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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_가족이 폭력으로써 지키려는 명예

차별과 다름 그리고 김지혜 교수 2023.09.18.

오늘의 문장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가족제도를 해부한 책, 김지혜 교수의 『가족각본』(창비, 2023)에서 가져왔습니다.

 어찌 보면 허탈하게도 가족이 폭력으로써 지키려는 명예는 '결혼 가능성'이다. 그만큼 가족의 운명이 결혼에 달려 있던 역사적 맥락을 반영한다고 이해해볼 수 있다. 이런 가족체제에서는 폭력이 정당해 보였을 수 있다. 집안의 명예를 실추시킨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마땅히 '처벌'하는 일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렇게 피해자를 가해자로 탈바꿈시키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데 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은 이런 역사적 맥락이 희미해진 후에도 감정과 관습이 남는다는 점이다. 여성의 행실을 비난하거나 여성의 성을 보호한다며 통제하는 체제가 시대를 관통해 이어진다.
_138p


 2020년 하반기에 난다 유성원 과장님의 산문집을 완독 했을 때, 저에겐 거대한 '과제'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3년 동안 그 과제를 부지런히 하는 중이고, 최근에 이 과제의 끝은 '원점'이겠구나,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과제는 '칼뱅주의자인 내가 성소수자와 감정이 상하지 않고, 서로의 다른 생각을 끝까지 들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최근에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들여 대화해도 서로의 영역을 좁힐 순 없을 것이나, 최대한 안으로 멀리 확장하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달라질 것이다.'


http://aladin.kr/p/sfori


차별금지법이란 말이 예전부터 거슬렸습니다. '금지'라는 말 때문에 생기는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겠죠. 무언가 금지하는 거 말고, 허락하는 법들을 만들면 어떨지, 생각도 해봤고요. 유성원 과장님의 산문집은 동기들에게 선물로 줬습니다. 도서관의 추천 도서이기도 하고요. 저로서는 최대한 멀리 뛰기를 한 것입니다. 나와 맞지 않는다고 다 배척해 버리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저는 불편한 마음을 가득 안겨주는 책을 좋아하고, 그 책의 저자를 존경합니다. 박연준 시인님이 읽어본다 시리즈에 남긴 문장이 생각납니다.


"우리들이 한 일을 보세요. 우리들이 한 일을 똑똑히 바라보세요,라고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시. 이런 게 일류다. 사람들은 때로 일류를 불편해한다. 인정사정 봐주는 법이 없으니까."

_박연준,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난다, 2017) 중에서

http://aladin.kr/p/PUgcC


김지혜 교수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경향도서관 스테디셀러입니다. 저와 같이 전통적인 가족 관계를 추구하는 분들이 읽으면 "뭐야, 나랑 안 맞아!"라고 외치며 책을 덮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 안 맞음의 간극이 지금 세상과 자신과의 간극일 겁니다. 그만큼 생각할 것들이 많은 책입니다.


수많은 '딸'은 여전히 거대한 억압 앞에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있을 것이고, 그 불평등이 지금의 균형 잃은 세상을 만들었을 겁니다. 반대에 '혐오'까지 들어가진 않길 바라며, 책을 덮습니다.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던 문제가 있었는데, 밤 산책길에 바람이 불길래 던져버렸습니다. 어떤 고민은 따지고 보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인 경우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이요.

'소란'에 오시면 불편한 이야기 마음껏 나눌 수 있습니다.

비와 강풍 조심하시고요. 안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내일은 오전 10시에 자원봉사자님들이 문을 열어 주실 거고요. 저는 12시에 출근할 거 같습니다.


#가족각본 #김지혜교수 #가족 #오늘의문장 #칭다오 #칭다오청양 #칭다오경향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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