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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_ 벌금제는 전반적으로 비생산적

연체와 연체료의 관계


오늘의 질문


도서관장이라는 직업은 저에게 제3의 직업입니다. 도서관장보다 중요한 직업이 적어도 두 개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 도서관장이라는 제3의 직업이 본업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은 끝까지 좋아서 하는 일이어야 지속 가능한데, '연체'라는 벽을 넘었다고 생각하면 계속 부딪히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무료로 운영하는 중입니다. '공공'이란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저와 운영위원들은 '수입'을 내려놓았습니다. 애초에 수입을 목적으로 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연체료 10원씩 100원, 쉽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연체하고 100원 낼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연체료를 받기 싫어서 며칠째 연락을 돌리며 안내하고 있는데, 안내할수록 깨닫는 건 '부질없다'라는 것입니다.


연체를 하는 사람들은 도서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냥 일 있을 때 반납한다는 대답만 이틀 연속으로 듣다 보니 저도 예민해졌을 겁니다. 연휴 잘 보내셨냐고 안부까지 물으며 반납을 부탁하던 저는 오늘에 이르러 거의 챗봇 수준으로 안내하는 중입니다.


한국도서관 시스템이라 자동 문자 서비스도 안 되는 상황에서 모든 연체자에게 안내하는 일은 끝이 없을 거 같아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 안내를 중단합니다.


백해무익한 연체 규정을 강화하는 것으로 도서관 규정을 지키는 분들에게만 책을 대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도 정말 싫었지만, 본업까지 지장을 주는 이상 저도 어쩔 수가 없는 거 같습니다. 물처럼 흐르는 도서관을 위해 약속을 잘 지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질문은 “연체료 외에 도서관 반납 약속을 잘 지키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입니다.

인쇄를 하면서도 “정말 싫다”를 외치는 공지

머무는 문장


 헤더가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킨 공포가 도서관에 먹구름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그 공포감은 모두 벌금을 중심으로 형성된 듯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회원 계정에 부과된 연체료를 알려주며 사람들을 위로하곤 했는데, 그들은 앞으로 도서관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 계정에 뜬 팝업 메시지를 보여주고 위반 사유와 벌금 액수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려고 내가 모니터를 그들 쪽으로 돌리면 눈에 띄게 움찔하는 사람도 있었다.

 현행 연체료는 하루에 20펜스였고, 권당 최대 3파운드까지 올라갔다. 이게 쌓이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는데, 내 보기에 벌금제는 전반적으로 비생산적이었고, 특히나 지나치게 열성적인 헤더의 집행력과 어우러지면 역효과가 나버렸다.


_앨리 모건, 『사서 일기』(엄일녀 옮김, 문학동네, 2023), p47


 '가성비'와 '최단 경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다리는 일'(좌회전 신호 기다릴 바엔 유턴하는 성격) 좋아하지 않는 저에게, '연체'와 '연체료'는 정말 싫은 일입니다. 사람마다 싫어하는 일이 다를 거예요.


 연체료 안내해 드린 분들도 일요일까진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다만, 다음 주 화요일부터 별도의 안내 없이 연체료가 부과되고, 대출 정지가 될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저를 공포의 헤더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봄날의 따스한 햇살과 같은 관장이 되고 싶습니다.


덧, 원래 오늘의 질문은 "KIA는 과연 오늘 두산을 잡고 5강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을까?"였습니다. 서울 출신의 인천 시민이지만, 어릴 적 전라도가 고향인 아버지에게 '우리 집은 해태 응원하지 않으면 호적에 올릴 수 없다.'라는 말에 LG를 떠나 해태와 기아를 응원한 지 28년, 2009년과 2017년의 기쁨을 다시 누릴 수 있길.


#사서일기 #앨리모건 #엄일녀옮김 #문학동네 #도서관 #연체료  #오늘의질문 #칭다오 #칭다오청양 #칭다오경향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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