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작고 확실한 일
어른으로 살아갈수록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사람도, 일도, 상황도 모두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며 매일처럼 깨닫는 것은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이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건 당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주변에 사춘기 자녀가 있는 지인이 '내 자식 진짜 내 뜻대로 안된다.' 고 하소연하는 것을 들으며, 아이가 더 큰 다고 해도 다르지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성인이 된 자녀라고 다르겠는가. 내 뜻대로 안되는 것을 넘어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사는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친구, 애인, 직장동료의 생각을 바꾸거나,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것은 거의 새끼손가락으로 바위를 옮기는 것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일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것이 곧 ‘삶’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을 통제하려고 애쓰고, 내 뜻대로 안된다고 불평하고 슬퍼하지만, 그럴수록 고통은 더욱 커질 뿐이다. 자신의 배우자나 자녀를 자신의 뜻대로 바꾸고 싶어 충돌하고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어떤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괴로움은 줄어든다.
저서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썼었다. 거기서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나'라고 했는데, 사실 나 자신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른다거나, 해로운 습관을 바꾸려고 노력해도 잘 되지 않을 때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몸도 마찬가지다. 신체 내부 장기들은 특히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영역이다. '심장아 멈춰'라고 한다고 심장이 멈추지 않는 것처럼, 너무 빨리 뛰는 심장을 느리게 뛰라고 하는 것도 어렵다. 식사 후 속이 답답할 때 '위야 얼른 소화해!'라고 한다고해서 말을 들을까. 간, 신장 등 자율신경계의 영역에 있는 내부 기관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간다.
그런데 유일하게 내가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관이 있다. 바로 '폐'다. 즉, 호흡은 내가 조절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숨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평소에는 자동으로 돌아가지만 내가 의도적으로 숨을 참을 수도 있고, 천천히 들이쉴 수도 있으며, 길게 내 쉴 수도 있다. 그 작은 조절은 단순한 생리적 행위가 아닌, 삶 속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드문 경험이 된다.
불안이 몰려올 때, 조급할 때, 마음이 어지러울 때 우리는 호흡을 통해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 내 '주의'를 호흡에 갖다둠으로써 '불편한 생각'이 아닌 의식을 내 몸에 안착시킨다. 그 것만으로도 불안이나 조급함이 어느정도 가라앉는다. 둥둥 떠다니던 마음을 안전한 집에 머물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내 몸을 돌보고, 그 과정을 통해 내 마음까지도 차분히 돌볼 수 있다. 최근 10~20년 동안 전문가들은 여러 연구를 통해 호흡법이 인간의 정신 상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호흡조절이 곧 마음조절인 것이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며, 이렇게 호흡을 통제하는 훈련이 인도에서는 아주 오래된 수행법이기도 하다.
온통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 속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작고 확실한 일. 그 것이 바로 숨을 바라보고, 의식적으로 천천히 호흡하는 것이다. 거창한 방법이 아니며 누구나 당장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나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권한다. 당신을 두렵게하는, 당신을 아프고 피곤하게 만드는 그 생각에서 빠져나와 호흡을 관찰하라고, 숨이 어디서 나오고 어디서 들어가는지 바라보라고. 그리고 천천히 내쉬어보라고. 그 것만으로도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으니까. 당장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꼭 포기하지말고 틈틈히 자주 해보아야 변화를 경험한다. 내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만큼 세상도 조금은 달라보일 것이다.
내가 아닌 사람을 바꾸느라,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삶의 크고작은 일들에 무리하게 애쓰느라 힘빼기보다 나의 숨, 나의 몸을 돌보며 평온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