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오래된 서점 x황혜경 시인
황혜경,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문학과 지성 시인선)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냄새
슬픈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소리
나는 이런 식으로 이것들을 예감이라고 했다
얼룩의 언어로만 말하고 싶어질 때면
깨끗이,를 바라본다 두번째 욕조에 몸을 담그고
기쁜 일이 있을 때만 전하러 갈게
죽을 때가 가까워오면 못 입어볼 옷이 어디 있나
더럽지 않게 빛깔도 선명하게 가지런히 걸어놓았구나
어디 골라 입어보자꾸나 수의壽衣 이전에
먹는 것도 말끔하게 개운하게
그것을 맛 다음의 참맛이라고 말하자꾸나
나에 대해서도 남기지 말고 자취도 전혀 없이
하, 그런데 그러려는데 참 누가
두번째 욕조까지 따라와서 함부로 발을 담그는구나
덧칠한 색들 때문에 덕지덕지 더티더티
씻기지 않는 첫번째
또 한번 색을 빼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무엇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잖아요
왜 당신은 나의 무엇에 대해 뭐라고 하나요
그럴수도 있는 일에서 잊고 싶은 일로 변화하고 있을
때는
뒤와 속을 알고 나서
그래도 깨끗이,를 바라본다 욕조에 얼굴까지 담그고
후유증도 없이 말짱해지자꾸나
무엇이 무엇에게 뭐라고 하든지 허물없이
두번째에는 구겨지지 않는 표정을 지니고 있자꾸나
_「구구함과 연연함을 이기려는 두번째 욕조」 전문
시 낭독 모임 시간에 이 시를 읽는데,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가끔 도망간다. 멀리 가지도 못하고, 칭다오 시내, 황도, 라오산, 제남 등으로 잠시 사라진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곳으로, 누구에게 뭐라고 하지 않을 곳으로, 누가 날 신경 쓰지 않는 곳으로, 내가 누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도망가서 두번째 욕조 같은 곳에 몸과 마음을 푹 담그고 오면 완충은 아니더라도, 얼마간 이 시절을 버틸 힘이 생긴다. 가끔 두 번째 욕조까지 따라와서 함부로 발을 담그는 상황을 만나기도 하지만, 최대한 마주하지 않으려고, 때론 적극적으로 피하기까지 한다.
황혜경 시인은 파주에 있는 오래된 서점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오래된 서점은 KONG 출판사 공가희 대표님 덕분에 알게 되었는데, 어린이의 흔적이 곳곳에 있어 웃으며 나온 곳이다. 돈이 아닌 ‘보람’을 따라가는 곳, 어린이 동시 수업을 하는 곳, 처음 본 낯선 교민에게 책을 건네주시고 많은 대화를 허락해 주시는 곳으로 기억한다. 무더운 여름 더위에 짜증 난 상태로 들어갔다가 시원한 미소와 함께 나왔다. 황혜경 시인의 시집 역시 1년 4개월을 숙성해서 펼쳐 먹었는데, 새로운 세계를 하나 만난 거 같다. 시가 쉽진 않았지만, 낭독 모임 마치고 두 번째 곱씹어 읽으며 방정식을 풀어나가듯, 퍼즐을 맞추듯, 찬찬히 생각하며 읽으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잘 살고 싶은 사람’과 ‘잘 죽고 싶은 사람’, ‘그냥 어떻게든 살고 싶은 사람’과 ‘무슨 수를 쓰더라도 죽고 싶은 사람’,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많은 사람’과 ‘자는 시간보다 깨어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과 ‘다이어트하는 사람’ 세상은 이렇게 대립을 이루지만, ‘더 이상 풀이를 해봐야 이해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다’(「이해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다」)라고 하지만, 누군가의 일들에 일일이 시시비비 하기보다 ‘의자의 위치부터 다시 바꾸는 것에서 시작’하는 ‘갱생’(「갱생更生」)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철학적 고민이야 늘 해야겠지만, 그 고민에 사로잡혀 하루를 낭비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또 한 번 색을 빼며’, ‘다시 하루 더 사는 것’(내가 생각하는 ‘갱생’), 과거를 적당히 돌아보며, 미래를 조금 내다보고, ‘하루를 충분히 사는 것’. 그 하루 속에 늘 구정물이 튀기는 것만은 아니니 꽃도 사서 곁에 두고 보면서 아름답고 무용하고 무해한 것들에 눈길을 줄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살고 싶다. 준서와 아내가 오기 전까지 건강하게 버티기 위해 하는 작은 다짐이라면 다짐이다. 오늘은 황혜경 시인이 남긴 시의 길을 따라가서 완전히 길을 잃었다가 괜찮은 출구로 나왔다. 괜찮은 서점에서의 추억도 함께 가지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