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라문디 Mar 26. 2022

외로움이 나를 휘감아버렸던 날 4

유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2017. 03.27

문을 나서자마자 바람소리가 나를 덮쳤다. 빈틈없이 칠해 놓은 듯한 파란 하늘에 이렇게 거센 바람이 불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분명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었는데 잠깐 사이에 하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고 바람은 여전히 세차가 불고 있었다.

나를 겁주려는 것처럼.


유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현지인도, 이방인도 아닌 채로, 이렇게 어느 순간 바람이 나를 덮쳤을 때 그대로 휩쓸려 갈지도 모르는 그런 불안정한 상황 속에 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행 중 만난 이름 모를 누군가가 베푼 호의는 그곳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 쌓는 것일지 몰라도

유학생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다른 이의 도움을 통해 해결해 나간다는 것은 조금은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나는 유학생들과 꽤 친한 편이었다. 왜 본국을 두고 여기까지 와서 힘들게 공부하는지, 

세계적으로 한국어를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그들의 삶이 궁금했고 그들의 선택이 궁금했다.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꿋꿋이 살아가려는 그들이 대단하게 느껴졌고, 나 역시 언젠가 유학생활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기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유학생들에게 나는 대체로 도움을 주는 입장이었다.  큰 도움은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마냥 좋을 거라고, 그저 편할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내가 틀렸다.

내가 도움을 받는 입장이 되어보니 고마움, 미안함, 나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는 무기력함.

이런 감정들이 뒤섞여 이들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되어 더 이상 다가갈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그들이 수업에 자주 빠졌는지, 팀 활동을 할 때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지, 시험기간이 되면 미루고 미루다 하루 전날 밤을 새웠는지, 내가 공부하다 만든 요약자료를 건네면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그러면서도 왜 먼저 도움을 청하지는 않았는지.

정말 그들이 필요로 했던 것은 나의 배려가 아닐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잠깐 머릿속을 스친다.


그들의 힘든 유학 생활 동안 잠깐이라도, 조금이라도 기댈 곳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내가 건넨 호의들이 쌓이고 쌓여 그들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지금의 나처럼.

내가 건넨 모든 친절들은 모국어로 공부하는 나와 외국어로 공부하는 그들의 능력 자체가 다르다는 나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이 나에게 고마워했던 만큼 나도 많이 고마웠다는 것을 알아줄까.


내가 한 발짝 다가가면 두 발짝 다가와주었던, 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나에게 돌려주었던 그들처럼 나는 이곳에서 꾸밈없이 사람들을 대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따라 가지 말라고, 금방 돌아오라고 아쉬워해주던 사라 언니와 눈물까지 글썽이던 미남 언니가 진하게 보고 싶다. 이런 무기력함도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이니 놓치지 말고 전부 기억하길, 잠깐 휩쓸렸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오길.

작가의 이전글 외로움이 나를 휘감아버렸던 날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