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위클리매거진을 시작하며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는 21살 ‘지안’이라는 인물이 울부짖으며 토해내는 대사가 있다.
“아저씨가 정말로 행복했으면 했어요.”
이 진심이 눈물겨웠던 것은, 정작 자신은 조실부모한데다 어렵게 할머니를 돌보며 사는 빚쟁이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 자신보다 20년도 더 산, 겉으로 보기엔 훨씬 더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타인을 가여워하고, 몸과 마음을 다해 행복을 빌어주고 있었다는 점이다.
현실과 너무도 닮아있어 멈추어 생각해보게 했던 두 가지가 있다.
하나, 집도 직장도 번듯하고 건강해 보이며 꽤 그럴듯한 삶을 사는 사람이 실제로는 상당히 안쓰러운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행과 불행은 재산이나 이력 따위로 계산되지 않는다. 스펙이 차고 넘쳐도 스스로 불행하다 여기는 사람은 무수하다. 왠만한 걸 다 갖춘 성인이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너무나 많다. 안타깝게도.
둘, 주인공 지안과 아저씨가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점이다. 서로에게 온힘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주기를 바라는데, 그 것은 다름아닌 자기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상대가 아파하는 걸 보는게 너무 괴로우니 간절하게 그 사람의 행복을 바란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그 안에서 마음 다해 서로의 행복을 바라는 일은 잘 보이지는 않지만, 여기에서도 늘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슬프지 않게 하려면 나는 행복해야 하고,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 당신이 행복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행복해야하는 빚을 지고 있다. 주위에 힘들고 괴로워하는 사람만 가득한데 나 혼자 행복하게 우뚝 서있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래서 어쩌면 타인의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은 이기적인 마음이다.
내게, 행복의 다른 말은 ‘충분해’이다. 무언가를 더 욕심내지 않아도 되는, 그럴 필요가 없는 충분한 마음. 그런 이완된 상태가 내게는 행복이란 것을 알았다.
욕심, 성공, 야망을 부추기는 이 사회에서 많은 것들이 불완전하고 혹은 불안정한 상태일지라도, 충분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다. 늘 흔들리면서도 순간순간 그러한 마음을 만날 때 그 기분이 좋다.
그렇게 ‘행복’이 빛나는 무엇이 아니게 되면서 나 아닌 사람들의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도 달라졌다. 내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다 채워지지는 않지만 충분한 마음이 함께하기를. 크고 대단한 일들을 바라기보다, 고요한 행복이 함께하기를 바라게 된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자신이 아프고 힘든 것은 보지 못한 체, 타인에게 퍼주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타인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거대한 힘이 없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조차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몫만을 감당해내기에도 녹록치 않은 삶이다. 그럼에도 내가 행복해짐으로써 그들 마음의 평안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들이 아프지 않게, 나의 행복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최선의 몫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 내가 행복해지려 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마음이다. 동시에, 행복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공통된 숙제가 아닐까.
안녕하세요 <불안이라는 위안>의 저자 김혜령입니다.
모두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여전히 이런저런 불편한 감정들과 사투를 벌이며 살아내고 계신가요. 저는 그동안 부지런히 두 번째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제 8월 출간을 앞두고, 위클리매거진을 통해 사전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행복에 대해, 기쁨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대단한 행복의 비법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만한 능력도 없고요. 그보다는, 계속 고민하며 살아가야 할 입장에서 공부하고 의심하고 고민했던 것들을 풀어쓴 글입니다.
행복은 나 자신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이면서 또 타인에게 가장 바라게 되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 행복이라는 것이 저마다 고유한 의미가 있으니까요.
매주 토요일 위클리 매거진<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지>와 함께하면서, 각자의 행복의 언어를 찾아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6월 16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인류의 모든 훌륭한 사상가들은 행복은 모호한 채로 남겨두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고유의 의미로 행복을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Henri bergs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