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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Jul 18. 2016

순간을 즐기라는 말

직딩 유부녀들의 씁쓸한 수다

 점심시간에 회사동료와 선배 몇명과 함께 중국집을 갔다. 우연히 함께하게 된 조합이었는데 다섯명의 평균연령은 서른이었고, 한명을 제외하면 최근 몇년안에 유부녀 대열에 든 기혼자들이었다. 탕수육, 자장, 짬뽕, 잡채밥을 사이좋게 나눠먹으며 나누었던 대화의 주제는 이러했다.  회사가 얼마나 융통성이 없는지에 대해서 불평하다가, 집안일과 직장생활 병행의 고충으로 건너갔다가, 그럼에도 회사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로 넘어갔다. 그것은 다름아닌 '돈'이었다. 나를 포함한 유부녀 넷은 충분히 가임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의 상당부분은 경제력이었다. 돈을 더 모아놔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여성의 몸이 어느 정도 건강함을 갖추어야 아이가 잘 들어설 수 있듯이, 경제력을 안정적으로 갖추어야 아기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아무 준비없이 무턱대고 아이를 낳기는 싫었다. 현실감 듬뿍담긴 수다는 계속되었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우리를 낳고 기를 때만해도 전업주부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는데, 왜 우리는 쉽사리 전업주부의 길을 가지 못하는걸까. 돈 때문이지 뭐. 그치그치. 그만큼 살기가 팍팍해진거야. 전셋값은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치솟잖아. 집값도 벅찬데 돈 쓸 곳이 더 많아졌잖아? 우리 부모님때는 놀거리도 많이 없었잖아. 요즘은 해외여행도 많이 다니는데 예전엔 그러지 않았으니까. 아니 그럼 여행마저 안다니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구?

 어떤 어른은 우리나이 때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레져에 쓰는 비용이 '너무' 많아졌다고 했단다. 그러나 우리의 결론은 이랬다. 직장생활도 녹록치 않고 집안일도 힘들고 아이들과 살 작은집 한채 마련하는 것도 이리 어려운데 여행이나 즐길거리라도 잘 챙겨야 되지 않겠느냐고. 우리가 부지런히 돈을 모으고, 퇴근해서는 집안일을 하고, 또 힘들게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거창한 미래는 기대할 수 없으니까. 그때그때 해외여행을 가고, 콘서트도 가고 맛집탐방도 하면서 지금 이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웃으면서 나도 공감하긴 했지만, 체념적 결론 같아서 다소 씁쓸했다. 인생 뭐 없으니 오늘 하루라도 잘 살고 보자. 이런 느낌이랄까.

순간을 기쁘게 살라는 메시지는 살면서 여러번 들어왔지만, 이런 의미는 아니었다. 학부시절, 실존철학 시간에 들었던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죽기마련이고, 그 때를 알 수 없으므로 존재하는 한 순간순간을 들이마시고 기쁘게 살아야한다'는 교수님의 말씀.  앙드레 지드가 『지상의 양식』에서 말한 '그대 온 행복을 순간 속에서 찾아라' 라는 문장,  '인생은 (중략) 내일 없는 작은 조각들의 광채다' 라는 사르트르의 시적 문장까지... 그들의 공통된 말 속에 녹아있는 세계관은 '빛나는' 어떤 것인 데에 비해, 이 시대를 살고있는 평균연령 서른의 여자들의 수다속에서는 회색의 세계가 느껴졌다.

우리가 이런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지 높은 물가와 치솟는 전셋값 때문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없다가 있으면 몇배 더 신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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