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은 실패 뒤에 언제나 새로운 시도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지난주에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일주일 후쯤이면 만개한 벚꽃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사이 계절은 겨울과 여름을 오가며 널뛰기를 했고, 영문 모를 벚꽃은 어느새 활짝 피었다가 초록색 잎사귀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이 풍경을 보며 저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시차 적응 실패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시간 여행이라 해야 할까 하고요. 그러다 이동식 도서관에서 친구와 꺄르르 웃으며 책을 추천하는 10살 어린이들을 보면서 '시간 여행'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실패 뒤에 언제나 새로운 시도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어른인 우리는 실패 뒤에 좌절만 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영어와 중국어와 모국어인 한국어를 자유롭게 섞어 쓰며 이야기하는 어린이들을 보며 저는 모국어로 '희망'이라는 단어를 발음해 봅니다.
저의 이름에도 그런 희망 하나가 담겨 있습니다. 굳셀 건(健), 밝을 희(熙). 밝음이란 명랑함이자 윤리이고, 희망이며 또 다른 시도입니다. 꽃잎이 진 벚나무를 보며 '벚꽃 보기 실패'라고 하지 않고, '초록 옷을 입은 벚꽃 보기'라고 표현하는 것. 희망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름 안에 담긴 밝음을 기억하며 어두운 시절에도 다시 시도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어린이들은 포기를 모릅니다. 장난감을 사달라는 아이에게 논리는 잘 통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단단한 시도 앞에는 좌절이 없습니다. 사람의 이름을 호명하는 순간, 숫자 1로만 표기되던 익명의 누군가가 특별한 존재로 다가오듯이, 우리 마음에 작은 어림이 남아 있다면 두려움을 모험으로, 좌절을 시도로, 아쉬움을 새로움으로 바꾸는 희망 어린 마음을 갖게 됩니다.
4월의 두 번째 날, 벚꽃이 당연히 만개할 거라 믿었던 자신의 경험을 과신했던 어른인 저는 오늘 학교 교정을 산책하는 아이들과 점심시간을 보내는 청소년들, 마지막에 와서 책을 대출하는 유치원 아이들을 보며 '희망 어린 마음' 하나를 얻어 갑니다.
가끔 극단에 치우친 사람들을 보면 '점'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리한 송곳의 끝을 조금만 둥글게 다듬어서 세상이라는 종이에 구멍을 내지 않고, 대신 색연필이나 파스텔과 붓으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넣으면 좋겠습니다.
악다구니를 쓰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이 있다면, 바로 지치지 않는 작은 시도가 아닐까요. 점을 많이 찍으면 선이 되고 원하는 그림이 되기도 합니다.
4월에는 기다리는 소식들이 많습니다.
여섯 살 준서는 저나 아내가 아픈 것 같으면 "준서가 붙여줄게"라며 밴드를 들고 옵니다. 아프다는 사람에게 "뭐가 아픈데?"라고 묻지 않고, "괜찮아요?"라고 물을 수 있는 그런 마음 하나쯤 저도 품어봅니다.
일주일 만에 초록이 된 벚꽃을 바라보며,
일주일 만에 책을 추천하는 초록을 바라보며,
대원에서,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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