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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기억할 수 있을까

진짜 기억 가짜 기억

by 쿤스트캄

눈이 펑펑 왔다. 살살 내리는가 싶더니 두툼하게 온다. 건물 꼭대기층에 있던 나는 하루종일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밖을 돌아다니기 힘든 날일 수록 사람들은 간편한 차림으로 다닌다.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이건 동일하다.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며 가는 사람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게 뭘까 생각했다. 늘 지니는 필수템 세 개를 꼽는다면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은 바로 휴대폰, 교통카드로 쓸 수 있는 카드 그리고 정신머리 아닐까 싶다.


둘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고를까. 휴대폰일 것 같다. 아마 정보수집과 소통을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겠다. 일상 속 슈퍼컴퓨터나 다름없는 물건, 아니 분신이다.


가끔 상상한다. 불의의 사고로 앞으로의 시간을 잃게 된다면? 나의 무덤은 어디일까? 하고 말이다. 나의 정신은 하늘에 닿겠고 육신은 재가 되어 아주 작은 용기에 담기어 보관되거나 자연의 일부로 안기겠지 싶다가도 어쩌면 늘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이 삶의 여정 마지막을 기록해 주는 마지막 무덤이 아닐까 싶다.


이 메모리장치가 나의 무덤이 될 거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기계문명에 지배당하는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니 답답한 마음이지만 일정을 기록하고 나의 발자취가 담겨있고 마지막 나의 순간을 알리며 사진이 가득 담긴 손바닥만 한 스크린이 나를 온전히 들여다보았으니 가장 작은 메모리얼파크나 다름없다.


휴대폰 없이 얼마나 온전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없다면 난 자연스레 흐려지는 기억이 있을 테고 새로이 편하게 채워지는 기억이 있을 텐데 휴대폰 용량과 달리 나의 기억용량은 여전한데 같이 가려니 자꾸 까먹는 일이 생기고 버퍼링을 넘어 로딩이 안 되는 시간이 생긴다.


정말로 기억할 수 있을까. 없다면 나의 진짜 기억은 어디까지일까. 지금 내가 기억하는 분량의 가짜기억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온갖 혐오와 그 찌꺼기로 가득한 세상에서 내 머릿 속이라도 내버려 두어야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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