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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문디 Mar 27. 2022

봄이 없어서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자 2017년의 나에게 봄이 사라졌다.

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는 꽃을 보면 꽃을 좋아했던 내 사람들이 떠오른다. 흩날리는 꽃잎이 사람들의 얼굴을 행복으로 물들이면 나도 덩달아 행복해지니까, 그래서 봄을 좋아했다.


그런데 그런 봄이 올해는 내게 없다. 갑자기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혼자 밥을 먹는 일상도, 알아들을 수 없는 수업도, 지겹도록 반복되는 하루도, 내가 보낸 두 달이라는 시간도 모두 낯설다. 나를 덮어버린 차가운 공기는 환상을 깨고 내가 마주한 상황을 똑바로 보게 만든다. 봄이 없어서 자꾸만 춥다.


나는 비주류이자 소수자다. 인종, 피부색, 성별, 나이로 인한 비주류가 아닌 영어 소수자다. 간혹 미미한 인종차별을 겪기는 하지만 그건 정말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철없는 애들이나 하는 짓이고 대체로 나는 영어 차별을 겪는다. 여러 명이 있을 때 굳이 내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그룹 활동에서 나를 배제한 채 눈빛이 오간다. Introduction to Tourism 수업 튜토리얼 시간에도 그룹 별로 발표를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나를 제외한 두 명이 서로에게 네가 발표할래?라고 말했다. 나 역시 빠르게 오가는 대화 속에서 괜히 주눅 들어 입을 꾹 다물고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려 애쓰기만 한다. 없는 사람처럼 자연스레 배제되는 것, 존재가 인정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사회의 소수자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내가 조금 더 뻔뻔했다면 틀려도 좋으니 내가 하겠다고 당당히 말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관심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노력한다면 나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계속해서 가려진 소수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다수의 틈에 파고들어 갈 것인지는 나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있다. 그걸 알지만 나는 그냥 소수자로 남기로 한다. 이 지독한 외로움을 잊어보겠다고 나를 바꾸지는 않기로 했다. 쓸쓸함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더 서글프게 만드는지 알고 있다. 억지로 맺어진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차라리 비주류로 분류된 나를 인정하고 이 고독에 익숙해져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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