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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_11억 도서 예산을 꼭 삭감해야 했습니까?

첫 시집과 작가의 탄생과 예산

오늘의 질문


목요일 오전에는 ‘시로부터 출발하자’고 시작했던 목요 문장 모임 시발诗发이 모이는 날입니다. 모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장소에서 책을 읽고 문장을 나눌 수 있는 아주 느슨한 모임이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1시간은 시를 읽겠다는 마음으로 자리를 지킨 지도 2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오늘 아침엔 누군가의 첫 시집이 읽고 싶어졌습니다. 지난 새벽까지 이어진 생각들이 숙취처럼 남아서 누군가 꾹꾹 눌러쓴 첫 시집으로 해장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시집 서가를 보다가 유희경 시인의 시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은 시인의 신간 시집을 구매하며 함께 구매했던 시집, 읽어야지 하다가 다른 신간들에 밀려 서가에 꽂혔던 시집, 다시 꺼내 시집의 첫 번째 독자가 되기로 합니다.


낱말, 우산, 당신이란 단어가 좋았습니다. 첫 시집은 두꺼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집이 내 마지막 시집이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작용하는 걸까요, 저도 작년 브런치 공모전에 글을 30편이나, 오지게 길게 써서 제출했습니다. 읽기도 버거울 정도로 말입니다. 유희경 시인의 첫 시집은 1시간 안에 읽기는 벅찼지만 좋았습니다.


2011년에 태어난 유희경 시인의 첫 시집은 2023년 여름에 칭다오에 왔고, 가을에 첫 독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드문드문 독자들과 인사를 나눌 거라고 믿습니다.


얼마 전 2020년 신간으로 구매했던 신간이 첫 독자를 만났습니다. 책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신선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냉장고도 필요 없으니 신선함을 유지하는 일에 책만 한 가성비도 없습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도 많고, 책을 내고 싶은 사람도 많고, 심지어 출간하기 쉬운 세상입니다.

독서 인구 걱정하면서 출판과 도서관과 서점과 작가들에게 들어가는 예산은 삭감하는 세상입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책을 내고 싶어 하고, 첫 시집을 원하고, 처음을 보고 싶어 하는데 말입니다.


생각의 숙취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시집에서 잠시 길을 잃고 나면 개운합니다.

잃어버리는 기억과 포기하는 가치가 많은 요즘입니다. 타협하고 양보하기를 반복하면

나까지 양보해 버리지 않을까,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가을은 원래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을

애써 하는 계절입니다. 고민과 고민이 만나 대답이 되기도 합니다.


시집 읽기 좋은 계절입니다. 시집이 좀 팔렸으면 좋겠고, 사유의 숲도 천천히 거닐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질문은 “도서관과 동네책방과 힘이 없는 작가들을 살리는 예산을 줄여야 했습니까?”입니다.


머무는 문장


눈물이 울고 눈은 울지 않는다

나보다 먼저 소요가 일어났다

떨고 있다 떠는 것이 있다

내게 고인 것들이 불쌍하지만,

어차피 위선 아니면 위악

용서받을 것이 아니다

경계가 경계를 경계하고

숫자를 세는 일은 지겹지 않다

끝나지 않으면 잃어버린 거지

그런 건 찾지 않는 게 좋다

먼 외국의 일은 잊어도 할 수 없다

힘은 무겁다 이름은 가깝고,

누구나 너무 자주 생각한다

세계는 생각의 덩어리진 형태

생활은 오쟁이 진 모습 그대로

흑백의 거리가 어둑어둑해진다

비극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결론의 집에서 산다


_유희경, 「한편」 『오늘 아침 단어』(문학과지성사, 2011) 전문


칭다오에 있는 청소년과 졸업생들 가운데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 친구들 등단할 때까지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도서관 등록증이란 지겨운 민원을 잠시 중단했습니다. 그동안 일선에서 최선을 다해 답변해 주신 공무원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환경이 바뀌면 다시 문을 두드려 보겠습니다.


도서관은 오늘 오후 7시까지 개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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