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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_어떻게 가기 전까지 읽고 쓸 수 있을까?

꾸준히 끝까지 읽고 쓰는 삶 그리고 허수경

오늘의 질문


고 허수경 시인의 5주기입니다. 살아생전엔 잘 모르는 시인이었고, 돌아가시고 난 뒤에 나온 유고산문집을 통해 알게 된 시인이니 시인의 기일을 기억할 필요는 없겠으나, 기일이 개천절이라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기념하게 됩니다. 저에겐 너무 강렬했던 시인의 첫 유고산문집은 이제 제법 세월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많이 읽히길 바랐고, 기대했던 것보단 많이 읽힌 이 유고산문집은 고 황현산 선생님의 트윗 모음집과 더불어 간식처럼 꺼내 읽는 책입니다.


가기 전까지 책을 읽던 황현산 선생님이나 가기 전까지 글을 썼던 허수경 시인의 유고집을 꺼낼 땐 ‘평생독자’라는 말을 상기하게 됩니다. 끝까지 한결 같이 무언가 하는 사람, 그것이 글쓰기나 독서가 아니더라도, ‘생활의 달인‘이 된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무언가 할수록 겸손해지는 일, 자신의 분수를 알게 되고, 결핍을 깨달으며,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 하는 일, 그 무해함의 순환을 동경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프리첼 시절부터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아 쉬지 않고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글쓰기가 외부로 던질 돌을 내면으로 던지게 만든 거 같습니다. 말은 휘발되지만, 글은 남습니다. 남기에 용기가 필요하지만, 용기를 내면 내가 했던 생각을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단지 돌아보는 것만으로 나아가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여 계속 무언가 쓰게 되는 거 같습니다.


칭다오는 좁디좁은 곳입니다. 완벽한 ’도피처‘를 찾기 힘든 곳이죠. 어딘가로 도망갈 구석을 찾는다면 ’글쓰기의 세계’도 참 괜찮은 도피처입니다. 그곳에선 뭐든 가능하니까요.


칭다오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평생독자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여름에 모은 에너지를 다 써야 하는 ‘문학의 밤’ 행사를 매년 개최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평생독자’를 만들기 위함일 것입니다. 쓰기 시작하면 독서의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거든요. 칭다오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 가운데 나중에 제가 사인을 받으러 가는 작가가 나오길 바랍니다. 팬데믹을 돌아오는 것만으로 우리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명예와 부는 자동으로 따라올 테니, 상을 목표로 하지 말고, ‘기록’을 목표로 적어보세요.

망설이는 사람에겐 후회가 남고, 시작하는 사람에겐 후련함이 남습니다.


오늘의 질문은,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의 소풍을 마칠 때까지 황현산 선생님처럼 읽고, 허수경 시인처럼 쓸 수 있을까?”입니다.


머무는 문장

아,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가기 전에 나는

써야 하는 시들이 몇 편 있었던 것이다.


민정이 보내준 난다 노트 한 권을 꺼내들고

나는 쓰기 시작했다.

몇 편의 시가 나에게 남아 있는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가기 전에 쓸 시가 있다면 쓸 수 있을 것이다.

내일, 내일 가더라도.


그리고 가야겠다. 나에게 그 많은 것을 준 세계로.

그리고, 그리고, 당신들에게로.

_허수경,『가기 전에 쓰는 글들』(난다, 2019), p.308


끝을 외친 최승자 시인도, 시작을 외친 허수경 시인도, 멋집니다.

청귤 보이차를 마시며 읽는 허수경 시인의 글이 참 좋습니다.

귤, 귤은 이제 허수경이고, 10월도 이제 허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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