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다스리는 불안
우리가 불안감에 가장 압도되는 장소는 침대다. 몸을 쓰지 않고 가만히 혼자 누워 있을 때 걱정과 불안에 취약해진다는 상징적인 의미다. 실제로 걱정이 많은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실행력이 낮다는 것이다. 반대로 실행력이 높고 행동이 앞서는 사람들은 전자보다는 불안이 덜하다. 그만큼 몸을 움직이는 것은 심리적인 상태와 관련이 깊다.
걱정과 불안이 높으면서 실행력이 낮은 경우의 진짜 문제는 악순환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시도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에 걱정이 많고, 과도한 걱정은 또 행동을 지연시킨다. 행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상념이 쏟아져서 다시 불안을 느끼게 된다. 미국의 치유심리학자 브렌다 쇼샤나는 자신의 책에서 걱정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걱정 많은 사람들의 99%가 ‘생각중독자’이며 걱정이 성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걱정이 많은 사람이 성공과 멀어지는 이유는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중 세 가지만 소개해보겠다. 첫째, 소심하고 무기력하다. 걱정하느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남들 눈에 한심해 보일까 봐 신경이 쓰이고, 또 무슨 일이든 ‘어차피 안될 텐데’라는 생각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둘째, 행동이 느리다. 완벽히 준비되지 않으면 시도를 하려 하지 않고 너무 많은 검토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위험관리에 취약하다. 위험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느라 막상 닥친 위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은 사회적 성과를 내는 데 확실히 불리하기 때문에 성공과 멀어진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쇼샤나와 같이 굳이 성공과 관련시키지 않더라도 과도한 걱정이 근심거리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가만히 앉아서 두려움을 심화하거나 친구에게 걱정거리를 늘어놓는다 해도, 개선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친구가 치과치료를 받은 후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진통제도 들지 않아 몇 시간을 끙끙대며 누워 있었다. 그때 이웃에게서 연락이 와서 잠깐 만나 집 근처에서 수다를 떨었단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동안 통증을 잊었다는 걸 깨달았다. 집에서는 다시 치통에 시달려야 했지만, 바깥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견디기가 수월했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활동을 하면 주의가 옮겨가서 통증이 덜해진다. 불안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누워서 그 문제만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으면 더 강렬하게 몰려온다. 그 생각을 떨치려고 해도 현재 주의를 끄는 다른 주제가 없기 때문이다. 걱정은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머릿속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면 그 생각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인 볼테르는 "건강에 좋기 때문에 행복해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불안을 다루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처럼 심리적 문제는 육체적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우선으로 여긴다. 미국에서는 200여 군데의 병원에서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보완적 조치로 호흡과 명상 기법을 사용했다. 그 결과 두 달 후에 불안 감소, 혈압 저하, 면역체계 보강이 나타났으며 타인에 대한 관심이 회복되는 효과도 나타났다. 심리적 안정을 위한 치료법이 결국 육체적 건강도 증진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불안에 압도되어 집 안에서 누워 있는 대신에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걱정거리는 끝이 없고 그 모든 것을 해결하기에는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막막하게 다가올수록 쉽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하버드대의 스리니바산 S. 필레이 교수에 의하면 우리가 저지르는 흔한 오류가 ‘불가능한 것’과 ‘어려운 것’을 같은 범주에 밀어 넣는 것이다. 이 때문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에 대해 조치를 취하고 싶어도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통나무 500개를 등에 짊어지고 있을 때는 걷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통나무를 하나씩 제거해감에 따라 불가능해 보이던 것이 조금 어려워 보이다가 점차 가능해 보이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통나무를 하나씩 내려놓는 작업이다. 아주 쉽고 작은 행동을 하나씩 해나가며 좀 더 쉬운 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두려움에 압도되어 막막하게 느껴지던 마음을 다루는 일도 설거지처럼 어렵지 않은 일로 변화해간다.
그러면 이제 통나무를 하나씩 내려놓듯 쉬운 방법을 찾기만 하면 된다. 우리 몸에는 두려움이 일으키는 스트레스 반응에 대한 천연해독제가 있다. 바로 몸의 ‘이완 반응(relaxation response)’이다. 하버드 의대 허버트 벤슨 교수는 이완반응이 교감신경계의 작동을 끄고 신경계의 이완 상태인 부교감신경계를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두려움을 진정시킨다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몸이 이완되면 스스로 치유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을 내버려두면 이 기능은 멈춘다. 즉, 몸과 마음이 이완될 때만 몸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항상성 상태를 회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을 거의 찾은 듯하다. 몸을 이완시키기만 하면 된다.
명상과 요가도 몸을 이완시키는 작업을 포함한다. 그런데 실제로 몸을 이완시키는 심리치유법이 있다. 소프롤로지(sophrologie) 운동법은 명상과 신체이완을 포함하는 치유법이다. 몸을 써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보면 된다. 원래 소프롤로지는 스페인의 정신과 의사가 서양의 근육이완법과 동양의 선·요가를 응용하여 고안하였다. 긴장과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통증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어서 이후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법으로 도입하였다. 국내에서도 이 분만법이 시행되고 있다.
출산이나 병원에서 사용되는 치료법으로서가 아닌,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소프롤로지 운동법을 활용해보면 좋다. 명상기법과 스트레스치료기법 등을 개발해온 플로랑스 비나이는 《몸을 씁니다》라는 책을 통해 일상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소프롤로지 방법들을 소개했다. 총 121가지나 되지만 하나하나는 작고 쉬운 방법들이다. 예를 들면 아침에 기상하기 전에는 이런 동작을 권한다. 발가락 끝까지 다리를 쭉 뻗고 숨을 들이쉬면서 척추와 배가 몸 위쪽으로 늘어나는 것을 느낀다. 팔은 양옆으로, 그다음엔 위쪽으로 쭉 뻗는다. 잠깐 숨을 멈추고 몸의 유쾌함을 느껴본다. 동작 중에 호흡을 깊게 들이쉬고 내쉰다.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유용한 동작은 목덜미 마사지와 어깨이완법이다. 우선 탁자나 책상 위에 양쪽 팔꿈치를 댄다. 그다음 머리를 앞쪽으로 기울여, 양손 엄지손가락으로 목 양옆 근육을 눌러주고 점점 머리카락 밑을 향해 올라가면서 부드럽게 마사지한다. 목 근육의 이완이 느껴질 때까지 반복한다. 동작 중에는 목덜미와 머리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변화를 주의 깊게 살핀다. 그러고 난 후 양손을 내리고 어깨를 내려뜨린다. 호흡과 함께 점차 어깨를 더 내려뜨린다. 이 동작 역시 깊은 호흡과 함께 한다.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몸을 움직여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몸을 의식적이고 습관적으로 이완시키는 연습을 하면 몸과 정신이 평형을 이룬다. 바쁜 업무 중에도 틈틈이 의식적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된다. 긴장 때문에 어깨가 올라가 있지는 않은지, 몸이 움츠러져 있지는 않은지 살피자. 의식할 때마다 깊은 호흡을 하면서 몸을 이완시킨다면 몸의 피로도 덜할 것이다. 그러면 마음의 안정을 찾는 일도 좀 더 쉬워진다.
많은 사람이 새해 첫 달에 여러 번 속았듯이, 무엇이든 한번 결심한 것을 꾸준히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방법은 ‘작은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되 작은 것을 하나씩만 실행하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다루는 데 힘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변하며,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변하고, 성격이 바뀌면 인생이 변한다”라고 했다. 습관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즉 무언가를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주 작은 것부터 하는 것이다.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의 작은 행동을 매일매일 실천하여 습관으로 만들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불안에 짓눌리기보다는 일단 밖에 나가 움직이는 것으로 몸을 가볍게 하자. 그리고 틈틈이 몸을 이완시켜주는 것도 잊지 말자. 몸이 가벼워지는 만큼 마음도 가벼워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