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전 요로결석 수술, 2020년 11월.
변수와 신의 한 수, 출산 전 요로결석 수술, 2020년 11월.
2020년은 코로나부터 황당함의 연속이다.
가족 결혼식 왔다가 그대로 한국에 갇혀버린 채로 8개월이 지났으니 계획에 전혀 없던 변수다. 어제는 나에게 코로나급 변수가 생겼다. 3개월마다 가는 종합병원 내과 진료라 출산도 얼마 안 남았고 정신도 없어서 안 가려고 했는데 그냥 약이나 더 타 오자 라는 마음으로 갔다. 익숙하게 채혈을 하고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는데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결과를 들었다. 처음엔 좋은 소식. 모든 수치가 좋아졌다. 그다음은 변수. 신장 수치가 3개월 만에 65%나 감소했다는 말. 투석 이야기까지 나오니 그다음부터는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내분비내과-> 신장내과를 거치는 사이에 여러 검사들을 했고 마지막으로 신장내과 선생님이 오랜 시간 알아봐 주신 덕분에 비뇨기과 응급 진료로 가게 되었다. 결론은 2.5cm짜리 결석이 요로를 완전히 막아서 신장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부어있고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황당했다. 내가 췌장 쪽 추적 검사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찍을 수 있는 온갖 검사를 다 받았는데 겨우 돌멩이 하나 때문에 신장 기능을 잃어간다고? 선생님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돌이 급속도로 커졌고 신장에 있던 돌이 요로로 나오는 바람에 걸린 거 같다고 하셨다. 오늘 집에 못 보내겠다고 갑자기 수술 이야기를 하셨고 입원 수속을 하는데 병실이 다 찼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오늘 외래로 1차 수술을 하게 되었다.
간단한 진료-> 신장 기능 상실-> 투석 이야기(감사하게도 투석까지 가진 않았다)->수술로 전개되는 동안 10시간이 흘렀다. 병원에 오전 7시 50분에 와서 오후 5시 50분에 나갔다. 10시간 동안 멘붕과 마음을 잡는 일을 반복하다가 수술이 아내 출산 주간과 겹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무너졌다. 집에 가는 내내 고민하다가 걱정이 감사로 바뀌었다. 가정법은 보통 후회할 때 쓰는데 어제는 감사할 때 쓰게 되었다. 만약에 이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중국에 들어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선생님은 신장 제거와 투석을 하게 되었을 거라고 하셨다. 변수다. 그러나 악수는 아니다. 오히려 신장내과 선생님의 약간의 (좋은 의미에서) 오지랖과 사명감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코로나로 시작한 변수에 변수에 변수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감사 제목이다. 그래도 병원에서의 시간은 너무 힘들었다. 가족들에게 미리 말할 수도 없었고 오로지 혼자 있었다. 출산 직전인 아내에게 "나 급성신부전증이고 투석할 수도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남편이 있을까... 가방에 시집 한 권을 챙겨갔다.
좋아하는 오은 시인의 <마음의 일>. 영업이 끝나가는 병원 카페 구석에 앉아 시집을 폈는데 어떤 단어와 마주하고 오랜 시간 울었다.
“나는 오늘 유리
금이 간 채로 울었다
거짓말처럼 눈물이 고였다
진짜 같은 얼룩이 생겼다”
_'나는 오늘' 중에서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지만 갑작스러운 변수가 아이를 맞이하는 예비 아빠이자 가장에겐 조금 버거웠는지 아침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 눈물샘은 오후가 되어 깨져버렸다. 억누르던 감정을 소비한 덕분에 마음이 무척 덤덤해졌다. 오은 시인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집에 가서 심호흡을 하고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최초딩님이 보내주신 후드티가 도착해 있었다. 언박싱하고 옷을 입었더니 아내가 웃어줬다. 아내는 최초딩 캐릭터가 나와 묘하게 잘 어울린다고 좋아한다. 아내의 웃는 모습 덕분에 오늘 있었던 일을 덤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어제의 오은 시인과 최초딩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위로가 되었다. 이 고마움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애독하는 수밖에.
오늘 1차 수술을 마쳤다. 맨 정신에 걸어서 수술실에 들어가고 수술받는 건 처음이라 긴장했는데 어제 만난 담당 선생님이 이 수술 때문에 밤늦게까지 고민했다고 하셨다. 너무 고마워서 감사하단 말을 수술받는 내내 한 거 같다. 믿고 맡길 수 있어서 진통제를 다 안 쓸 정도로 차분하게 수술을 받고 성공확률이 낮은 수술은 성공했다. 그리고 오늘 박연준 시인의 라이브 방송은 내게 다독임이었다. 오늘을 제법 잘 버텼고 변수가 감사가 되어 라이브 방송을 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확인하니 무엇보다 위로가 되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르고 우린 자주 길을 잃는다. 그 잃음 속에서 잃었던 무언가를 찾기도 한다. 늘 함께 하는 아내에게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글을 쓰면 속이 후련할까 하여 썼는데, 후련하고 힘도 난다. 최초딩님이 초딩시선을 쓰는 이유를 조금은 알 거 같다.
병원은 기본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곳이다. ‘서비스’를 제공받는 환자는 일정 금액을 지불한다. 어떤 관계든지 누구에게나 ‘의무’와 ‘권리’가 주어진다. 다만 그 의무와 권리에는 제한이 있다. 그 제한선을 지키는 것이 질서다. 낭궁인 작가님의 <만약은 없다>에서 온갖 진상 환자들 이야기를 들었다. 엄청 욕하면서 읽었다. 어제 10시간을 병원에 있는 바람에 그 진상 환자들을 여러 명 만났다.
패턴은 똑같다. 내가 돈을 내서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생겼고, 당신에겐 의무가 생겼는데 왜 내 권리에 제한을 두냐, 라는 공식으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함정은 상대방에게도 각각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환자 쪽에서 자주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진상 1.
채혈을 하면 금식해야 한다. 배가 많이 고픈데 예약 환자가 많아서 자신이 예약한 시간보다 조금 더 시간이 흘렀다. 갑자기 안내 데스크를 향해 “왜 사람을 기다리게 하냐. 너 몇 살이야. 담당 선생 나오라고 해. 굶어 죽일 거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조용했던 병동은 소음으로 가득 찼고 주먹질을 하는 사람 앞에 간호사는 대역죄인처럼 머리를 조아렸으며 보안팀은 오지 않는 듯했다. 진상남은 모든 사람의 권리를 침해했다. 그러면서 자기 권리 침해했다고 성질을 내는 모습이 한심해 보임과 동시에 간호사 분이 너무 안타까워 나중에 수납하며 “감사합니다. 힘내세요.”라는 말만 전했다.
진상 2.
연쇄 반응인가? 진상남이 조용해지자 진상녀가 등판했다. “어머니 모시고 왔는데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하냐. 우리 어머니 죽게 할 작정이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일반 병실에서 드라마에 나오는 vip병동 서비스를 원한다. 그러면 돈을 더 내고 vip병동 가지. 역시 의무는 생각 안 하고 권리만 생각한다.
진상 3.
외래주사실에 누워서 수액을 맞는데 간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데스크 옆에 누워있어서 본의 아니게 통화 내역을 듣게 되었다. 사실 워낙 소리를 질러서 소음에 가까웠다. 요약하면 어제 예방접종을 주사실에서 맞았는데 맞은 부위가 부어올랐다. 간호사는 부작용을 설명했다고 하자 이걸로 문제가 되어 진료받으면 진료비가 발생하냐고 묻는다. 여기서부터 진료비가 얼마냐, 내가 왜 내냐, 너 몇 살이냐, 담당 과장 누구냐” 거의 10분 이상 욕을 했다. 어떻게 병원에 민원을 넣었는데 간호사한테 직접 연결이 되지, 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전화를 끊은 간호사는 또 마녀 사냥당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다. 이렇게 자신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담당자를 노리고 화풀이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이었으나 그 간호사는 밥을 먹지 못했다. 나는 또 “감사합니다. 힘내세요.”라는 말 밖에 못했다.
병원을 나가는데 문자가 왔다. 만족도 평가.
이 만족도 평가는 한쪽의 의무만을 평가한다.
간호사들을 포함한 의료진들에게 환자의 의무에 대한 만족도 평가를 하면 몇 점이 나올까?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넘으면 안 된다.
오늘 어제 만났던 간호사 분이 수술 준비를 하셨는데 어제 내가 늦게 나가는 걸 봤다고 고생하셨다고 말씀해주셨다. 수백 명 중에 한 사람인데 기억해주시고 내 짐도 보관해 주셨다. 많은 말이나 행동이 필요한 게 아닌가 보다. 그냥 “감사합니다. 힘내세요.”라는 말이면 이들에게 조금은 힘이 되는구나. 코로나19로 가장 지쳤을 이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길에 초조하게 기다리는 다른 가족들과 수술실에 누워있는 환자와 수실을 정리하고 반쯤 넋이 나간채로 쉬고 있는 전문의 선생님과 내 수술을 분주하게 계신 선생님들과 마주쳤다. 이 짧은 수술에 6명이나 동참하셨고 담당 선생님은 내 수술로 밤늦게까지 고민했다고 하셨다. 결국 우리의 치료받을 권리는 의료진의 치료할 의무와 맞물려 있다. 그런데, 그냥 권리와 의무라는 딱딱한 관계적인 단어 사이에는 여백이 있다. 관심과 사랑이다. 나는 그 관심과 사랑 덕분에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의 무관심과 폭력으로 인해 그 타이밍을 놓치게 될 수도 있다. 난다 김민정 대표님 계정에 자주 들어간다. 프로필 문구를 보기 위해서. 대표님 프로필 문구에는 ‘인정머리’는 ‘인정’과 ‘머리’다, 라는 명언이 있다.
모두가 힘든 시기 저런 만족도 평가보다 중요한 건 ‘관심’과 ‘사랑’, ‘인정’과 ‘머리’가 아닐까.*
이 시간에도 힘쓰고 있는 모든 의료진과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제법 안온한 날들’이 오길.
2020. 11월. 악수와 신의 한 수 사이에서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