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부활절 기념
누군가 하늘에 장난을 쳐 놓았다. 단풍나무를 찍으려 핸드폰을 들었는데 핸드폰 화면 속 하트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크게 + = ♡가 그려져 있었다. 장난이 아니라 부활절을 기념하기 위해 하늘에 새겨 놓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난데없이 하늘에 나타난 하트를 간직하기 위해 누군가는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고 어떤 부부는 나란히 같은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길을 걷는 40분 동안 3개의 하트무늬가 하늘을 떠다녔다. 단풍나무에 이끌려 처음으로 원래 걷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걸어보았는데 이렇게 넓게 집들이 펼쳐져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고 집 근처에 커다란 공원이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정면으로 마주한 적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낭만에 젖고 새로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구경하며 오늘 하루의 서러움도 씻겨 나갔다.
첫 시간부터 교수님께서는 일본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신 듯했다. 유독 일본인 학생이 많은 수업이기도 했지만 교수님은 일본에 대해 잘 알고 계셨고 수업 중 많은 예시를 활용하셨다. 보통 아시아 예시를 드는 교수님들은 싱가포르나 홍콩의 사례를 설명하는데 이 교수님은 수업시간마다 한 번씩 일본의 사례를 설명하셨다. midterm break 기간에 일본을 여행할 것이라 하셨으니 말 다한 것이다.
오늘은 하나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그런데 일본인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나와 눈이 마주친 교수님은 내게 설명해 달라고 하셨고 한국인이긴 하지만 나도 하나미에 대해 알고 있다 했을 때 바로 다른 일본인 학생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우리나라에도 꽃 축제가 있다고 말할 틈도 없이 교수님은 하나미에 대한 설명을 한국 학생에게 맡길 수 있겠냐며 일본인 학생이 소개해주었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
배제되었다. 정말 서러웠지만 속상할 틈이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없고 일본에는 있는 것은 어떤 것인지, 대체 뭐가 다르기에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지 알아야 했다. 적어도 내가 관광학 도라면 지금 이 순간 자존심이 상하는 것보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일본에 열광하게 하는지 알아야 했다. 종강하기 전 꼭 교수님께 여쭤보겠다고 다짐하며 강의를 들었다. 웃기게도 이 서러운 마음은 수업 후 일본인 친구 하루나가 준 키켓 하나에 풀려버렸다. 내가 참 이렇게 단순하다. 하늘에 떠 있는 하트 모양에,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에, 단풍나무에, 초콜릿 하나에 이렇게 마음이 녹아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