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뜨거웠던 여름, 전국
동네책방 투어. 2020년 뜨거웠던 여름, 전국
아내가 가끔 하는 말이 있다. "자기는 책방에 가면 눈빛이 달라져."
맞는 말이다. 나는 책방에 가면 눈빛이 달라진다. 책방을 탐닉하는 것만큼은 광적인 부분이 있다. 내 인생의 통제권을 잃어버린 김에 미끄럼틀 타고 내려가듯 바닥을 향해 달려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기 위해 동네책방에서 영감을 얻는 중이다.
동네책방 투어를 통해 전에 확신한 것을 확인했다. 책은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확장할 수 있다. 바로 책의 '순환성과 확장성'에 대한 믿음이다.
한국에 갇혀 있는 동안 새장 속에 새라도 되고 싶어서 마음껏 날아다녔다(비행기까지 타고 날아다녔다). 북클럽 문학동네 아지트 투어는 세종시에 있는 카페 꼼마를 제외하고 모두 방문했고, 가장 북쪽으로는 동두천에 있는 코너스톨, 가장 남쪽으로는 서귀포에 있는 책방 인터뷰, 가장 서쪽으로는 당진 면천읍성에 있는 오래된 미래, 가장 동쪽으로는 울산 다독다독까지 동서남북 전국 팔도를 유랑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방문한 책방만 80개가 넘고, 구매한 책은 500권이다. 물류비만 150만 원이 들었으니 책방에 미쳤다고 해야 되지 않을까. 제정신으로 버틸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임신한 아내에게 허락을 구하며 1박 2일, 2박 3일 코스로 책방 투어를 떠났다.
면천읍성 오래된 미래 대표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책방을 다니며 얻게 된 것들이 정말 큰 자산이 될 거예요." 맞는 말씀이셨다. 비록 갇혀있는 중이고, 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중이지만, 이 국경 봉쇄는 언제 풀릴 예정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려가면서 바닥까지 거름을 뿌리는 중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은 정말 좋은 거름을 뿌렸으니 바닥에서부터 뿌리를 내리고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게 될 거라 믿는다.
동네책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00번째 책방 투어 기념으로 따로 책을 만들고 싶다.* 오늘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다녔는지 알려주기 위해 2박 3일 제주-창원-울산-경주-대구-부산-광주-전주 책방 투어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고 싶다.
이원하 시인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라는 시집을 보고, 종달리 수국을 보기 위해 투어 계획을 세웠다. 언제 다시 칭다오에 돌아갈지 모르니 북클럽 문학동네 아지트 투어도 마무리할 겸 코스를 생각해 봤다.
제주도는 당일치기로 갔다. 6월 16일 오전 7시 30분에 입도해서 아침은 월정곰탐이라는 <따뜻한 냉정>의 저자 박주경 앵커님이 추천하신 곳에서 든든하게 먹었고, 이원하 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곳을 찾아가서 시를 낭독했다. 먼저 하도리-종달리 수국 길을 거쳐 종달리 소심한 책방-제주 풀무질-세화 해변을 거쳐 평대 해변 앞 해맞이 쉼터에서 바다를 보며 해물파전을 먹었다. 주점에 유일한 사자성어인 해물파전 맛이 궁금했다. 송달리 제주 살롱에 갔다가 허은실 시인을 우연히 만나서 인사를 드리고 시집에 사인을 받았다. 북클럽 문학동네 코인으로 낑깡에이드를 주문하고 시인의 집 손세실리아 시인과 주책방 지기님께 드릴 이원하 시인 사인본을 구매해서 조천에 있는 시인의 집에 방문해서 손세실리아 시인과 인사를 나누고 용기를 내어 후배 시인의 시집을 선물로 드렸다. 그리고 시인님과 동네책방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에 더 깊게 빠져들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해로 건너간 다음에 랜트카를 타고 창원 주책방에 들러 이원하 시인 시집을 드렸다. 주책방은 언제 가도 반가운 곳이다. 엄청난 첫날 일정을 마치고 더 엄청난 둘째 날 일정을 위해 부산에 있는 숙소로 갔다.
다음날 고된 몸을 이끌고 울산의 사랑방 다독다독이 3주년을 맞이했다고 들어서 선물을 사서 방문했는데, 문이 닫혔다. 굉장히 복잡한 상황을 이겨내고 대표님이 도착하셨고, 앞으로 도서관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힌트를 얻고, 귀한 책까지 선물 받고 길을 떠났다. 지역사회와 도서관의 관계에 대한 답을 다독다독에서 찾았다. 울산에서 대구로 가는데, 경주 어서어서를 지나칠 수 없어서 경주 어서어서에 들러서 짧게 안부를 묻고 떠났다. 대구 중부경찰서 앞 차방책방에 방문했는데, 시청 직원이 책방 운영에 어려움이 없는지 물어보는 걸 자연스럽게 함께 들었고, 여유가 생겨 책방 대표님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차방책방과 어서어서를 이어서 보고 도서관도 장소를 구한다면 직사각형 형태의 공간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차를 다시 부산으로 돌렸다. 해운대에 있는 그림책방 봄봄에 들러서 그림책의 매력을 느꼈고, 칭다오와도 인연이 있는 부산 아지트 책방 나락서점과 엄청난 에너지로 성장하고 있는 주책공사에 방문했다. 경상 쪽 책방을 돌며 '오늘의 귀함'을 느꼈다.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심야 버스에서 기절하듯 자며 광주로 건너갔다. 비가 시원하게 내린다.
가방에 책이 가득이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체국에 들러 책을 보낸 후 북클럽 문학동네 23번째 아지트 책방 북카페 사이시옷으로 갔다. 비 오는 날이라 더 분위기가 좋았던 곳이다. 작년에 전주 책방에서 광주에 좋은 책방이 많다고 들어서 꼭 한 번은 와보고 싶었다. 대표님께서 에코백, 오월 서가 대형 포스터 등을 챙겨주셔서 광주 민심에 놀랐고, 오지윤 작가님의 <요즘, 광주, 생각>을 보며 관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책과 음악과 의미와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광주 사이시옷을 떠나 전주로 향했다. 전주에서 처음 방문한 곳은 7인의 예술가가 모여 만든 동네 책방 물결서사였다. 전주시청 건너편 폐쇄된 선미촌을 예술의 거리로 변화시키고 있는 변화의 물결. 요일마다 책방지기님이 번갈아가며 책방을 지키는데, 목요 책방 지기 최은우 작가님이 지키고 계셨다. 작가님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여유롭게 책방을 볼 수 있었고, 문득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바른 방향'. 대망의 마지막 책방은 서점 카프카. 바닥 삐그덕 거리는 소리마저 좋은 카프카는 넋을 잃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가서 보라. 미약한 글로 표현하고 싶지 않은 책방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소화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될 거라 확신한다. 나는 바닥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뿌리를 깊게 내리기 위해.
2020. 여름. 바닥과 수면 사이에서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