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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Jul 21. 2016

없다가 있으면 몇배 더 신날 수 있다.

신혼집에 처음 TV를 들였던 날

 별일 없는 요즘에 매우 설레이는 일이 생겼다. 그 것은 새 텔레비전을 샀다는 것. 신혼집에 들어온지 6개월이 지나서야 새 TV를 사게되었다. 십여년간 타지생활을 하면서 자취방이나 하숙방에 티비를 한번도 들여본 적이 없다. 엄마가  내 하숙방에 오실 때마다, '집이 왜이렇게 적적하니. 티비라도 하나 사거라'라고 매번 말씀하셨지만 못 들은 체 했다. 이웃에 살던 선배가 시집을 가면서 TV를 그냥 내어주겠다고 했는데도 굳이 거절하였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나는 TV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난 TV를 켜놓으면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티비만 보며 누워있을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루종일을 그러고 있을 수 있겠냐고 하겠지만, TV를 보고있으면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간다. 재밌는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한시간은 15분처럼 지나가버리고, 요즘은 종편 예능프로도 알차고 웃긴 게 참 많다. 그뿐인가 쇼핑채널을 보면서 살까말까 고민하는데만도 시간을 훌쩍 보내버릴 수있다. 아무리 볼 것이 없다해도, 채널을 모두 돌려보는 것만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까.

 

 때문에 나는 서울에서 비싼 방값내고 있으면서, 하루종일 TV만 보고 있을 나 자신을 경계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대학원입시니, 취업준비니 하며 어려운 목표들을 줄줄이 두고 있었으니까. 나의 통제력을 믿지 않았던 것!

 그러나 이제는 결혼도 했겠다, 논문도 썼겠다 TV를 들여도 되겠지 싶었다. 물론 결혼준비할 때에만 해도 신랑과 나는 티비를 살 생각이 없었다. 신랑 자취할 때 쓰던 모니터에 셋탑박스를 연결하여 꼭 필요한 것만 보곤 했는데,

너무 오래된 물건이라 화질도 좋지 않고, 사이즈도 매우 작았다. 게다가 가끔 화면이 나가버리는 일도 생겨서 좀처럼 켜지를 않았다. 결국 하이마트에 가서 티비를 구입하였다. 저렴이로 살 계획이었지만 막상 가서보니 디자인도 화질도 맘에드는 LG 것으로다가 사버렸다. 예산은 넘지 않는 선에서..

 

 늦잠을 즐기고 있던 토요일아침에 TV 설치기사님이 오셨다. 티비를 설치하고 보니 안방이 훤해졌다. 뭔가 '있는집' 같아졌다. 디자인도 매끈하니 참 잘골랐다. 32인치밖에 되지 않으나, 워낙 작은모니터가 티비를 대체해왔던 탓인지 아주그냥 영화관 못지않았다. 선명해! 소리도 잘들려! 이것이 바로 HDTV구나!!  신랑과 나는 곧바로 다시보기를 통해 응답하라1988을 함께보며 새TV를 가진 기쁨에 젖었다. 덕선의 아래입술에 점이 있었구나! 택이 피부가 그리 좋지 않았구나! 정팔이는 또보고 다시봐도 참으로 못생겼구나!

 

 마치 흑백TV만 보다가 처음으로 컬러TV를 경험한 것마냥 신기함과 기쁨이 교차하였다. 티비하나가 생겼을 뿐인데 갑자기 부자가 된 것만 같았다. 그날 저녁 신랑친구들과 식사가 있었는데, 거기서도 나는 티비얘기를 꺼냈다. 월요일에 출근하여서도 동료들과 굳이굳이 티비얘기를 했다. 이러한 신세계, 이러한 기쁨을 모두와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에게 처음부터 크고 좋은 티비가 있었다면,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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