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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보기

나무, 성장, 실패, 성공


진짜 소중한 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가끔은 되살펴야 하는지 모른다.

소란스러운 것에만 집착하느라,

모든 걸 삐딱하게 바라보느라 정작 가치 있는 풍경을 바라보지 못한 채 사는 건 아닌지.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드는 그 무엇을 발견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눈을 가린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_이기주, 언어의 온도, 말글터

사진 1 : 2023.11.01 16:40
2022.11.02 17:03

사진 2는 오늘 오후 4시 40분에 찍은 사진이고, 사진 3은 작년 11월 2일 오후 5시 3분에 찍은 사진이다. 작년 가을과 올해 가을의 차이.

다음 주가 입동이다. 겨울이 되면 알아서 기온을 조절하는 자연은 계절과 이별할 때 어김없이 비를 사용한다.

cmp 광장 나무는 이번엔 오른쪽이 먼저 겨울과 만나는 중이다.


지난 주말에 문학상 본상에서 아쉽게 떨어진 친구가 찾아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항상 잘하는 사람도, 항상 못하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누구나 잘 나가다가 미끄러질 수 있고, 미끄러지다가 일어날 수 있다. 넘어지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넘어지고 잘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 친구는 잘 넘어진 거 같고, 잘 일어서리라 믿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성장’도 포함이 된다. “어느새 성장했지?”라고 말하면, 성장하기 위해 매일을 견딘 모든 존재의 노력이 섭섭하겠지만, 성장을 이야기할 땐 대부분 ‘어느새’가 붙는다. 일몰을 관찰하는 일은 ‘어느새’ 나무를 관찰하는 일로 확장되었다. 무심코 지나가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유심히’ 보면 ‘성장의 과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게 된다. 식물멍 하는 분들만이 몬스테라잎이 펴지는 진귀한 광경을 보듯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들은 오래도록 지켜봐야 비로소 ‘보인다.’


사진에서 보듯이 올해는 오른쪽 나무가 더 부지런히 자랐다. 물론 왼쪽 나무가 비를 더 대차게 맞아서 단번에 잎을 떨어뜨리거나 동시에 떨어뜨릴 수 있는 역전의 기회는 남아 있다.


14연패 하던 팀이 19연승을 할 수도 있는 게 야구이고, 야구는 인생의 축약판이다.


프로 중에 ‘9회말 역전 만루 홈런’을 꿈꾸는 사람은 있어도 거기에 의지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저 150km 내외의 속도로 나를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공에 집중할 뿐.


나는 떨어졌다고 다음에 잘될 거예요, 라는 막연한 응원은 하고 싶지 않다. 다음에도 잘 안될 수 있으니까. 나를 찾아온 고마운 친구에게는 이번엔 상을 의식하고 써서 감정이 과한 부분도 있었던 거 같으니, 다음엔 주제도 미리 알려줬으니 미리 써놓고 덮어놓았다가 내년에 펼쳐서 과하다 싶은 부분을 잘 다듬으라고 했다. 내가 허수경 시인도 아니고 그 친구가 박준 시인도 아니지만, 박준 시인에게 1년 더 시집을 다듬으라고 말했던 허수경 시인의 마음을 손톱만큼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누구나 넘어진다. 나도 넘어졌다가 일어나는 중이다. 어린이들이 팬데믹을 주제로 쓴 동시를 문집으로 엮을 준비하다가 먹먹해서 혼났다. 꿈에서 아빠를 만난 이야기, 할머니 이야기 등… 팬데믹을 졸업한 어린이들에게 희망이 있으리라 믿는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글 쓰다가 다치지 않도록,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도록 모래사장에 모래를 더 깔아야겠다.


마침표를 찍었는데 “너나 잘하세요.”라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덧, 불만을 마음에만 품고 마음이 상하는 친구들보다 나에게 가져와서 털고 가는 친구들이 더 반갑고 고맙다. 언제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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