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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굿모닝 편지

출산 중인 아내와 나빈이와 준서에게

성아에게,


무엇보다 건강하게 만나자.

곁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앞으로 미안한 일보단 감사한 일이 더 많아지도록 노력할게.


나빈이 건강하게, 예쁘게 만나요.

Ich liebe dich.


2023년 12월 11일 오전 5시 45분

집에서, 언제나 님편이.


나빈이에게,


나빈아, 아빠야.

아름답게 빛나라고 지어준 이름인데,

아빠가 너무 멀리 있어서 나빈이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와 빛나는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됐네.

그래도 아빠 대신 엄마의 엄마가 함께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엄마랑 아빠, 그리고 오빠한테 선물처럼 찾아온 나빈아.

아빠가 딸은 처음이라 서툴 수도 있겠지만, 최선이란 걸 다해볼게.


지금, 이 편지를 쓰는 동안 엄마는 나빈이를 빨리 만나려고 촉진제라는 걸 맞고 있어.

아빠가 오빠가 태어날 때 기록해 둔 걸 보니까 촉진제 맞고 엄마는 무거운 고통을 견딘 후에 2시간 만에 오빠를 만났네. 나빈이도 곧 빛을 보겠지?


다행인 건, 그동안 나빈이 봐주시던 선생님이 당직이래.

그래서 일찍 나오고 싶었던 거지? 끌림이라는 게 있는 거 같아, 나빈아.

아빠가 나빈이 태어나는 순간만큼은 보고 싶고, 조리원 갈 때도 함께 있고 싶었는데,

여권이란 거 누가 만들었는지 이런 순간이 오면 참 원망스럽단다. 그래도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들도 있는 거니까. 아빠가 앞으로 함께할 시간 속에서 나빈이 곁에 있도록 노력할게.


12월 11일이다. 월요일이고. 칭다오는 눈이 오는 거 같아. 비가 오는 거 같기도 하고. 여기는 0도인데, 서울은 9도라서 다행이다. 이번 주 내내 따뜻한 거 같네. 정말 이상한 날씨지만, 그 이상한 상황이 또 고마울 때가 있네.


나빈이가 태어나고 환경이 몇 번 바뀌겠지만, 건강하게 잘 적응해 보자.

무엇보다 지금은 예쁘게 엄마와 엄마의 엄마와 세상과 만날 준비 잘하고.

곧 만나자. 사랑해, 나빈아.


2023년 12월 11일 월요일 오전 6시,

칭다오에서, 39주 1일 동안 기다렸던 아빠가.


준서에게,


준서야, 아침에 일어나면 얼마나 놀랄까?

그래도 준서는 씩씩하니까 아빠 갈 때까지 아빠의 엄마와 잘 지낼 거라 믿어.


동생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해 봤는데, 답은

없는 거 같아. 서운할 때도 많겠지만, 아빠가 준서 힘껏 사랑해 줄게. 엄마가 조리원 가 있는 동안 아빠랑도 잘 지내보자.


아빠가 너무 바빠서 준서랑 남긴 추억이 별로 없네. 이 기회에 추억도 많이 만들어 보자. 똥꼬발랄하게 놀고 있어~ 아빠가 약속한 대로 다섯 밤만 더 자고 만나러 갈게.


사랑해, 준서야.


2023년 12월 11일 월요일 오전 6시 20분

칭다오 집에서, 사랑하고 사랑하는 아빠가.


새벽 3시에 병원으로 이동한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준서는 36시간 동안 진통을 겪었는데, 나빈이는 곧 만날 거 같습니다. 그래도 경험이 도움이 되네요. 담당 선생님이 마침 당직이라 익숙한 선생님이 나빈이를 받아주실 거 같습니다.


예정일에 나오거나 조금 늦게 나올 거 같다고 2일 전에 말씀하셨는데, 역시 인생은 예상을 보기 좋게 비껴가네요. 미안함과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건강 하나면 족합니다. 거류증이 15일에 나올 예정인데 조금 일찍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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