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라문디 Mar 23. 2022

외로움이 나를 휘감아버렸던 날 3

향수병은 이렇게 오는 거구나 #2017.03.22

정말 열정적인 교수님들께서는

학생들에게 최대한 많은 지식을 전달하고자

쉬지 않고 강의를 진행하신다.

짧은 나의 집중력은

한국에서도 그런 전투적인 강의를

1시간 밖에 버티지 못했는데

영어로 들으니 정말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런 강의는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오늘 튜토리얼에서는 한 장의 지문을 읽고

주어진 질문에 답하는 활동을 했다.

질문에 답을 하기는 커녕 다 읽지도 못했는데, 

급하게 읽느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답을 말해보라고 하셨다.

나와 눈이 마주친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질문을 하셨고 

엉뚱한 답을 하고 말았다.


아무도 나를 비웃은 사람은 없었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해서

비웃지 않는 것처럼

이들도 내가 영어를 못한다 해서 

창피를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 해도 참 열심히 공부하고 온 것인데

난 왜 이것밖에 안되나 싶어 

너무나 부끄러웠다.


토익시간에 우리 그룹이 하는 이야기, 

저 쪽 그룹이 하는 이야기,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

온갖 소리가 뒤엉켜 내 귀에 들어올 때면

난 마주보고 앉은 사람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전화로 이야기하는 건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두 번 세번 물어야 

겨우 알아듣는 건 그만두고 싶다.

내가 의견을 내보려 한 마디를 던지면

어색하게 조용해지는 이 분위기가, 

내 말을 잘 못알아들은 듯한

그들의 표정이 정말 불편한다. 

상황에 변명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핑계거리를 찾고 깊지 않았는데, 

난 외국인이니까 못 알아듣는 것이 당연해라는

자기 위로를 할 때마다

속이 상해 미칠 지경이다. 


향수병은 이런 거구나.

한국 음식이 그리워서도,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보고싶어서도,

할 일이 없어서도, 

외로워서도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가장 못견디게 괴로웠다. 

학생의 자격으로 학교에 소속되어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서 '이방인이니까 봐주세요'라며

칭얼댈 수 없었다. 


내가 외국인이기에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지만

내가 외국인이라 해서

완벽하지 않은 내 과제가 당연한 것은 아니다.

오기 전 충분히 각오했던 일들이었고

예상했던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숱한 각오와 다짐들은 

어디에도 끼어들지 못하는 나와 함께 흐려져 갔고

어느 순간부터 한국에서의 나의 모습들이, 

당연했던 나의 일상들이 기억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이유에서 

향수병이 찾아왔다.


내가 나의 당연한 것들을 잊어가는 것처럼

나의 소중한 사람들도 나를 잊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나는 누군가에게

소중했던 적이 없었던 걸까.

나는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였던 적이 있었나.

나는 정말 이렇게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걸까.

그게 아닌 걸 알면서도 괜히 울적해지는 날이다.

꽤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오늘은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외로움이 나를 휘감아버렸던 날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