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리듬으로, 방향을 생각하며 2023.09.10.
오늘의 문장은 추장의 딸, 초록의 콧수염 한연희 시인의 신간 시집, 『희귀종 눈물귀신버섯』(문학동네, 2023)에서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우리에 대해 떠올리는 밤
베개에 엎드려 과거를 들춰보는 이는 누구일까?
책장에 올라가 웅크린 고양이, 문밖에서 우는 아이
어쩌면 이 모든 장면이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일까?
캐물을수록 모든 게 잘못 같아
우리란 말은 어쩐지 참 비현실적이고
그저 그물망처럼 생긴 걸 우리라고 한다면
-「S이거나 F」 중에서
(아직은)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들은 종종 '너희'라는 말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너희가 잘못해서 벌을 받는 거야.'
자주 듣던 말이고, 이 말을 듣고 난 뒤엔 9살의 근력으로 의자를 들고 책상 위에 무릎을 꿇고 있거나 10살의 힘으로 중력의 무게를 엎드린 채 견뎌야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아니, 왜 우리일까?'
성인이 된 저는 잘못을 지적하는 이들을 다시 바라봅니다.
'우리 잘못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향해 "누구세요?"라고 물어봅니다.
'우리'라고 부름으로 '우리'에 가둬버리는 시절은 지났습니다.
제 머리는 컸고요. '우리'에 갇히기엔 덩치도 너무 커졌습니다.
현대사회는 언제나 과잉이 문제인 거 같습니다.
조선이나 최원종 같은 인간이 한 짓에 대한 책임을 나눠가질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조선이나 최원종이 되기 전의 인간이 곁에 있다면 괴물이 되기 전에 돕고 싶습니다.
'오늘도 잘못하지 않은 이들이 한꺼번에 죽음을 건넜는데
잘못은 도대체 누가 한 것이니?'(「S이거나 F」 중에서)
책임져야 할 사람은 책임지지 않고 자꾸 '우리'에 책임을 던집니다.
어쩌면 제가 느끼는 피로에 일부분은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자책'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시가 하는 일이 뭘까요? 착란에 착란을 더하는 시가 향하는 방향을 바라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연희 시인님의 서명은 정말 '희귀본'이에요. 소중한 사인본 감사합니다. 다른 책들과 함께 오느라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저는 이 일을 지속해야겠고,
이왕이면 뭉근하게 스튜를 만들듯이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떠오르는 불순물은 바로 휘저으며 걸러내야겠습니다.
과도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내가 갈 수 있는 만큼만,
하루하루,
뚜벅뚜벅,
방향을 확인하며.
청소년 북클럽 소란이 오랜만에 모였고, 그동안의 근황과 책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어림과 소란의 스승이에요. 다음 모임은 "묻지마 범죄는 왜 늘어나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모일 예정입니다.
내일은 도서관 휴관일입니다. 화요일에 뵈어요.
덧, 그나저나 올해 혹은 내년 초엔 문학동네 시인선 200, 문학과지성시인선 600,창비시선 500을 보겠네요. 아, 문학동네 포에지 100도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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