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 잇 아웃

일상이 가벼워지는 소소한 책 추천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by 김혜령

복잡하고 정답 없는 세상에 던져져 고군분투하다 보면, 문득 '사는 거 별거 아닌데'라는 문장이 뇌리를 때리는 순간이 있다. '나는 무얼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걸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 전전긍긍하며 사는 걸까' 하며 한순간 공허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에 우리에게 '인생은 번거롭지만 먹고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며 시크하게 잠언을 던지고 가는 할머니가 있다.


'사는게 뭐라고' 중에서 /출처 : 마음산책, YES24


바로 사노 요코라는 일본 작가이다.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였던 그녀는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세상을 떠나기 2년 전까지 독거노인으로 살며 아주 꼼꼼하게 자신의 일상을 기록했다. 그런(일기에 가까운) 에세이들을 묶은 책이 바로 '사는 게 뭐라고'이다.

일상이 가벼워질 거라며 추천하는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저자가 죽음을 가까이 두고 쓴 글들이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끔 나와 내 친구들이 노인이 되는 때를 상상할 때가 있다. 일흔. 아니 여든 살?. 이제는 백세시대라지만, 의학이 지금의 속도대로 발전해 간다면, 우리가 일흔 살 때쯤이면 백이십 세 시대가 와버려서 그때에도 여전히 죽음은 저 멀리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화는 속일 수가 없을 테니, 내 주름살과 검버섯을 보며 이제 죽을 때가 머지않았다며 우울해하고 있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친구들과 모여 죽음을 논하고 있지 않을까. '내 좋은 시절 다 갔어.' 라면서...


보통의 죽음을 앞둔 노인의 삶을 생각해본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없어져가는 상실감, 죽음에 대한 불안, 자식들에게 폐가 될까 하는 미안함. 이렇게 다소 묵직한 것들이 연상된다.

그러나 독거노인 사노 요코의 일상은 한없이 가볍고 유쾌하다. 심지어 2년밖에 살 수 없을 거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돌아오는 길에 초록색 재규어로 거침없이 자동차를 바꾸는 박력을 보인다. 우울해서 그랬을 거라고? 그녀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자.


내게는 지금 그 어떤 의무도 없다. 아들은 다 컸고 엄마도 2년 전에 죽었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죽지 못할 정도로 일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남은 날이 2년이라는 말을 듣자 십수 년 동안 나를 괴롭힌 우울증이 거의 사라졌다. 인간은 신기하다. 인생이 갑자기 알차게 변했다. 매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
-243쪽

사노 요코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할머니가 되어서도 즐겁고 유쾌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생긴다. 건강의 문제로 남에게 신세 지는 일만 없다면 말이다.


활기차진 않지만,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은 그녀의 하루를 따라다니며 피식피식 웃게 된다, '그래, 사는 거 별거 아니었지?' 그래. 재밌게 살자. 잘 먹고 잘살자.라는 단순한 진리들이 나를 깨우친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오는 것은 그녀가 따뜻한 사람이기 때문일 거다. 그녀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이며 어렸을 때, 오빠와 남동생을 잃었다. 할 말은 하고, 될 대로 돼라 식의 삶을 산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그런 시크한 노인이 되기까지 순탄하게 살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또 주위 사람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오빠, 오빠는 모르는 채 죽었지만 사는 것도 정말로 고단해.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적도 몇 번이나 있었는데 사는 동안은 죽을 수가 없어. 오빤 고작 감기 따위로 죽어버렸지만 요즘 세상이었다면 죽지 않았겠지.
-62쪽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책들에 진절머리가 난 분들이라면, 이 책을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열심히 살고 있는 당신들에게도 추천한다. 뜨거운 햇볕만 쬐지 말고 나무 그늘의 벤치에 쉬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왜냐면, 사는 건 별거 아니니까.


p.s. 특히 일본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라면 더 재밌어할 것 같다. 나는 일본에 특별한 애정이 없긴 하지만,

책 속 곳곳에 담겨있는 디테일한 일본 문화나 특유의 생활방식들은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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