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영화가 우리를 즐겁게 하는 방식은 주로 로맨스나 판타지에 기인하는 것 같다. 우리의 미적 감각을 만족시키는 낭만적인 스토리나 영상. 혹은, 판타지를 통해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는 식으로 말이다.
어쩌면 라라랜드는 내게 흔한 음악영화로 남을 수도 있었다.
해외개봉국가 가운데 한국 관객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데, 한국인들이 음악 영화에 애정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나도 그 한국인 중 한명이고, 음악영화라는 이유로 선뜻 예매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극의 후반부까지 음악과 엠마스톤의 미모 외에는 크게 마음을 흔드는 것은 없었다. 기대한 딱 그만큼의 감흥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끝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비극적인 내러티브를 보여주지도 않았고, 여느 로맨틱영화가 그러하듯 내면의 말랑말랑한 정서를 자극한 것도 아니었다. 그 것은 나의 현실과 맞닿은 부분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슬프고 짠한 여운을 남겼다.
줄곧 진행형으로 풀어내던 미아(여주인공)와 세바스찬(남주인공)의 연애가 결말즈음에서 과거형으로 바뀐다. 거기서 마음이 쿵. 그리고, ' 니 옆에 그 남자가 나였으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이 만들어낸듯한 상상씬이 펼쳐진다.
다시한번 마음이 쿵.
마지막으로 미아와 세바스찬의 마지막 눈맞춤과 미소.
쿵쿵.
그들은 눈빛으로 '너를 응원해.'라고 말했을 수도 있고, '행복하길 바래'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더 깊은 마음속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잔물결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각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지만 마음이 아팠다. 아름다운 것. 그러나 과거가 되어버린 것. 이 것은 필연적으로 어떤 안타까움을 동반하는 것일까.
이 모습이 저마다의 지난 사랑을 떠올리게 한 것은 아닐지. 한때는 뜨거웠으나, 이제는 과거형이 된 그 시간과 인연을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어떤 영화평론가가 쓴 칼럼에서 이 영화를 두고 자신의 지난사랑과 겹친다고 한 것을 보았다. 또, 친한친구가 라라랜드를 보고 그 여운을 털어내지 못하고 오래오래 마음 아파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결국 그녀는 어제밤 와인과 함께 혼술타임을 가졌단다. 물론, 그녀가 지난사랑을 떠올리며 마음아파했는지는 모른다. 단지, 추측할 뿐이다.
현실세계에서 발생한 사랑이 백만개라면, 그중에는 이루어진 사랑보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가 뜻하는 '이루어짐'이란, 대게 백년해로 하는 인연을 뜻하니까. 과거가 된 사랑에 대해서는 '이루어진'사랑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모든 인연이 해피엔딩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흘러가는대로' 사는 것일뿐.
그러는 사이에 어떤 것은 과거가 되고, 새로운 것이 현재가 되며, 또 여전히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세바스찬이 말한 '흘러가는대로 가보자' 라는 말이 이제와서 슬프게 느껴지는 건, '우리는 변할 수도 있겠지'라는 말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추운 겨울,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 것은 썩 괜찮은 일이라 생각한다.
'해피엔딩이 아닌' 것으로서가 아니라, 현재를 있게 해준 소중한 '성장과정'으로서의 그 추억을 말이다.
이 참에 반가운 인사를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연주를 끝마친 세바스찬이 재즈클럽을 나서려는 미아에게 지어준 것처럼, 흘러버린 과거에게 그렇게 따뜻한 미소를 보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꿈을 이룬 삶을 살고 있는 그들,
서로 다른 길에 서있는 미아와 세바스찬이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이 세상의 모든 미아와 세바스찬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