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_소멸하는 중입니다만,

2020년 하반기, 고정비용 지출

희망고문_소멸하는 중입니다만, 2020년 하반기, 고정비용 지출


넉넉하게 살아오진 않았어도 부모님의 헌신 덕분에 많은 결핍을 느끼며 살진 않았다. 수중에 100만 원이 있으면 100만 원에 맞춰 살았고, 200만 원이 있으면 200만 원에 맞춰 살았다. 적어도 먹고사니즘에 있어서 만큼은 자족의 삶을 살 자신이 있었다.


한국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족이고 나발이고 할 거 없이 지출 출혈이 시작되었다. 칭다오 집 임대료, 난방비, 관리비, 차량 보험비, 회사 세금, 도서관 임대료 등... 어느 시점인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정비용들이 지출되기 시작했다. 물론 칭다오에 살았다면 다 감당할 금액들이다. 그러나 지금 나와 아내는 한국에 있으며 아내의 산부인과 진료, 내 치아 교정 등 병원비 역시 계속 나가는 중이다. 비록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한량 같은 신세지만, 한국은 칭다오와 물가 자체가 달랐다.


아내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5년 안에 자립하지 않으면 우리는 소멸될 거라고 했는데, 정말 소멸하고 있는 중이다.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할까, 출판사에서 단기 알바라도 구할까, 배달이라도 뛰어야 하나, 생각하다가도 "곧 칭다오에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아."라는 희망의 불씨가 모든 생각을 거두어 갔다. 칭다오에 갈 수 있는 기회는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한국에서 코로나 대유행이 있었고, 기회는 무산되었다. 이제 비자 만기일이다. 갈 수 있는 방법은 취업 비자를 신규로 받는 방법밖에 없다. 그나마 믿고 있던 비자까지 만료되니 희망은 곧 절망이 되었다. 칭다오에는 우리와 언어가 통하지 않아 이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는 반려묘 메리가 있다. 카메라로 메리를 보고 부를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매번 문 앞에 서서 집사를 기다리는 메리, 밥을 주로 온 지인에게 하악지를 하는 메리, 점점 야생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메리도 추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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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비자는 발급 직전에 칭다오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무산되었다(좌), 황금마차 시즌 2를 진행했으나 이용하는 사람은 없었다(우)

희망은 신기루와도 같다. 분명 실체가 있는 거 같은데, 막상 잡으려고 하면 없다. 이제 고정비용 지출은 내 생활비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내와 내가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모아놓은 곳간도 비우기 시작했다. 압박이 온다. '칭다오를 정리해야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희망이 나타나 포기하지 말라고 속삭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대로 꼬였다. 애초에 취업비자를 준비했으면 9월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기존에 있던 비자를 살리고 싶고, 살릴 수 있단 희망을 준 사람들을 믿은 것이 발단이었다. 이제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가 준 값비싼 교훈은 해외에서는 될 때까지 된 게 아니란 것이다. 온갖 비자가 한국의 악재와 겹쳐서 다 막혔다. 마지막 학생비자도 발급 직전 취소된 날, 나는 차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요!" 그렇게 한탄하며 나는 오늘도 소멸하는 중이다, 내일의 희망을 바라보고 절망하기를 반복하며. 칭다오에 있는 모든 삶의 터전과 반려묘 메리와 곧 태어날 아기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한다. 건너편에서 도서관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길, 초심을 지키길.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마지노선은 정해졌다. 2021년 6월 전에 들어가지 못하면 칭다오에서 내 삶은 끝난다.


2020. 하반기. 땅과 바닥 사이에서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