


개의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보관함 주위에서 웅성웅성 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개주인이 누구길래 보관함에 넣을 생각을 하는거야.'

그들은 이런 말들을 내뱉었던 것 같다. 


나처럼 개를 유독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 작은 공간에 갇혀버린 개에 대한 안쓰러움과, 개 주인에 대한 분노. 


개는 주인과 떨어지면 불안함을 느낀다. 낯선 곳인데다, 차갑고 좁은 물품보관함에 갇혀있다면 얼마나 불안할까.  보관함의 작은 구멍을 통해 낯선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더욱 두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짖는 것밖에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마트측에서 방송으로 개 주인을 소환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료되었지만, 여전히 그 주인의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마트입구, 차가운 물품보관함에 개를 보관했다는 것.

그것은 그 주인이 개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개를 가족처럼 여기며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곳에 보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마트에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생명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집에 있는 수많은 물건들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벽에 거는 그림액자처럼, 혹은 장식장에 넣어둔 인형처럼 그렇게 개를 집에다 데려다 놓은건지 모른다.


개도 촉각을 느끼고 불안을 느끼고 고통을 느낀다. 우두커니 서있는 장식품이 아니다. 

집에서 키우기로 한 이상, 뛰어다닐 수 있는 너른풀밭을 제공해줄 수는 없더라도,

늘 보듬어주고 산책시켜줄 수는 없더라도,

차갑고 딱딱한 물품보관함에 낯선사람들 사이에 구경거리가 되도록 놓아두지는 말아야 한다. 


생명을 기르기로 했다면, 

그 생명이 어떻게 케어되야 하는지, 어떤 행동은 주의해야 하는지 등의 지식을 습득하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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