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靑春), 푸를 청에 봄 춘.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①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②또는, 그 시절.
왜 젊은 나이를 봄이라 부르는 걸까, 우리는 왜 항상 봄을 시작이라 칭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어떤 곳은 늘 여름이고 어떤 곳은 늘 겨울이다.
1년의 시작이 봄이 아닌 곳이 대부분이다.
왜 가을이나 겨울은 우리를 대변할 수 없을까 사실 푸른 색은 봄보다는 여름과 더 잘 어울리는데.
우리는 왜 푸른 봄이라 불리는 걸까.
청춘이라는 말을 들으면 청춘이기 때문에 무조건 열정적이어야 하고 청춘이기 때문에 아파도 참아야 하고 청춘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된다 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모두가 푸른 색일 수는 없지 않을까. 꼭 뭔가를 이루어 내야만 쓸모 있는 인생은 아니지 않을까 가을로 시작해 봄으로 끝내도 괜찮지 않을까.
젊어서 고생은 정말 사서해야 하나.
꼭 따뜻한 햇빛이 내리 쬐어야만 좋은 날은 아닌데. 때로는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에 가슴이 뭉클해 지기도 하는데. 지금까지 나는 당연히 푸른 봄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청춘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진다. 지금 나의 이 순간을 청춘이라는 단어는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가장 예쁜 나이일 거라 짐작했던 나의 스무 살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예쁘지 않았다. 화장을 한다고, 살을 조금 뺀다고 예뻐지는 것도 아니었고 대학생이 된다 해서 어느 날 뿅 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예쁜 나이는 스물 둘이라고 나 혼자 정했다. 가루가 덜 녹은 아이스티의 마지막 한 방울을 마실 때처럼 달콤함에 몸이 찌르르 떨리는 날들이 펼쳐질 거라고 그렇게 정했다. 나의 글만 봐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온전히 나의 감정 속에 파묻혀 말과 글을 쏟아낼 거라고, 내 생에 가장 이기적인 시간들을 보낼 거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의 스물 둘은 청춘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와는 조금 다르게 시작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어느 날 느꼈던 감정, 충격, 방황, 나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한다. 상처를 덜 받기 위해 나는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가능성을 늘 열어 두기로 했고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긋기 시작했다. 꾹꾹 눌려 있던 감정들이 펑 터져버렸던 날, 내 자신에게는 솔직해 져야 한다는 것을, 선을 지워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힘들다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어떻게 힘들다, 좋다가 아니라 무엇이 왜 어떻게 좋다 라고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 줄 두 줄 내 감정들을 가득 채워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