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홀로 하와이 여행기

대표 청년 작가 지망생의 여행기

by Edward j


2025 02 28 ~ 2025 03 06


ep. 1 - 여행 전





위대한 여행은 지구를 열 바퀴 도는 여행이 아니라 단 한차례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이다.
- 마하트마 간디 -









22살의 청춘을 바쳐 간 군대에서 얻은 것은 돈과 명예뿐이었다. 여행만큼은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행복한 나는 이번엔 내 발로 직접 미국 본토를 밟고 오겠다던 다짐과 함께 짐을 싸서 집을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가족의 홀로 해외여행에 대한 반대는 여행 출발부터 스트레스를 받게 했었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 형의 결혼식을 본 이후 나는 마음이 복잡했는데, 오랫동안 한 집에 같이 살았던 친 형이 28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자유로움을 크게 갈망했던 나에게 있어 연애와 결혼에 다소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올해(2025년) 처음으로 따뜻한 날이었다. 그날은 추웠던 겨울을 지나 봄이 오는 그런 날이었다.


날씨만큼은 내 여행에 방해가 되지 않으리라 믿으며 출발한 버스의 목적지는 인천공항 제1 게이트였다. 공항은 언제 봐도 새로운 곳이었다.


전 세계의 음식은 물론이거니와 여러 나라 사람들의 언어가가 들릴 때면


‘이곳이 공항이구나’ 느끼게 된다.



출처 : https://www.korea.kr/news/reporterView.do?newsId=148919578



여행 중 처음 내가 직접 마주한 것은 사람이 아닌 입국 수속을 밟아주는 키오스크였다.


분명 유튜브를 통해 충분히 배우고 왔던 나였지만 실전에서 써보려니 쉽지 않았는데,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해외여행 때 꼭 필요한 ”스마트 패스 현재 나의 사진 찍기 “였다.


키오스크 카메라를 보며 엉거주춤한 다리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고민하는 내 모습, 그 세상 사람들 다 지나다니는 공항 한복판에서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엉거주춤 한 자세를 보니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게이트를 빠져나와 향했을 땐, 스마트 패스를 하지 않은 사람은 오른쪽에는 두 줄로 길게 늘어져 있었고, 스마트 패스를 한 사람들은 왼쪽에 한 줄로 여유롭게 앞으로 일제히 전진했다.


아까 그런 우스꽝스러웠던 나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 걸어 오른쪽에 한참 앞의 어린아이와 같이 있는 가족들을 지나쳤고, 약 5분 만에 출국장에 들어섰다. 준비된 사람과 준비되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줬던 일이었다.



미국 곳곳에서 밀리터리 디스카운트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출처-유튜브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1 - 하와이편
실제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 나온 하와이 음식들이다.



하와이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나라 전역자가 전역증을 들고 미국에 가서 이른바 밀리터리 디스카운트를 받을 수 있다는 점, 백종원 대표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하와이 편을 보고 독특한 음식들에게 반한 점,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러한 매력 넘치고 아름다운 그 하와이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를 더 알고 싶었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영어 회화 자격증(OPIC)이 있(었) 지만 얼마큼 내가 영어를 잘할 수 있는지, 내 발로 직접 찾아가서 더 넓은 곳에서 맛집을 다니며, 직접 메뉴판도 해석하고, 영어로 소통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행 전에 고민했던 연애 및 결혼에 대한 생각이나 가족에 대한 고민도 포함하여 말이다.





ep. 2 - 다니엘 k 국제공항행 비행기 안에서





소중한 것을 깨닫는 장소는 컴퓨터 앞이 아니라 파란 하늘 아래였다.
- 다카하시 아유무-


" 다니엘 k 이노우에 국제공항 행 비행기 편 K0 000편입니다"


처음에 비행기를 잘못 탔나 싶었다. 하와이 호놀룰루 국제공항 만을 생각했던

나는 선선한 바람이 나오는 비행기 안에서 식은땀이 다 나왔다.


하필 창가 자리라 나가지도 못한 채 휴대폰을 켜 호놀룰루 국제공항을 다급하게 검색했다.



왼쪽 사진 출처 : 네이버


그러다 같이 뜬 내용은 다니엘 k 이노우에 국제공항이었다.

(휴.......!!!!)



어느덧 긴장이 풀리니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선선한 비행기 내부에서 바빠 보이는 승무원들, 비행 시작도 전에

물이나 밥을 재촉하는 승객들까지.


그럼에도 차분하게 대응해 주는 승무원들이 멋있기만 했다.


적어도 서비스 업을 전공하는 난 그 흘리는 땀의 멋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좌석 옆자리에는 50대 남짓 돼 보이는 아줌마 파마를 한 아주머니들이 계셨고, 그녀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자신의 딸은 대기업 어디에 취직했으며 누구랑 연애하는지 다 듣게 되었다.


나는 한순간에 얼굴도 모르는 그녀의 일생을 자세하게 알았으며, 그 깊고도 많은 말들이 비행기 이륙 전인 20분 만에 나오게 되었다.


자식 사랑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대한민국 아주머니들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오른쪽 사진은 오믈렛을 보고 색감이 비슷한 산을 골라봤다. (이렇게 보니 카메라 렌즈가 많이 더럽긴 했다.)



하와이 여행 시작부터 하루를 통째로 비행기를 타기 위했다 보니 많이 배고팠기에 들었던 감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륙 직후 기내식에 있어서는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거기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은 미국식 아침식사였다.


샛노란 오믈렛과 나무처럼 보이는 브로콜리, 모래를 표현한 것 같은 해시브라운, 강렬한 색의 케첩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앞으로 펼쳐질 하와이의 멋있는 광경들을 미리 보는 것 같았다.



창문 열다가 옆자리 아주머니가 눈이 부시다고 하셔서 재빠르게 닫았다.. (카메라 닦은 겁니다)



비행기는 대륙권과 성층권의 사이를 지난다.


그 비행기가 구름 위를 날 때면 일몰이나 일출을 보는 데에 있어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일출을 확실하게 보고 싶다면 반드시 밤 비행기를 추천한다.


한숨 푹 자고 비행기 창문을 조심스레 연다면 당신의 눈앞에는 파란 도화지 위에 점차 떠오르는 태양의 밝은 채광이 들어올 것이다.


다카하시 아유무는 하늘 아래에서도 소중한 것을 깨닫는다고 했지만 하늘 위에서도 아름다운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ep. 3 - 다니엘 k 국제공항에서







일 년 중 한 번은 당신이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가 보아라.
- 달라이 라마-






시간의 비가역성은 여행자들을 가장 괴롭히는 말이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 처음 가는 곳이라면 그곳에 가서 모든 감각을 갖고 와야만 했다.


어디로든 일상을 탈출하여 도망치고 싶을 때 그 감각들을 생각한다면 정말 행복한 피난처로 도망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호놀룰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하와이 여행의 기대가 비행기 좌석에 앉은 내 엉덩이에 쥐가 나는지도 모를 정도로 치솟았다.


공항 내의 약간의 더운 열기에 꿉꿉한 냄새, 사방엔 온통 영어로 가득한 이곳이 바로 내가 오고 싶었던 하와이, 하와이였다.




왼쪽 다니엘 K 국제공항 입국 심사 출처 : https://triple.guide/articles/9032d516-8f1e-4a8f-b11c-0bd88cbc14a0

오른쪽 인천 국제공항 자동출입국 심사 기계 : 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 idxno=541694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서 어느 건물로 들어가니 좁은 장소에 수많은 사람들로 꽉 막혀있었다. 난 여기서부터 대한민국이 약간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첨단 장비가 갖춰진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호놀룰루 국제공항은 권총인지, 테이저건인지 모르는 어떤 무기를 찼으며, 엄청난 몸집을 지닌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검문을 했다.


그렇게 하와이에 도착해 처음 만난 사람은 무서운 입국 심사원이었다.


미국의 입국 심사는 세계적으로 무섭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뉴욕대 다니는 친구도 미국에서 두 가지를 강조했는데, 그중 하나가 입국심사를 미리 준비하고 가라 할 만큼 중요하다 했다. (또 다른 하나는 흑인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는 것이었다.)

거기다 역사적으로 미국 본토가 직접 침공받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입국심사가

까다로워진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입국 심사대가 있었는데 어디서 받아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람은 북적이고, 수많은 언어가 귀에 들리니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동안 하와이 여행 전, 혼자 여행을 다닐 때 배운 게 하나 있다.


음식 메뉴가 많아 주문을 못하거나, 출구나 입구를 모른다면 항상 주변 사람들이 주문하거나 이동하는 거에 답이 있었다.


그렇게 난 입국 심사 줄을 어디에 서야 할지 몰라 그냥 비행기에서 본 옆자리 아줌마들을 따라서 줄을 같이 섰다.

공항 내에는 대부분이 일본인이었으며 백인들과 흑인들, 아시아인들이 고루 서 있었다.


인천공항에서는 중국어, 일본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들을 엿들을 수 있었지만 호놀룰루 국제공항은 일본어가 정말 많이 들렸다.


과거 자신들이 침략했던 곳에 이렇게나 많은 일본인이 방문하는 것이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줄이 꽉 찬 기준으로 한 시간 반가량을 기다리게 된다. 하와이에 신혼과 가족들이 많이 오게 되는데, 그중 전 세계 수많은 어린이들은 이를 버티지 못하고 드러눕는 모습들도 많이 보였다.


몸을 배배 꼬고, 검문사를 보고 겁에 질려 도망 다니기도 했다. 전 세계 아이들이 모이는 그곳에서도 어린이들의 그런 한결같은 모습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부모님이 홀로 해외여행을 간다 하던 날 바라보는 시선은 결국 저런 못 말리는 아이들을 보는 시선이었으려나.


내 마음은 그렇게 부모님의 마음이 점차 이해되고 있었다.







ep. 4 - 스테이크와 와이키키 해변




타국을 보면 고국을 사랑하게 된다.– 스탈 부인-



기내식을 든든하게 먹었는데도 분초를 앞다투어 배고파졌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택시를 타서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그러고 나서 와이키키 해변 근처에 실제 백종원 대표가 왔다 간 스테이크 가게가 있었다.





시럽 향이 강하게 나는 콜라와 사진으로 감히 담을 수 없는 크기의 스테이크.


커다란 소고기의 립아이 부분을 구워내어 그 위에 버터를 올린 모습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했다.


그 고깃덩이 하나만으로 미국인들이 얼마나 고기를 좋아하고, 많이 먹는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워낙 소고기를 좋아하는 나도 먹는데 너무 커서 먹기 힘들었다.


그러다 강하게 뇌를 자극하는 것이 떠올랐다.


'쌈장과 김치가 먹고 싶어.'


고등학교 때 엄마가 구워줬던 소고기 접시가 생각났다. 체하지 않게 잘게 잘라준 고기와 배부르라는 고봉밥, 느끼하지 않게 담아준 배추김치와 쌈장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이 고기와 김치, 쌈장이랑 같이 쌈을 싸서 먹는다면 몇 접시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먹고 일어나려 하니 직원이 나에게 웃으며 어느 영수증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곳엔 내가 먹은 고기와 콜라의 값과 밑에는 팁을 얼마 줄 건지가 있었다.


‘이들은 이렇게 당당하게 돈을 요구하는구나’


이런 생각들을 하는 나도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사람이었다.





고기를 먹고 나와 약 500미터를 걸어가니 와이키키 해변이었다.


와이키키는 하와이 어로 물이 샘솟는 곳이라고 한다. 실제 하와이 왕족들도 이곳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이상하게도 해변에 누군지도 모르는 오래된


동상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


와이키키 해변을 향해 걸어가는 도중 두 눈을 의심할 정도의 복장을 갖춘 사람들이 길거리를 활보했다.


남자들은 상의를 벗은 건 당연하고 여자들은 비키니가 기본이었다.


엄청 뚱뚱한 사람부터 엄청 마른 사람까지 뭐를 입던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자기 앞길만, 또 누구는 친구와 대화하며 그렇게 무책임하게 걸어갔다.


어떤 모습이던 자신이 입고 싶은 옷, 꾸미고 싶은 대로 꾸며도 아무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청바지에 겉옷을 입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오히려 신기하게도 내 몸을 가린 복장이 오히려 적나라하게 드러낸 복장보다 꽤나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뛰놀고 헤엄치는 아이들을 보는 여유로움, 날씨가 약간 흐릿하여 비 냄새도 났고


주변에 고기를 구워 먹는지 바비큐 냄새도 났다. 거기다 화장품 같은 분내도 났고 공항에서부터 꾸준히 영어와 일본어가 많이 들렸다.


혼자 우리나라 부산 해운대에 갔을 때는 이런 여유로움보다는 서로 사진 찍어달라고 재촉하는 연인들, 혹시나 깊은 곳에 들어갈까 아이 옆에서 조심하라고 수없이 말하는 부모님들까지.


해운대에서는 여유로움보단 무언가 조급함이 엿보였는데 하와이는 아니었다.


아내에게 오일을 발라주는 남편, 모래성을 형제자매들과 같이 짓는 귀여운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그 남편이 어째서인지 부러워졌다. 아름다운 아내와 예쁜 아이들을 데리고 이 하와이라는 천국 같은 곳에 와서 오일을 발라주는 장면은 가히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들 같았다.


내가 대학을 다니며 공부를 하고, 여행을 다니며 배우려 하는 것은 어쩌면


저 남자처럼 행복한 일상을 꾸리기 위한 발판이지 않을까.


결혼이라는 것이 어쩌면 내 성공을 더 빛내주겠구나.


결혼은 성공에 있어 결국 필요충분조건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타국을 보면 고국을 사랑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그곳에서도 불편했던 건 정말 많았다.


적어도 우리나라 해변은 일반적으로 어딜 가던 공중화장실, 쓰레기통이 정말 잘 구비돼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물이 정말 깨끗하다.


하지만 반면에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은 쓰레기통이 없는지 쓰레기들이 굴러다녔다. 거기다 공중화장실은 어딨는지 보이지도 않아 근처 스타벅스 가서 볼일을 봤다.


그리고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도 모르는 새카만 물에 어린이들이 발을 닦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호놀룰루 공항에서부터 시작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와이키키 해변에서조차 멈출 줄 몰랐다.







ep. 5 - 하와이에서의 낚시




여행은 당신의 마음을 여는 열쇠입니다.
-클라우디아 로드-







왼쪽은 하와이의 항구, 오른쪽 사진은 항구 근처 해변에서 찍은 항공 샷이다.



하와이에서 혼자 할게 특별히 없어 하루에 공백이 생기려던 찰나였다.


그렇게 뭐 할지 찾아보던 중 형의 추천으로 낚시를 추천받았고, 낚시를 좋아하던 나는 부랴부랴 예약을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우버를 불러 택시를 타고 이동하여 30분 일찍 항구로 향했다.


그곳엔 어느 작은 배가 띄워져 있었고, 선장과 그의 아들이 다정하게 낚시채비를 엮으며 얘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차마 말을 하지 못하다가 못 참고 내가 운을 뗐다. "Hello?"라고 하니 일제히 말하던걸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낚시를 하러 왔다고 말하니까 선장의 아들이 딱판처럼 보이는 명단을 하나 갖고 와서 찾는데 이상하게도 내 이름이 없었다.


당시(하와이 시간으로 2월 28일) 난 앱이 한국 것이라 판단해 한국시간으로 3월 2일(하와이 시간으로 3월 1일)을 다음날로 착각해 예약을 했었다.


하지만 휴대폰과 앱 스스로 하와이 시간에 맞춰져 내가 봤던 3월 2일은 말 그대로 하와이 시간으로 3월 2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음날에 다시 와야 되는 아주 곤란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그 배의 선장은 당황하는 날 슬쩍 보더니 괜찮다고 웃으며 내일 예약을 오늘 진행시켜준다고 했다.


그렇게 탄 조그마한 배에 처제, 아내와 같이 온 캘리포니아 미(美) 남과 맨해튼에서 온 노부부, LA에서 온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뚱뚱한 흑인과 백인이 탔다. 서로 당연히 아는 사이라는 듯 신상을 주고받았다.


미국인들의 인사는 항상 Hi, How are you?부터 시작했다. 그 오늘 어때?, 어떻게 지내?라는 말은 신기하게도 처음 본 어느 누구와 대화를 굳이 해보지도 않아도 마음이 너무나도 편해지는 말이었다.


참 신기하게도 한국이라면 서로 눈치 보고 어쩌다 말 섞는 느낌이었다면, 미국에서는 서로 아주 오래전에 잠깐 만났던 사이같이 말을 섞어서 웃으며 말하게 되고, 더 대화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 정도였다.






낚시 시작도 전에 캘리포니아에서 온 남자의 처제와 첫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동양인을 처음 봤는지 나에게 참 궁금한 것도 많았었나 보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하러 왔는지, 낚시는 평소에도 좋아하는지 물어봤다. 선글라스를 뚫고 비추는 호기심에 찬 눈빛과 마주치니 뭔가 나를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었다. (인스타 맞팔로우라도 할걸.)


그러다 도착했다는 선장의 방송과 함께 배를 멈추고 일제히 다들 미끼를 끼워 낚시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미남과 그의 아내와 배의 선체로 이동했다.


그렇게 시작한 낚시에서 내 옆자리에는 맨해튼에서 온 노부부가 앉아있었다.


그 노부부와 우연히 낚시를 하며 대화를 했는데, 이분들과는 좀 더 나만의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나는 혼자 한국에서 하와이로 약 1주일을 왔다는 이야기, 낚시는 5살 때부터 했다는 이야기, 군대에서 전역했단 이야기 (지금 생각해 봐도 별 얘길 다했다.)들을 했다.


군인 얘기가 나오니 주변에서 "thank for your service"가 자연스레 나왔다.


역시 미국이었다. 다른 나라이고, 징집병이자 이미 전역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우는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미국에서의 최고의 대우였다.


그들과의 대화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바로 진주만에 가보라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행 전에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을 추천해 주어 고마웠고, 원래도 가보고 싶었던 곳이지만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방생해 줬습니다.



그렇게 다음날 진주만을 가보는 것을 목표로 삼고 낚시에 집중했다.


그 노부부는 표현을 정말 잘해주는데, 물고기를 잡을 때면


항상 “ you got it?” “Wow perfect!!” 가 들렸다. 한국에서 아빠, 형이랑 낚시를 떠났을 때는 항상 운이 좋았던 거다, 미끼를 좋은 걸 써서 그렇다. 했었지만


대단해, 잡았어? 완벽해! 는 들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결국 한국과 미국의 정서적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는 배에서 내가 가장 많은


물고기를 잡은 사람이 되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이 결국 현실로 되는 순간이었다.




낚시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보기 힘든 고래가 거짓말처럼 배 뒤를 따라오다 사진을 찍으니 다른 데로 가버렸다.


바다 위로 잠깐 올라온 고래의 꼬리는 하와이로 온 것을 환영한다는 듯 손을 흔들어 주는 것 같았다.


거기다 흘러나오는 감성적인 옛날 팝송과 높게 세워진 아파트와 영화 같은 구름, 위에는 언제나 뽑아 써도 되는 준비된 낚싯대.


그 모습들을 보니 '꼭 내 노후에는 낚싯배를 타고 여유롭게 낚시를 다니는 사람이 돼야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한 낚시는 나에겐 하와이 여행 중 최고의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ep. 6 - 하와이 진주만 국립 박물관







“전쟁은 강제로 떠나야 하는 가장 슬픈 여행이다.”
-익명-





하와이 진주만은 과거 진주조개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진주의 항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태평양 함대의 주요 기지로써 자리 잡고 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공습으로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의 참전을 이끌어 전쟁의 흐름을 완전히 바꾼 역사적인 곳이다.


당시 조선인들은 그곳에 1900년대 초반부터 많은 조선인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이주를 시작으로 진주만 공습이 있던 1941년에는 제2세, 3세 한국계 미국인들이 존재했으며, 진주만을 포함한 오아후섬 여러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국계 미국인들의 피해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겐 이곳이 어쩌면 아예 연관이 없는 곳도 아니었고, 일제 강점기를 거친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군대를 전역한 예비군으로써 이곳을 방문한다는 건 어쩌면 인생에서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특별하고 영광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내가 원래 여행 시작 한참 전부터 밀리터리 디스카운트로 꼭 USS 보우 핀 잠수함까지 타보고 오겠다는 다짐도 있었고, 전에 노부부가 추천해 준 장소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다른 장소보다 더 설레는 발걸음으로 나섰다.



왼쪽 사진 출처 : 태평양 전쟁 당시 가미카제 사진들 - 미스터리/공포 - 에펨 코리아 오른쪽 사진 출처 : 영화 미드웨이 포스터

미드웨이(2019년 영화)

The Sea Remembers its Own. 바다는 그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 영화가 끝나며 나오는 자

namu.wiki




이곳을 우버를 불러 택시를 타고 이동할 땐 옛날에 본 미드웨이라는 영화가 생생하게 생각났다.


(그곳에 가기 전에 영화 미드웨이를 꼭 보고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를 살펴보면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중 일본 엘리트 청년들의 가미카제 특공대가 나오는데, 그들은 정치적 세뇌를 받은 채 비행기를 타고 미군 함선에 그대로 돌격하는 장면이 있다.


슬프게도 그 비행기 안에는 오로지 편도로만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연료와 최대한의 폭탄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렇게 죽어나간 가미카제 특공대 사람 수만 해도 3800명 이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나는 징집으로 훈련소를 마치고 선발되어 훈련소 조교로 지냈었다.


마찬가지로 가미카제 특공대처럼 군인으로서 전쟁 중 훈련병들과 함께 돌격하라는 상상을 해보면 정말 끔찍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상 맛있는 음식들을 놔두고 죽으라니, 거기다 함께 지냈던 훈련병들, 전우들과 같이 돌격하라니.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일이었다.



왼쪽 사진 번역 : "우리는 지금 이 전쟁(제2차 세계 대전)에 들어섰다. 우리는 모두가 전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모든 남성, 여성, 그리고 아이 한 사람 한 사람이 미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과업의 동반자입니다."

-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당시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벽난로 담화-


오른쪽 사진 번역 : 1941년 12월 7일, 최고의 희생을 한 이들에게 바칩니다, 우리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진주만 공습 추도문-



그 엘리트 청년들은 오죽했을까.


똑똑하여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고, 비행기 연료 때문에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며, 주변엔 돌격하여 몸이 찢기는 전우들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정치적인 세뇌를 받았음에도 그 젊은 청년들은 떨어지는 숨 막히는 항공기 속에서 자신들을 자살로 내몬 제국주의에 물든 자국(自國)을 생각할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그 엘리트 청년들에게 있어 전쟁이라 함은 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자신에게 가장 슬픈 여행이었으려나.


루스벨트의 벽난로 담화, 그리고 당시 완전히 파괴된 애리조나 호의 닻과 옆에 쓰인 절대 잊지 않겠다는 문구만 보더라도 당시 아픔을 겪었던 미국인들과 가미카제 특공대에 연루된 일본 엘리트 청년들의 아픔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랬기에 그 진주만에 일본인들이 많았던 이유였겠지.


마치 일본 군함도나 나가사키, 히로시마에 일제강점기의 잔재들과 당시 피해를 입었던 조선인들을 기억하러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는 것과 같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진주만을 산책을 하다 보니 미국인 노부부가 그 역사적인 곳을 추천했던 게 무언가 찝찝해졌다.


진주만은 사실 아시아 중에서도 일본에 가장 많은 연관이 되어 있다.


그래서 당시 일제 강점기를 겪었던 한국과 일본이 같은 나라였다고 생각해 말을 한 건지, 단순히 군인이었기에 가보라 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주만에 일본인들과 미국인들이 대부분 차지한 걸로 보아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닌 건 확실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조선인들, 가미카제 특공대에 끌려간 일본 엘리트 청년들, 미국 진주만 공습으로 인한 희생자들.


결국 밀리터리 디스카운트를 받지 못해 더 많은 경험을 하진 못했지만,


전쟁으로써 나라와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가서 죽은 채 돌아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여행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ep. 7 - 하와이 여행 마지막 날의 시행착오




방황하는 이들 모두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J.R.R 톨킨-



귀국하기 하루 전, 나는 저녁으로 호텔 근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랍스터와 스테이크, 그리고 파스타를 시켜 먹었었다.


마치 아웃백을 연상시키는 우드 톤 가구들, 랍스터 혹은 고기를 굽는 건지 약간 뿌연 연기와 고소한 냄새가 가게를 가득 채웠었다.


저녁에 가서 그런지 웃으며 응대해 주는 웨이터도 있었고 힘들어서 지쳐 보이는 웨이터도 있었다. 그리고 손님들은 나이가 든 손님들이 대다수였고, 가족과 같이 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혼자 앉아 있는 손님들도 있었기에 혼자라서 부끄럽다기보다는 어떤 음식들이 있을지 기대한 채 앉게 되었다.


약간 불편한 것도 있었다.


해당 자리마다 웨이터가 정해져 있는지 무언갈 시키려고 아무 웨이터를 부르면 정해진 웨이터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매우 짠 식전 빵 스콘, 분위기 하나는 기가 막힌 우드 톤 가구들.


식전 빵으로 스콘이 나왔는데 상상 이외의 맛이었다. 버터로 구워낸 고소한 맛에 뇌를 깊숙이 자극하는 짠맛. 그 스콘은 맛있어 보이는 자신을 크게 베어 문 나를 혼 내키듯 했다.



오른쪽 디저트는 당시 5일 뒤 생일이라니 갖다 줬다. 사진으로 봐도 매우 매우 달아 보이는데 그 생각 그대로다.


새우와 아스파라거스가 들어간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랍스터와 스테이크 세트, 그리고 쇼비뇽 블랑 포도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와인을 시켰다.


랍스터는 약간은 비렸다. 그러니 레드 랍스터 하와이 점을 간다면 반드시 스테이크만 시켜 먹는 것을 추천한다.


음식을 다 먹고 나니 갑자기 나에게 초콜릿케이크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담긴 접시를 나한테 서빙하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 가게에 예약을 할 때 5일 뒤에 생일이라는 문구를 넣었었다. 웨이터는 고맙게도 디저트를 서빙하면서 생일 축하한다고 해줬다.


물론 공짜였기에 기분은 좋았으나 너무나도 달았다. 그동안 하와이에 있었던 피로가 이 초콜릿케이크 한 입으로 다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결제하고 팁까지 두둑이 챙겨주고 나왔다.


분명히 빠짐없이 내 물건을 다 챙겼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곳엔 주문서와 같이 꽂혀있는 나의 카드가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을 모른 채 가게를 나섰다.


귀국할 생각에 잠을 설치던 나는 여행지 시각으로 새벽 2시가 돼서야 카드를 잃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부랴부랴 카드와 계좌를 해지했고 돈을 다른 통장으로 옮겨 놓았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귀국 날, 비가 한 번에 쏟아졌다 말았다를 반복하는 그런 날씨였다.


호텔 체크아웃을 무사히 마치고 다니엘 k 국제공항행 우버 택시를 부르려는데 연결된 카드가 사용이 금지되었다는 문구가 튀어나왔다.


아차 싶었다.


카드를 해지하면 택시를 부를 수 없다는 생각을 간과하고 잃어버렸단


생각에 사로잡혀서 해외에서 결제할 유일무이한 카드를 해지를 했으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현금밖에 없었다.





"걸어가야겠다."


호텔로부터 공항까지는 무려 3시간 반.


비행기 이륙 시간은 2시간이 남은 상황이었다. 비행기를 못 타면 국제 고아가 될게 뻔했다.


한국 대사관에 연락해야 하나, 경찰에 도와달라고 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당신은 이런 상황일 때 어떻게 공항까지 갈 것인가?


결론적으로 나는 호텔 바로 옆 주유소에 주유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종의 히치하이킹을 연상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번역기 파파고를 켜고 "50$를 드릴 테니 다니엘 K 국제공항에 데려다 달라"를 번역해서 들고 다니며 요청을 아니, 구걸을 했다.


그 당시 시간은 9시로, 출근 시간에 주유를 하러 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돌아오는 대부분의 답들은 "일을 가야 하기에 불가능하다"라는 답변이었다.


그럼에도 귀인은 계셨다.


내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어느 현지인 할아버지가 내 처지를 말하며 도움을


구하러 다니셨다. 그 덕분에 어느 필리핀계 미국인 아저씨가 데려다주겠다고 말하며 타라는 손짓을 했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공항에 도착해 출국 심사를 거쳐 인천행 비행기를 무사히 탑승


할 수 있었다.


비를 맞으며 극한의 상황 속에서 방황을 했지만 그렇다고 도착지까지 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J.R.R 톨킨의 "방황하는 것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그 당시에 매우 적절했던 것 같다.







Ep. 8 (the last ep) - 마음의 변화




"여행은 당신을 말없이 변하게 한다"
-안토니오 마차도-








약 1주일의 하와이 여행을 마치고 대한민국 인천으로 귀국했다.


하와이에 꽤 오래 있었기에 현실로 돌아왔음에도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 것 같았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기차로 이동하는 바람에


남은 달러들을 원(₩)으로 환전하지 못했다.


그렇게 꽤나 많은 금액의 달러가 내 지갑에 남아 있게 되었다.


훗날 달러를 사용하는 나라로 가서 이 돈을 모두 소진하고 오겠다는 계획이 생기기도 했다.


집으로 도착 후, 한숨 자고 일어났을 땐 여행 시작 전부터 했던 결혼과 연애에 대한 고민, 그리고 가족에 대한 생각들은 하와이에 던지고 온 것 같이 홀가분했다.


진주만처럼 역사적인 장소는 제2차 세계 대전에 다시 한번 찾아보고 전쟁에 징집되어 선발된 엘리트 청년들의 아픔과 당시 미국 진주만 공습에도 다시 일어서는 용감함에 존경심을 느꼈다.


그리고 세계 유일무이한 분단국가의 국민으로서 징집되어 군대를 예비역으로 전역한 내가 무엇보다도 뿌듯했고 자랑스러웠다.


와이키키 해변을 보고 가족의 소중함과 결혼을 해보지도 않고 그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성공의 필요충분조건을 배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들은 이 기행문을 작성하는 지금까지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다. 마지막 날 시행착오나 각종 에피소드들에 있었던 내용들, 미국의 치안을 생각하면


결국 내가 부모였어도 자식이 해외여행을 갔을 때 반대부터 했었을 것 같다.


그렇게 다양한 장소들을 가고, 에피소드들을 겪으며 내 여행의 한 페이지가 작성됐다.


하와이라는 여행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휴양지이자 신혼여행지이지만 나에겐 고민과 걱정을 떨쳐내고 가족의 소중함, 결혼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는 특별한 장소였다.


아메리칸드림. 미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미국적인 이상 사회를 이룩하려는 꿈을 뜻하는 말로, 미국인이라면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소망으로 무계급 사회와 경제적 번영의 재현, 압제가 없는 자유로운 정치 체제의 영속되는 개념을 포함한다고 한다.


미국 하와이의 개성 있고 민주적인 사회의 분위기는 결국 나에게 이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생각의 자유,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성장과 변화를 시켜준 뜻깊은 장소였다.





나조차 어떤 시련을 마주하여 어디로 떠날지도 모른 채 나 홀로 하와이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표 청년 작가 되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