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를 하며 깨달은 것들

2021년 4월 벚꽃이 지기 전

격리를 하며 깨달은 것들, 2021년 4월 벚꽃이 지기 전


칭다오에 돌아가려면 28일 격리를 해야 된다.

14박 15일은 호텔에서 시설 격리를 하고, 7일은 자가격리, 7일은 건강관리 관찰이라고 해서 공공시설 등은 이용할 수 없는 격리이다.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인생에 둘도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28일이라는 시간을 잘 사용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먹을 걸 과감하게 비우고, 읽을 책과 커피 등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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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기호식품>먹을 것 순으로 챙겼다, 옷장은 책장으로 변신

결과는 루틴이 생긴다. 격리 때 얻은 루틴은 앞으로의 삶에도 단단한 기반이 되었다. 혼자지만 대충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내가 머문 방은 한국 평수로 12평 정도 될 거다. 온천관광지로 유명한 지모에 있는 해천만 크라운 플라자 호텔이라는 5성급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테라스로 바다와 산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지만, 테라스 문은 대략 10cm 정도 열린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루틴'이란 생각이 들었다.

WeChat Image_20221018001313.jpg 내가 머문 방은 10cm라도 열렸는데, 다른 방은 안 열리는 곳도 있었다.

호텔에서 만든 루틴


눈 뜨자마자 침에서 스트레칭

환기

청소 및 침구 정리 : 다시 눕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정리한다.

샤워 및 빨래

조식 수령 및 커피 내리기

조식

설거지 : 밀리면 삶의 질이 떨어진다.

커피 마시면서 걷기 : 12평 룸을 아무리 돌아도 2,000 이상 나오기 힘들다.

신나는 음악 틀고 춤추기 : 스트레스도 풀고 소화도 시킬 수 있다.

책상 정리 및 출근 : 최우선 선위 일들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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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를 하고 침구를 정리하고 커피를 내리는 행동은 하루의 스위치를 켜는 것이다

아침 루틴만 생기면 격리도 제법 유익한 거 같다. 기숙학교 들어온 기분이랄까.

점심을 안 먹었기 때문에 오전과 점심에는 독서지도사 1급 강의를 들어서 13일 만에 시험까지 합격했다. 오후에는 하루에 책을 한 권씩 읽었고, 자기 전까지 읽은 내용과 하루의 일과를 정리했다.

하루를 잘 살아보니 이틀을 잘 살 수 있고, 이틀을 잘 살아보니 일주일을 잘 살게 되었다. 그렇게 쌓여간 시간은 결국 나를 살게 했다. 절대적인 시간은 상대적으로 느낀다. 제한된 환경 속에서 멍하게 시간을 때우지 않고 활용한 결과는 값진 루틴을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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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박 15일 동안 할 수 있는 일들, 책 14권 읽기, 독서지도사 1급 취득

따지고 보면 별 거 아닌 루틴이지만, 하루에 스위치를 켜고 안 켜고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아무렇게나 먹지 않는 것, 정성껏 하루를 사는 것,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무작정 흘려보내지 않는 것, 하루에 주어진 시간만큼 나아가는 것, 무엇보다 나를 돌보는 것은 외롭게 홀로 집에 돌아온 기러기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다.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불만과 불평을 단체방에 올리기도 했다. 스스로 지옥 같이 힘든 곳이라 생각하고 시간을 때우려 하면 그만큼 괴로운 게 없는 거다. 사람들이 제일 힘들어하던 건 먹는 게 아니라 '무료함'이었다. 가급적 인생을 재밌게 살고 싶다, 어떤 환경에서든 최소한의 품격을 지키면서.


"자기만의 루틴을 마련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상을 지키고 가꾸겠다는 다짐이다." 김은경, 『습관의 말들』(유유,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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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다르다는 걸 깨닫는 순간 삶의 질이 달라진다.

격리는 자가격리와 건강 관찰이 하나가 되어 7일 줄었다. 이제 자유다. 벚꽃이 필 때 만나자고 한 약속을 일 년 지나 지키게 되었다. 안녕, 칭다오.


2021. 4. 9. 격리와 자유 사이에서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