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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들_일상 속에 스치는 생각을 잡다(1) 1~4

단상들 _일상 속에 스치는 생각을 잡다

'생각이 번뜩이다'라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잡고 싶었습니다.

하루에 좋은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집에 오니 막상 머릿속에서 휘발되어 버렸을 때 느끼는 공허함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단상들'이란 제목으로 글을 써 내려갑니다. 하루에 열 문장은 쓰자, 라는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재능은 없어도 꾸준함의 힘, 항상성을 믿으며.


1. 호의

 요즘 호의를 많이 받고 산다. 도서관 이웃집에서는 커피부터 도서관에 놓을 꽃과 파전까지 나눠주신다. 자원봉사자 청소년들 가운데 커피를 건네주는 청소년들이 있다. 마다하지 않고 고마움을 받는다. 나에겐 18원짜리 커피가 청소년들에겐 180원처럼 느껴질 텐데,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고민 중이다. 호의 중에는 당황스러운 호의도 있다. 내가 그것을 소유하지 않을 확률이 높거나 누군가에게 줄 확률이 거의 100%인 호의들이다. 받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거부하는 순간 그 민망함과 무안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최근에 한 번 거절했다가 다시 받은 것도 있다.      

 호의를 받을 때는 감사함으로, 호의를 베풀 때는 무덤덤함으로 베풀자. 어린이가 베푸는 호의부터 어른이 베푸는 호의까지, 모든 호의에는 나의 취향과 상관없이 마음이 담겨있다. 취향과 맞지 않는 호의를 받았을 때도 일단 감사하자.      


 호의를 베풀 때 기대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기대하는 바가 크면 대게 실망으로 다가온다. 호의를 베풀 땐 내 손을 떠난 돈으로 생각하자. 그 돈을 가진 사람이 무엇을 할지는 그 사람의 자유다. 떠나보낸 호의는 오래 보지 말고, 다가오는 호의는 오래 보자.      


2. 자율     

 자율성은 대게 적극성을 가진다. 청운 한국학교 자율동아리 청소년들을 만났다. 자율의 적극성은 명랑함을 가진다. 황현산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명랑함은 윤리적인 것이다. 자율적으로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은 대게 윤리적인 청소년들이다. 어른이 할 일은 그 윤리적인 명랑을 지켜주는 것이다. 한 가지 염두해야 할 것은 자율은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자율은 무리가 될 수도 있고, 억지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무리가 되고 억지가 된 자율은 명랑함의 색보단 맹랑함의 색을 보이게 된다. 적극성과 무리수, 명랑과 맹랑 사이에서 우리는 늘 줄다리기를 한다. 균형을 잘 잡아주는 것도 어른의 일이다.     


 자율은 타율을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 반만 자율인 건 타율이다. 청소년 자원봉사자와 청소년 북클럽 모집할 때 학부모님들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시킨 건 ‘자율성’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한 번 해봐.”라는 말을 듣고 신청한 사람과 “꼭 하고 싶어.”라는 마음으로 신청한 사람이 같을 수는 없다. 기회를 준다면 ‘꼭 하고 싶은 사람’에게 주고 싶다. 앞으로도 청소년에 관한 것이라면 계속 학부모님들의 개입을 배제할 예정이다.      


3. 오해     

 오해를 분해하면 ‘꼬인 실타래’가 보인다. 어떤 오해는 너무 꼬여서 어디에서부터 꼬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오해를 풀려면 장시간의 인내와 정확한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도 안 된다면 일단 관계를 끝내고 나중에 시간이 해결해 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오해에는 언제나 작은 이유가 있다. 그 작은 이유는 신발에 들어간 작은 모래 같아서 처음에는 느껴지지 않다가 걸으면 걸을수록 불편해지고, 결국 못 걷는 지경에 이른다. 걸음을 포기하거나 알맹이를 찾아내거나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한다.      


 오해를 푸는 일 가운데 잘못한 일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오해를 푸는 일은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어떻게 보면 오해는 오해를 받은 쪽에서 열 수 없는 문인 거 같다. 용서도 마찬가지.     


4. 선생     

 예전에는 선생은 나이 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많은 것을 선생으로 삼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여러 명의 선생을 만난다. 황현산 선생님이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엇인가 알아갈수록 모르는 게 참 많아진다. 읽을수록 읽을 책은 쌓여가고, 책을 구매할수록 구매해야 할 책도 늘어난다. 내일은 다섯 명의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다. 연수회를 준비하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선생님들을 가르칠까, 나보다 모든 것이 다 뛰어난 분들일 텐데,라고 생각하다가 내 안에 내가 한 마디 던진다. “네가 배우면 되잖아.”      


연수회 (硏修會) : 학업이나 직무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거나 훈련하기 위한 모임.      


 답이 안 나올 땐 국어사전을 검색해 본다. 학업이나 직무에 필요한 지식을 꼭 교장이 가르치라는 법은 없으니까 내일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수업은 앞으로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 가는 것으로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다. 좋은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 안에 것을 모두 재정비할 준비를 해야 한다. 안이 너무 꽉 찬 사람에게는 그 무엇도 선생이 될 수 없다.      

 내일은 각자 삶의 결과 무게를 가진 여섯 명이 모여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경험과 경험이 만나 조화를 이루면 시너지 효과가 되고, 그 경험이 부딪히면 전쟁터가 되는데, 내일 뵐 분들은 다 배우고 싶다는 분들만 있어서 몇 주 마음이 무거웠다. 아마도 ‘서로에게’라는 말이 생략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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