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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애하는 조급함에게

서두르는 마음은 모든 걸 느리게 만들지

by 김혜령


명상을 배우고 숨을 처음 관찰하면 서 알게 된 것은 저의 얕고 불안정한 호흡이었습니다. 이전 글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었죠. (이전 글은 여기 ->https://brunch.co.kr/@kundera/307 )

그 이후로도 꽤 오랜시간 꾸준히 명상을 해왔습니다. 그 덕분인지 얕은 호흡 (심할 땐 할딱거리는 호흡)이 이전보다는 깊어진듯합니다. 물론 불안에 휩쌓일 때 관찰하면 여전히 할딱거리고 있어요. 그리고 일상의 곳곳에서 제 몸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는 데 그 것은 바로 '조급함' 입니다. 뭘하든 제 안에서 서두르는 마음이 쉽게 느껴져요.


명상을 하기 위해 20분 타이머를 맞춰놓고 눈을 감으면 들숨날숨이 몇번 반복되기도 전에 '얼른 끝내고 싶은 마음' 이 느껴집니다. 설거지를 하기 위해 수세미에 세제를 뭍힌 뒤 이제 그릇 하나를 집었을 뿐인데 제 마음은 어느새 설거지를 다 끝낸 상태로 가있죠. 샤워를 할 때에도 (저는 머리숱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린답니당!), 아이 하원시간 맞춰 운전하면서도, 청소를 시작하면서도 저의 친애하는 조급함은 어느새 제 안에서 요동치고 있어요.


아. 이 익숙한 조급함! 창피하지만 저는 매사에 그래왔습니다. 뭐든 얼른 끝내버리고 싶어했죠. 물론 지금은 전보다는 100000% 많이 침착해졌지만, 이전에는 (후우..절레절레)..

이건 아마도 게으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대개 게으름을 피우며 미루고 미루다가 임박해서 후다닥 해치우려 하는 일들이 많고, 그 때에'서두르는 마음'은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제 몸을 감싸곤 했거든요.


이렇듯 무엇이든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은, 아무것도 끝까지 해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빨리끝내기만 원하나요? 아니죠. 잘하고 싶어합니다. 후다닥 하면서 잘해내는 건 가능한 일인가요? 그렇지 않죠.


조급함 더하기, '잘 하고 싶은 욕심' 까지 더해지면, 경험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일들이 엉망진창이 됩니다. 부엌일 하다가 찬장 문에 이마를 찧거나 칼에 손이 베이기 일쑤이고. 운전할 때에는 괜히 신호에 더 많이 걸리는 것 같고, 명상을 하면 조급함을 어찌하지 못해 스스로를 애써 컨트롤 하다가 지쳐버려 중단하게 되는 일도 생겼어요. 청소도, 학창시절의 수많은 과제도....'빨리 할거야' '잘할거야' 라는 마음이 소진시켜버린 에너지 때문에 잘 마무리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다시한 번 반복합니다. (나 자신에게^^;)

"무엇이든 빨리 끝장을 보고싶은 마음은 아무것도 끝까지 해낼 수 없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서두를수록 집중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안절부절하고, 쉽게 피로해지죠.



c8103f9ea8a831c6476f2fafe6506836_w.jpeg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우리에게는 각자의 몸에 맞는 흐름과 속도가 있습니다. 자기 몸에 딱 알맞는 자연스러운 속도가 있어요. 저명한 명상 지도자인 촉니 린포체(Tsokny Rinpoche)는 몸의 제한속도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는 몸의 제한속도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요. 현대사회에서는 신속함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몸의 자연스러운 속도를 무시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여 빨리빨리 해내려고 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어요. 단지 저에게만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인거죠. 즉, 몸에서 빠른 에너지가 느껴지고, 조급함이 느껴지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겁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두 발을 붙이고 서있지 못하고, 붕 떠있는 상태로 이것저것을 밀린 숙제하듯이 후다닥 해내곤 합니다. 서둘러 준비하고, 서둘러 운전하고, 급하게 먹고, 후다닥 후루룩 안절부절 우당탕탕..... 그리고 그렇게 일상을 보내고 난후 지친 몸을 어찌하지 못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휴대폰을 보거나,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게 될지도 몰라요.


만약 저처럼 서두르는 마음에 끌려다니며 몸의 제한 속도를 존중해주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우선은 그 조급함을 알아차리는 연습부터 해보세요. 내 마음이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고 서둘러 어딘가로 달아나려고만 할 때, 눈을 딱 감고 그 조급함이 어디서 느껴지는지 찾아 보세요. 내 몸 어딘가에 자리한 조급함을 찬찬히 찾아보세요. 호흡이 어떤지 심장은 어떻게 뛰고 있는지도 알아차려 보시고요. 조급함을 밀어내려 하지 말고, 조급함이 어떤 아이인지 제대로 보는 겁니다. '친애하는 조급함'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마주할 수 있어야 보낼 수 있습니다. 서두르는 마음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살펴보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천천히 가도된다고 허용해주세요.


저의 경우 명상을 시작한 후, 조급함이 느껴질 때 신체를 관찰하면서 서두르는 마음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해줍니다. "괜찮아. 천천히 가도 돼.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그저 숨만 쉬고 있어도 충분해" "빨리 해내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어. 괜찮아"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고 설득합니다.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호흡을 천천히 해보기도 하면서, 내 몸이 가진 원래의 흐름과 에너지를 찾아요. 설거지나 청소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거 빨리 안끝내도 돼. " "괜찮아. 서두르지 않아도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아" 하면서 아이에게 말해주듯 다정하게 말해줘요.


이전엔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서두르지 않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말해주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서두르려는 그 마음의 아래에, 잘해내고 싶은 마음. 명상을 해서 나를 돌보고 싶은 마음. 집안일을 할 때는 가족들과 함께쓰는 집을 얼른 깨끗이 하고싶은 마음, 설거지 얼른 끝내고 딸아이와 놀고싶은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기특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해서, 스스로를 따뜻하게 대해주고 싶더라고요. 어렸을 때 저는 뭐든지 느린편이었고, 지금도 먹는 것, 책을 읽는 것, 어딘가에 적응하는 것. 대부분의 일들이 느립니다. 제 몸 고유의 속도가 느린 것을 생각해 볼 때,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느라 서둘러 살고 있는 저 자신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모든 어른들이 그렇게 살고 있겠죠 ㅠㅠ) '나는 느리기 때문에 더 서두르고 더 빨리빨리 해야해.'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스스로를 몰아붙여왔을테니까요.


요즘의 저는 빨리 끝내려 하기 보다, 끝까지 하기 위해 애써 템포를 늦춥니다. 여전히 조급함은 느껴지지만 (40년을 함께 살아왔는데 어디가겠습니까.), 답답함도 함께 느껴지지만, 그 친구와 함께 나의 진짜 속도를 찾아 봅니다. 매일 열어보는 다이어리에는 '천천히 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라고 써두었습니다. 명상할 때 느껴지던 조급함은 확실히 그 강도가 낮아졌어요. 어차피 난 빨리 하지 않을거라고 스스로에게 알려두고 나니, 조급함이 힘을 좀 뺀 게 아닌가 싶어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 안의 조급함이 스스로를 몰아붙이거나 무리하게 하지 않기를. 모두들 각자의 흐름과 속도대로 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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