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흘러가는 한 해를 위해
한두번 맞아보는 새해도 아닌데, 새해를 앞두면 늘 기분이 싱숭생숭합니다. 새해라는 단어는 이상하게도 결심, 목표, 계획 이라는 단어와 잘 붙어서, 괜히 나도 그런걸 해야할 것만 같은 마음이 매해 들곤 하는데요. 이번엔 야심차게(?) 다른 방식으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대단한 계획 없이도 그럭저럭 한 해는 지나갈테고, 나이들수록 결국엔 '건강'과 '무탈함' 만으로 충분히 감사한 날들일 수 있다는 걸 알았지요. 아니, 뭐 좀 건강하지 않아도, 원치 않는 별일이 좀 있어도...그건 또 그런대로 잘 살아지잖아요? 여러분들의 새해가 너무 무겁지 않기를, 또 내년 연말이 더욱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래 글을 올려봅니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종종 같은 실수를 한다. 급한 마음에 얼른 고무장갑을 끼고 그릇을 씻어 건조대에 올리려는 순간. 아뿔싸, 건조대를 비우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장갑을 벗고 건조대의 그릇들을 정리한 뒤 다시 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마무리한다. 빨래도 그렇다. 새 빨래를 널기 위해서는 건조대를 비워야 한다.
'비어있음'은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새로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준 상태다. 그래서 비어있음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의 마음이 그렇다. 비어 있어서 무엇이든 잘 받아들인다. 반면 어른들의 마음은 수많은 상념과 편견, 상처와 굳어진 생각들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멈칫하고 누군가의 말을 흘려듣거나 이미 곁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놓친다.
새해를 앞두면 늘 무언가를 더 하겠다고 다짐한다. 열심히! 잘! 하려고 목표를 세우면 벌써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건 마음을 비워두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새해 첫 달인 1월의 'January'는 로마 신화 속 신 야누스(Janus)의 이름에서 왔다. 잘 아는 것처럼 두 얼굴을 가진 신이다. 많이들 '이중인격자'라며 부정적으로 표현하곤 하지만 신화 속 본래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야누스는 정면의 얼굴로 미래를 응시하고, 뒤통수의 얼굴로는 과거를 통찰한다. (안과 밖을 보는 눈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로마인들은 '새해로 들어가는 시간의 문'이라는 뜻에서 1월을 야누스의 달이라고 했고, 일년의 첫날에 야누스에게 정성껏 제물을 바쳤다고 한다. 과거와 미래, 안과밖을 향해 얼굴이 나있는 야누스는 곧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온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는 지혜와 통한다. 밖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안(내면)을 돌봐야 한다는 뜻으로도 이해된다.
해마다 세우는 목표가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는 어쩌면 지난 시간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비워낼 것이 무엇인지,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그저 뛰어든다면 아쉬운 한 해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곱씹기가 아니라 '성찰'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후회나 미련으로 되씹는 반추가 아닌, 거리를 두고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 안의 욕망과 집착, 편견이 무엇이었는지를 바라보며 내가 무엇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성찰을 통해 내면의 찌꺼기를 비워낼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흥미로운 점은 앞뒤를 모두 볼 수 있는 야누스는 ‘경첩의 여신’인 카르나(Carna)를 아내로 맞이한다. 과거와 미래를 꿰뚫는 ‘통찰(야누스)’과 문을 단단히 지켜주는 ‘수호(카르나)’가 만났을 때,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는 다름 아닌 로마를 흐르는 ‘강물의 신(Tiberinus)’이었다.
이는 우리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흐르는 강물처럼 순탄하게 흘러가기를 바란다면 야누스의 눈으로 지난시간을 바라보고, 카르나의 손길로 해로운 것을 닫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성급하게 2026년으로 달려나가려는 마음을 잠깐 멈추어 세우자. 그리고 올해를 찬찬히 살펴보자. 비워야 할 욕심은 무엇인지, 내려놓아야 할 집착은 무엇인지. 이 성찰과 비움의 시간이 내년을 막힘없이 흘러가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모두의 연말이 따뜻하고, 평안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